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20.
내일(20일)까지 성적처리를 마쳐야 한다.
12월은 일 처리가 가득하다. 우선,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12월 6일까지 대학원 발달심리과목의 어마어마한 과제를 해내야 하는 것이다. 과제는 성찰 보고서로 대학원을 마무리하며 제대로 해내고 싶어 무시로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하던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일상적인 것들은 스킵하게 되고 방금 뭘 해야지 했던 것들을 계속 까먹었다. 또, 12월 8일은 전학공 회원 대상 공개수업 날이다. 공개수업은 회원 대상이고, 내가 평가받는 게 아니라 우리 반 아이들에게 성취감을 주려는 의도라 부담도 걱정도 없었으나, 아이들에게 확인하고 신경 쓸 것들이 꽤 있었다. 마감 기한을 카운트 다운하면서 그날 할 일을 빼곡히 적어나가던 시간들이다.
12월 9일까지 생활기록부에 학교스포츠 클럽 운영 내역을 입력하라고 했다는 걸 오늘(19일) 알았다. 존재감 없는 스포츠클럽 입력은 성적을 대강 마무리하고 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읔, 이게 뭐람. 저장 버튼이 활성화되지 않고 [시도마감]이라고 칼라로 떡하니 쓰여있다. 아무리 누르고 눌러봐도 입력 불가다. 난감하다. 학교 일은 정해진 기간에 제대로 해내야 하는 게 철칙인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식은땀이 난다. 담당자에게 문의 해 본다. 9일까지 입력하라고 메시지를 보냈다고 한다. 나는 2~3번의 메시지를 그냥 날려버린 것이다. 정말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다행히 2주 후 시교육청에서 입력할 수 있도록 열어준다니 최종 생기부에는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진작에 학교를 관둬야 했어. 난 늘 실수투성이야. 저번 대학원 장학금 신청도 놓쳐서 맘고생 했는데, 얼마나 지났다고 또 이러냐고!!! 이렇게 구멍이 많은 내가 앞으로 혼자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 등 나를 후벼 파는 자동적 사고가 먼저 끼어든다. 내가 미워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또한 자동적으로 남을 탓한다.
‘담당자는 뭐 한거야? 한 번 더 확인하고 챙겨주면 안 되나? 참, 요즘 젊은애들은 책임감이 부족해. 그리고, 뭐든 메시지로 전달하는 요즘 시스템도 문제야. 예전엔(라때는이 자연스럽게 시작된다.)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전 직원이 모여 회의라도 하며 중요한 사항을 챙길 수 있었는데.. 이젠 완전 개인주의야. 다 각자 교실에서 꼼짝을 안 하고 틱틱 메시지로만 소통하는 이 현실이 문제야’
생기부는 이번 학년도를 마감 짓기 전, 옆 반 교사- 다른 학년 교사- 또 교무가 그리고 교장까지 검열이 계속된다. 잘못 입력되면 수정도 복잡해 완벽을 기하는 과정이다. 2월 말에 생기부를 마감하게 되니 시간상으로 가능한 일이지만 이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할 전적인 나의 불찰이다.
담당자(학교 그리고, 나이스 센터까지)와 통화하며 안절부절 수습을 해 보지만 2주를 기다려야 하는 방법 뿐이다. 허탈하게 퇴근을 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술잔만 기울인다. 나를 책망하다 위로하다가 무한 반복된다.
‘너무 너무 바빴잖아, 12월에 그렇게 많은 걸 해 내기엔 무리였어.’
‘그럼 미리미리 좀 하든지, 아직도 미루고 게으름 피우는 못된 습관 못 고친거야?’
‘그건 내 기질이자 성향이라고. 집중력있게 해내는 저력을 내가 믿지 그럼 누가 믿어줘?
다 해내고 있잖아.’
‘그걸 말이라고 해? 이번에 입력 기한 놓친 사람은 전교에서 너 혼자 뿐이야. 잘났다. 교장이 그냥 넘어가겠어? 직접 말은 안 해도 널 어떻게 생각하겠냐고? 맨날 전학공 기안만 하고 출장이랍시고 나가기에 정신 없고....’
‘이 나이에, 그것도 내년에 퇴직할 거면서 교장 눈치를 왜 보니? 뭐라하면 당당히 말해. 잘못이 아니라 실수라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 건 아니지 않냐고..’
‘소설을 쓴다. 하하하. 그래, 그럴 수 있어. 너 너무 바쁘고 일 많았던 거 인정해. 앞으론 뭐든 꼼꼼히 보자. 어쩔 수 없이 느슨해지고 구멍 많아지는데 정신 차리고 실수하지 말자. 조직에서 책 잡힐 일은 절대 하지 말자. 남은 1년 정신 차리자. 메시지 오면 바로 확인하고 처리하자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취기와 냉온탕을 넘나드는 정서 과잉으로 피곤이 겹쳐 잠자리에 든다. 어김없이 내일이 온다. 그러니까 바로 오늘이다. 40여분의 출근길 차 안에서 어젯밤에 이은 2차 공방이 시작된다. 어제와는 다른 비교적 차분하고 약간 비관적인 분위기다. 일차적인 문제에서 벗어나 내 깊은 곳을 향한 성찰이 든다. 눈물이 스민다.
‘나 왜 눈물이 날까?’ 눈물샘을 건드린 건 구체적으로 뭘까? 결핍감을 준 그것, 나에게 진정 필요했던 건 무엇일까? 스스로 충분히 객관적 바라보기를 했고 나름의 건설적 다짐도 했건만 이 아침 나를 안쓰럽게 느끼는 이 멜랑꼬리한 감정은 도대체 무엇인가?
혼자 나눈 주거니 받거니를 누군가와 하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아무리 나를 난도질하듯 정죄하고 비난해도, 그러지 말라며 극으로 치닫는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진심으로 변호해 줄 육성을 지닌 실체가 필요했다. 그걸 하지 못했고, 할 수 없는 내가 긍휼하게 느껴졌다. 눈물은 그런 나를 알아주는 위로이자 공감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혼자를 충실히 즐기고 누릴 줄 알아야 한다. 내 가장 좋은 친구는 ‘바로 나’로 정했다. 누구도 나와 똑같은 상식을 갖고 세상을 재단하는 사람은 없다. 가끔 실망스럽고 이해불가인 상대를 보며 나와 다른 기준과 잣대를 가지고 있는 그를 인정(포기,무시)하는 게 최선이라는 답을 내린다. 나와 다르니까, 같을 수 없으니까 그것 때문에 힘들고 지치면 가만히 손을 놓자 하면서 관계의 바운더리가 좁아지고 있다. 이러나 나 혼자 남는 건가? 라는 불안함도 들지만, 이건 자연스러운 오히려 현명한 나이듦이라고 위안한다. 내가 상대에게 전혀 기대하지 않고 내 것(시간, 물질, 마음 등)을 내어줄 수 있으면 된다. 준 것 자체에 만족하고 그것으로 내가 행복하고 충만했으면 된다라고 곱씹으며 관계의 기준을 세우는 중이다.
오늘 아침의 눈물은, 누군가를 원하나 그런 사람은 절대 없으며 나는 그 누구에게도 온전한 충족을 누릴 수 없다는 진리와도 같은 사실을 인정(말로만이 아닌 인식시스템으로)하기 위해 건너야 할 울퉁불퉁한 다리에서 넘어져 무릎이 좀 까였기 때문이다. 이 다리를 넘으면 헛된 기대와 갈증으로 생기는 결핍감보다 내적 충실함으로 푸근하고 잔잔한 토닥임을 맛보는 날이 더 자주 있을 거라고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