사춘기를 이해하려다 결국 나를 이해하게 된 이야기
미치겠다.
나한테.
며칠 내내 육아서를 읽고, 강의를 들으며 사춘기를 이해하려 애썼다.
아침마다 다짐했다. 오늘은 아이를 존귀하게 대하자고.
그런데 결국 나는 이렇게밖에 안 되는 엄마였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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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싶던 가수의 앨범을 못 사서 화가 난 큰 아이가 방문을 닫고 들어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래, 그럴 수 있지. 조금 있으면 나오겠지.’ 하고 나를 다독였다.
3시간쯤 지났을까. 지금쯤이면 나올 법도 한데…
마음이 상한 아이를 달래야겠다는 생각에 앨범을 파는 곳을 찾아보고 “엄마가 돈 보태서 같이 사줄까?” 하며 방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돌아온 건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이미 기분이 상한 아이는 “이제 사고 싶지 않아. 엄마가 자꾸 방에 들어오는 게 더 싫어.” 라며 가시 돋친 말을 뱉어 버렸다.
기분이 나쁘니 나쁘다고 말했을 뿐인데 나는 그것조차 견디지 못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엄마한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마음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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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본 대로 ’ 좋은 엄마라면 이렇게 할 거야 ‘라는 생각에 한번 더 손을 내밀었다.
“그럼 기분이 풀리면 엄마한테 문자 보내.”라고 말하고 나오는데, 등 뒤로 “짜증 나!” 하는 말과 함께 문이 닫혔다.
어? 이거 아닌데????
그 순간,
내 안의 이성이 완전히 끊어졌다.
“너 어떻게 엄마한테 짜증 난다는 말을 해? 엄마가 먹여주고 입혀주고 좋은 것만 해줬더니 고마운 줄도 모르고!”
아이는 “엄마한테 한 말이 아니라 그냥 짜증 난 거야.”라고 했지만 그 말은 이제 더 이상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도움은커녕 상처만 남길 말들을 분노에 휩쓸려 쏟아냈다.
말하면서도 알고 있었다.
이건 우리의 관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그러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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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추스르다 문득 깨닫는다.
내가 참지 못했던 건 아이의 짜증이 아니라, ‘이렇게 노력하는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섭섭함이었다는 걸.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던 건 아이를 위한 마음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좋은 엄마’라는 내 모습을 지키고 싶었던 거였다.
완벽한 엄마는 없다는 걸, 오늘도 배운다.
좋은 엄마가 되는 길은 결국 이렇게 넘어지고, 부끄러워하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