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우리'를 보고

'집'은 사랑이다.

by 윤미용

쿠팡 플레이에서 와우 회원에게 3일간 '만약에 우리' 영화를 무료로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최근에 개봉하였고 의외의 관객수를 동원하며 회자된 영화라 '한 번 봐야지...'하던 차에 무료 상영 기간을 기억해 보게 되었다. 남자 주인공의 현실감 있는 연기 떄문인지, 그들의 개인적 사랑이야기는 '나는?'이라는 질문으로 옮겨왔다.


청춘들의 로맨스는 이제 내 관심사가 아닌데.. 이 영화는 소소하고 있을 법한 이야기여서인지 자꾸 '나는?'이라는 대입이 이어졌다. 영화에서 서로에게 향하는 우정, 관심, 믿음, 의지 등이 사랑으로 변한다. 그 사랑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발전시키기에 그들의 환경은 지난하다. 예상한대로 그들은 빗겨 나가게 되었고, 나중에 우연히 만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영화의 마지막 쯤에서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에게 '그 때의 나에게 집이 되어줘서 고마웠어.'라고 말한다. 갈 곳이 없어 남자 주인공의 집에 들어가게 된 그 '집'이라기 보다는, 그 시절의 그녀를 단단히 지켜주던 따뜻하고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준 그에게 전하는 감사의 말이었다. 그 대목에서 왈콱 눈물이 났다.


'나에게 집이 되어 준 누군가가 있었을까?' '나는 누군가의 집이 되어 준 적이 있었는가?'라는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영화를 본 날 오전에 있었던 일이 오버랩되며 이후 3일간 절망감과 무기력이 나를 집어삼킨다. 사실 일주일간은 나를 마냥 방치하고 싶을 정도로 우울했다. 주일이 되어 교회도 가고, 식사를 하며 웃고 떠들기도 했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처럼 문득문득 낯설었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한 단어로 바뀌어 나를 파고들었다.'저들처럼 사랑해 본 적이 있는가? 없다면 나는 사랑을 아는 사람일까? 내 아이들에게 쏟는 일편단심 절절함은 뭔가? 나보다 엄마의 안위를 더 걱정하는 이 애뜻함은 뭘까?' ' 책임과 사랑은 다른 것일까?'


세상에서 '사랑'은 삶의 의미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노래도 글도 이야기도 늘 '사랑'이 주제가 된다. 영화를 보고 던져진 질문은 어쩌면 역할에서 벗어나 오롯이 '나' 개인의 서사를 들춘 것 같다. 그러다 애꿎게도 화살이 하나님께로 향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무수히 들었건만.. 내가 '사랑'에 대해 확신 없이 답답해 하는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제대로 사랑을 알려주지 않아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떼쓸 대상이 생겨 안도감이 들었다. 내가 궁금해하는 그 사랑을 나에게 알려주시라고요!!라고 외쳤다.


그 날 저녁예배에서 내 간절한 외침의 답이 찾아왔다. 가슴을 후비는 허전함은 이제까지 긴 시간 이어졌고 이후로도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어떤 관계의 끝을 받아들이는 상실에 대한 애도의 과정이었다. 그것이 필요한 순간이라면 아프더라도 감당해야 한다는 깨달음이 일어났다.

이름이 지어지고 형체가 드러난 감정은 이제 내가 리드한다.


하나님이 나에게 사랑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핑계는 내 눈을 가린 어둠의 탓이다. Passion of Christ....에서 보여준 죄 없이 채찍질 당하신 예수님의 담담한 수용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 장면이 바로 나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이었다. 한없이 죄송한 마음에 예배 후 기도실에 들어가 한참을 회개하며 울었다.


나는 세상 누구에게서도 받을 수 없는 '사랑'을 이미 받은 사람이다. 그 '집'에서 나는 살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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