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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미용 Oct 13. 2021

주먹만 내는 선생님

요즘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는 재미있다.

단원을 마무리하며 주사위게임으로 대략적인 학습 내용으 정리하기도 한다.

게임.놀이 

두 단어만 나오면 아이들은 흥분한다.

특히, 좋아하는 것은 강당에서 맘껏 뛰어노는 활동이지만

교실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게임과 놀이에 누구 하나 싫은 내색하는 아이는 없다.

가끔 아이들을 보면, 너희들은 뛰고 놀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 존재의 이유를 학교에서 교실에서 맘껏 발휘하고 행복하면 되는 거겠지..


주사위 게임의 한 칸에 이런 말이 있다. '선생님이랑 가위바위보하기, 이기면 3칸 앞으로'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기발하다.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주사위를 굴려가며 게임을 하다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기대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온다.

"선생님, 가위바위보 해요~"

무슨 특별한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닌데, 난 계속 주먹을 낸다.

워낙 가위바위보에 재주(가위바위보는 고도의 두뇌게임아닌가.)가 없기도 하지만, 주먹만 내다보니 나름 재밌다. 눈치빠른 아이는 금방 알아챈다. 두번째 가위바위보에서 바로 보자기를 내며 이겼다고 좋아한다.

어떤 아이는 나와 비슷하다. 계속 주먹만 낸다. 시간차를 조금 주며 내가 먼저 주먹을 내도 그 아이는 계속 주먹이다. 이건 뭔지....그러다가 끈기있게 주먹을 내는 나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보자기를 내며 승리한다.

제자리로 들어가며 아이들에게 속삭인다. '선생님은 주먹만 낸다!'

소문을 들은 아이들은 정말? 혹시? 하는 맘으로 내 앞에 선다. 난 정주행이다. 계속 주먹을 내며 아이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준다. 난 계속 지고, 아이들은 계속 이긴다.

가위바위보에 주먹만 내면서...새삼스레 이런 생각이 든다.

'그래, 애들아, 주먹만 내며 져주는 선생님처럼 너희들에게 늘 져주는 이들이 옆에 있으면 참 좋겠다. 그럼, 세상도 살만하겠지? 그러다보면 너희도 자발적으로 누군가에게 져 줄 수 있을테고.."

사실,이 나이의 나에게도 늘 져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우기면 맞다고 편들어주고, 내가 먹고 싶은 걸 결정하면 나도 그게 먹고 싶었다고 맞장구치며 한 맘으로 메뉴를 정할 수 있는 그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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