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를 떠올리며, 조용히 꺼내놓는 기억
문득 예전에 식이장애를 처음 겪었던 시절이 떠올랐어요.
아마도, 그날이 다시 가까워져서 그런 걸까요.
괜히 마음이 센치해졌습니다.
그 시절 나는 아주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어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혼자서 폭식과 거식을 반복했고,
우울은 깊고 무겁게 하루를 덮었죠.
당시 나는 가족 외에는 그 어떤 누구에게도 내 이야기를 하지 못했어요.
식욕은 폭발했고, 다시 극도로 줄었고,
몸은 말라갔지만 마음은 더 무너지고 있었어요.
병원을 몇 군데 옮겼고, 상담도 몇 번 바꿔봤어요.
하지만 대부분은 약을 처방해 주는 것에 그쳤고,
“내가 왜 이런 식이 행동을 하는지”
“이게 내 감정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말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그래서 오랫동안
나는 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스스로를 자책하며 버티고 있었어요.
요즘은 조금씩 달라졌어요.
지금은 병원과 더불어 온라인 상담도 병행하고 있고,
식단에 대한 피드백도 받고 있어요.
그 덕분에 이제는
“익스트림 헝거”라는 걸 겪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예전에는 그냥 내가 참을성이 없거나,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해서 그렇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게 회복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이건 병원에서는 말해주지 않았던 이야기였고,
상담을 통해 스스로 알아차려야 했어요.
지금 내가 신경 쓰고 있는 건
가공식품을 줄이고,
가능한 한 일반식을 규칙적으로 먹는 일이에요.
물론 강박이 있어서
여전히 매일 일반식을 먹는 건 어렵지만,
그래도 가공식품은 예전보다 확실히 줄였어요.
우울이 갑자기 몰려올 때는
상담 약속을 기다릴 수 없었기에
청소년상담전화 1388을 이용하거나,
가족 중 유일하게 나의 상황을 알고 있었던 고모에게 연락했어요.
초기에는 거의 매일 고모에게 연락했어요.
그게 나를 붙잡아주는 유일한 끈 같았거든요.
도저히 버틸 수 없을 땐
일기를 쓰거나, 그냥 눈물만 흘리기도 했어요.
그렇게 하나씩 감정을 꺼내놓고 나니
조금씩 숨 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우울도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어요.
물론 가끔은 다시 무너지는 날도 있어요.
하지만 고모가 있었기에,
그리고 상담사분들이 들어주었기에
나는 이만큼 버틸 수 있었어요.
처음 1388에 전화했을 땐,
내 이야기를 누군가가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어요.
그 상담사분은
나에 대해 아는 건 성별과 나이뿐이었지만,
그래서 더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답을 주진 않더라도
“그럴 수 있어요.”
“그 상황이라면 정말 힘드셨겠네요.”
그런 말 한마디가 나에게는
하루를 견딜 수 있는 힘이 되었어요.
누군가에게 힘들다고 말하는 일,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더라고요.
처음엔 그게 잘 안 됐어요.
말해도 나아질까 싶었고,
괜히 민망해질까 두려웠어요.
그런데 막상 털어놓고 나니,
내 마음속에 쌓여 있던 것들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느낌이었어요.
해결이 되지 않아도,
그 순간만큼은 덜 외로웠거든요.
나는 아직 누군가를 도울 만큼 단단하진 않아요.
하지만 이렇게 조심스럽게라도
내 마음을 꺼내어 보는 연습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쉼이 되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지금 어딘가에서 조용히 버티고 있는 당신에게,
그 마음만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우리, 각자의 속도로 괜찮아지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