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가지 이론 중 처음 접해 보는 것이 ‘해결중심상담이론’이다. 해결중심상담이론은 제목만으로도 답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뭐든 새로운 경험에 대한 호기심과 개방성이 높은 나로서는 당연한 선택이다.
줌으로 공부하는 학우지만 경희샘과 혜원샘은 사적인 자리에서 만남을 갖을 정도로 서로 편안하고 지지하며 격려하는 관계다. 두 샘에게 함께하자고 먼저 손 내밀고 싶었지만 혹여라도 거절을 할까 또는, 후에 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애써 참았다. 해결중심상담 조 참여자 명단에 맨 먼저 이름을 올리고 살짝 다른 조를 기웃거리며 누가 함께하게 될지 궁금했다. 어찌하여 다른 팀에 들어갔던 두 샘이 우리 조로 들어오니 이번 실습이 더욱 재미있고 의미있을 것 같은 기대가 된다. 함께 하게 된 나머지 3명은 얼굴도 이름도 낯설다. 이번 모둠은 서로 소통하고 라포를 형성해야 할 거 같은 생각이 들어 어떻게 시작되고 진행이 될지, 무엇보다 줌 상황에서 대면에서 가능한 공기를 통한 분위기 형성이 가능할지 의문이 든다.
‘집단상담’에 대해 공부하면서, 코리부부의 영상을 여러 번 시청했다. ‘여럿이서 눈치 보느라 진실한 탐험이 일어나겠어?’ 하던 의구심이 씻겨진다. 어느 누구도 (특히, 리더) 작위적으로 느껴지지 않으나 집단원 모두의 자발적이고 강력한 역동이 보인다. 5월 이후 코로나로 인한 새로운 거리두기가 적용되어 내심 학교에서 대면으로 실습하기를 기대했건만 이번 학기는 이대로 계속 줌이다. 화면으로 집단상담이라니, 여러 명을 두루 살피지 못하는 나로서는 걱정이 된다.
우리 조의 실습이 다가오면서 성격 급하고 매우 계획적인 혜원샘이 움직인다. 톡방을 개설하고 조원의 역할을 나누기도 전에 이론을 정리하여 올린다. 역시, 내가 그동안 느긋할 수 있었던 이유는 혜원샘이었다. 분명 내가 ‘이 때쯤이다’ 하기 전에 움직일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동안 해결중심상담이 적용되는 사례를 알기 쉽게 정리한 영상을 톡방에 올리면 워밍업하고 있었다. 조원들에게 보내는 무언의 압박이면서 잘해보자는 의지의 표현이다.
줌으로 시간을 정해 만난 조 모임은 시작부터 열띤 토의가 이루어진다. 해결중심상담의 핵심은 질문기법인 것을 확인하고 우리의 실습은 질문에 포인트를 맞추기로 한다, 무엇보다 시작이 중요한데, 미술치료에 관심이 많은 경희샘은 줄기차게 ‘빗 속 사람 그림’을 얘기한다. 이상심리에서 반 아이들 대상으로 검사해 본 경험이 떠올라 찬성했다. 간단한 그림이지만 현재의 스트레스 상황이 드러나는 그림 검사다. 지난 실습 회기에서 늘 다뤄지는 부분이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는 과도한 일상이 버거운 학우들의 이야기를 스트레스로 진단하여 풀어보기로 한다.
서로의 시간을 맞추느라 늦은 밤 줌으로 반갑게 만난다. 어색하던 샘들도 공동의 목표가 생기면서 자신을 편안하고 용기있게 개방할 수 있다. ‘빗 속 사람’ 그림을 그리며 자기의 이야기를 한다. 35명이 넘는 학우와 매의 눈을 하고 바라보는 교수님이 함께하지 않아서인지 우리는 별 부담없이 웃기도 하고 눈시울을 붉히기도 한다. 역시나 이번에도 자녀 이야기(특히, 말썽꾸러기 아들)에서 맘이 요동친다. 내가 먼저 꺼내지 않은 이유는 별일 아니라고 그럴 수 있다고 저번 건보다는 그리 큰 문제는 아니라고 합리화하며 꾹꾹 누르며 진정 중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아들보다 더 큰 남자아이의 엄마인 해경샘과 경희샘의 솔직한 사례담과 그 일을 겪어내면서 정리된 자신들의 현재를 들으며 나는 ‘ 아, 내 아들은 아직이구나, 이 정도로 힘들다하면 안되겠구나.’하며 위안 아닌 위안으로 마음이 가라앉는다. 분위기를 살리려고 내 스트레스는 다이어트라고 말한다. 4월부터 시작된 ‘스스로 다이어트’(약이나 주사 따위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온전히 나의 의지로 클래식하게 식단과 운동만으로 살 빼기)에 지대한 관심과 열정으로 진행 중이다. 삐끗 하루이틀 망가지면 말짱 헛일이 되는 것을 알기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내 모든 화두를 다이어트에 두고 있다. 그러다보니 먹은 것, 먹고 싶은 것에 스트레스가 생긴다. 특히, 먹고 싶은데 먹을 수 없는 것은 자꾸 머릿속에 맴돌며 고민하게 만들고 의지와 욕구의 팽팽한 대립으로 긴장감과 불안이 높아져 아드레날린이 마구 흘러나오는 기분일 때가 많다. 다행히 몸무게의 변화가 보여 나름 만족스러움과 희망의 단계여서 아직은 버틸만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별일 아니라고 여겼던 다이어트가 지금 나의 진짜 스트레스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말로 구체화하여 뱉어놓으니 진짜처럼 보이고 그로 인한 내 안의 수많은 갈등과 노력이 오롯이 살아난다. 포기하고 뒤돌아보는 상황이 아니라 ‘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하고 있네. 너 멋져 보여. 좀 더 해 보자.’하는 메시지가 나에게서 나에게로 온다. 인식하고 시인하고 함께 웃고 응원해주니 그 에너지가 전해져 따뜻한 위로와 격려가 된 것이다. 친구와 둘이 만나서 얘기 나누는 것과는 차원이 좀 다르다. 수업이나 상담이라는 타이틀로 구조화된 모임이 주는 공적인 분위기로 인해 서로 주고받는 말의 힘이 커지고 느껴지는 에너지가 강력하다. 실습 연습으로 실시한 조 모임의 나눔은 3주가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2회기 유나샘의 진행으로 거울을 주며 자신의 스트레스가 해결된 기적적 상황을 상상하는 경험은 실제처럼 생생하다. 성공적으로 다이어트를 마무리(? 물론 유지를 위한 다이어트는 계속 되겠지만)한 나의 놀라운 바디프로필이 펼쳐진다. 화면 속 거울에서 활짝 웃으며 포즈를 취한 나의 늘씬한 모습이 경이롭다. 냉장고에 워너비 몸매의 배우나 나의 리즈시절 모습을 붙여 놓으라는 조언이 이해가 된다. 단지 몇 마디 질문으로 내 안의 긴장감을 이렇듯 푸근한 희망으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체감된다. 현장에서 상담을 하고 있는 친구의 해결중심상담에 대한 인정을 넘어선 추앙이 이런거구나하고 살짝 알 것 같다.
3번의 줌 모임 후, 우리 조 6명은 단톡방에서 실습에 대한 이야기 말고 개인적 수다를 나누게 된다. 열심히 준비하고 해결중심상담이론에 대해 자신감이 생기면서 학우들과 해 볼 수업이 기대되는 만큼 파이팅이 넘치는 분위기다. 리더를 맡은 두 샘의 긴장과 불안을 서로서로 보듬으며 따뜻한 말을 한다. 코리더가 있지 않냐하며 각자의 역할을 잘 해보자고 다짐한다.
역시나 실전은 변수가 많다. 우리는 기본 이론을 미리 살펴봐서인지 집단상담의 흐름을 방향성 있게 잡고 나아가는게 수월했는데, 수업에서는 난해한 시작이었다. 자신의 현재 스트레스를 솔직하게 개방해 줄 집단원의 이야기가 필요했건만 몇 샘들의 두루뭉술한 스트레스 대처방식이 주를 이룬다. ‘이게 아닌데...’하며 정신줄을 잡아가며 디테일한 한마디에 주의를 집중한다. 해결중심이론은 문제보다 해결에, 약점보다는 강점에 집중하도록 질문을 던져야 한다. 예상한 전개는 아니었지만 나름 용기있게 말해주는 샘들의 이야기를 세밀하게 듣고 진심의 격려와 칭찬의 마음을 전해본다. 순간 듣고 있던 샘의 밝고 환해지는 표정의 변화가 보인다. 우린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남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말로 남에 대해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말라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상대의 진심어린 말은 나를 기운나게 한다.
연습 때보다 더 준비하고 노력한 두 샘(리터 역할)은 능숙하고 여유롭게 상담을 이끈다. ‘진행하지 말고 던지기만 하자’고 수없이 다짐한 모양이다. 중심을 이루되 주인공이 되지 않는 리더의 은밀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기대하며 자꾸 코리부부가 오버랩된다. 환상의 하모니를 이루며 집단원을 어르고 당기고 밀며 그들이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누면서 내면의 진정한 자신을 인식하고 해결의 장으로 용기있게 나오도록 안내하고 격려한다. 집단상담의 묘한 매력이 모니터 화면에서도 느껴진다. 집단원 모두의 활발한 참여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시간의 여유만 허락된다면 더 많은 간증과도 같은 사례담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수업을 마치고 우리 조원들은 크고 긴 한숨을 쉬는 분위기다. 모두 제 자리에서 긴장하고 맘 졸이며 ‘이 말을 할까 말까, 내가 말해도 될까’ 망설이며 리더로서(또는 코리더로서) 제 역할을 잘 해내고자 고군분투했다. 우리의 실습을 피드백하며 서로의 어깨를 다독이는 게 보인다. 나중에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2차 수업 후기를 나누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