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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미용 Dec 30. 2022

'나를 아끼시나요?'

5학년을 마치기 3일전이다.

잔뜩 눈에 힘을 주고

'6학년이 되면 예비 중학생이다. 중학교는 초등학교와 많이 다르다.'

'5학년 말을 산만하게 보내면 절대 안된다. 흐트러지지 말고 안전하게 5학년 마무리하자.'

창 밖 흰눈을 보며 강아지처럼 좋아 팔짝 뛰는 아이들에게 찬물을 끼얹는다. 올 12월은 눈이 자주 와서 아이들이 차분해지기는 더욱 힘든 상황이다. 


나의 분위기 다잡기 엄포에도 불구하고 (레임덕 현상인가) 이 때쯤이면 평소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일들이 스멀스멀 생긴다. 학기 초 한참 너도나도 인형을 들고 온 후부터 학습준비물이 아닌 것은 절대 금지인데 살자쿵 소소한 걸 가지고 등교한다. 오늘 아이들의 관심을 다 끌어모은 것은 '거짓말 탐지기'다. 어제 생일을 맞은 세윤이가 받은 선물이라며 해맑게 자랑하는 데 '공부와 상관없는 건 가져오지 말랬지!'라고 말하지 못했다. 대신'어, 나도 그거 해봤는데. 전기 충격와서 깜짝 놀랐었는데..'했다. 가지고 놀아도 된다는 무언의 허락이 돼 버렸다.  등교하는 아이들이 자동적으로 '거짓말 탐지기'로 모인다. 여러가지 명제를 만들며 문장의 주어격인 아이의 손을 집어 넣는다. 

'철수는 영희를 좋아한다' 대강 이런 내용이다. 낄낄대며 기대 한가득 안은 초롱한 눈으로 결과를 지켜본다. 탐지기가 Yes를 답하면'띵동', No라면 '지지지지'진동이나 가벼운 전기충격이 가해진다. 예스든 노든 열렬한 반응이 이어진다. 그저 신나고 재미있다. 잠깐 자기들끼리 하는 가 싶더니 우르르 내 주위로 몰려든다. 

나는 아이들의 게임을 귓등으로 듣고 있어서 멋진 명제를 내가 만들어 내는 줄 알았다. '나는 5학년 6반을 진심으로 사랑한다.'해 봐야지 하고 있는데, 나는 손만 넣는 거란다. 이쁜 여자아이가 나와 마음이 통했는지 저기서 걸어오면서부터 나와 같은 걸 묻자고 한다. 그런데, 검은 색깔의 커다란 상체로 밀고 들어오는 한 아이가 있었으니 바로 나와 수많은 상담 시간(하교 후 남아서 둘이 마주보고 앉아 이야기하는)을 가졌던 승0이다. 비실비실 웃으며 다른 아이들의 문장을 단박에 눌러 버리는 단호한 물음이다. 

"나를 진짜로 아끼시나요?"

'헉' 열명의 스무 눈동자가 지켜 보는데 응하지 않을 수 없고, 더구나 지지지지 진동으로 판명난다면 나도 승0이도 난감할텐데...어쩌나. 

당당히 손을 집어 넣는다. 승0이는 한 번 더 조심스로우면서도 간절하고 기대하는 떨림으로 묻는다.  

"나를 진짜로 아끼시나요?"

"넵!"

.

.

.

짧지만 무척 길게 느껴지는 찰라가 지나간다.

"띵 똥"

가장 안심한 사람은 바로 승0이다. 사실 나는 거짓으로 판명나면 이 두더지 같이 생긴 거짓말 탐지기가 아닌 거짓말쟁이를 던져 버릴 심산이었다. 다행이다. 그랬다면, 망가진 탐지기를 어루만 질 세윤이를 달래야했을텐데...더 강력한 물음없이 아이들은 자리로 들어가 누가 누구를 좋아합니까를 이어간다. 


승0아, 선생님은 진심으로 정말로 진짜로 사실적으로(헉헉헉)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할 수 있단다. 너와 내가 함께 마주 앉아 보낸 시간이 얼마니? 그 때마다 내가 너에게 심었던 말이 바로 이거였잖니.

"선생님이 너를 많이 아끼고 사랑해서 하는 말이란다."

넌 나의 말에 세뇌됨과 동시에 많은 아이들 앞에서, 그리고 기능을 신뢰하는 거짓말 탐지기에게서 확인받고 싶었던 거다. 이제 믿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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