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프면 생야채로 배를 채우던 날들

부끄럽거나 이상한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

by 살쪄도괜찮조

배가 고팠어요.
그런데 뭔가를 제대로 먹는 건 너무 무서웠어요.
밥도, 김밥도, 심지어 과일도 겁이 났어요.
살이 찔까 봐, 내가 무너질까 봐.

그럴 때마다 꺼내 먹었던 건
익히지 않은 생야채였어요.
간도 하지 않고, 따뜻함도 없이
그냥 그 상태 그대로.
양배추, 당근, 파프리카 같은 것들.

처음엔 조금씩 먹었어요.
‘이건 괜찮아, 살 안 쪄’
스스로를 그렇게 안심시키며.

그런데 점점 무의식적으로
계속 먹게 됐어요.
조금씩 오래 씹는 것도 아니고
입으로 넣고 또 넣고,
아무 맛도 없는데
배가 찬 건지 마음이 허한 건지
모를 정도로 계속 먹었어요.

그 시절의 나는,
진짜 배고픔보다도
두려움과 죄책감,
그리고 외로움 속에서
무언가를 채우고 있었던 것 같아요.

어디까지가 괜찮은 양인지,
어디서 멈춰야 할지 몰랐어요.
어쩌면 ‘먹는다’는 그 자체보다도
‘먹고 있는 나’를 숨기고 싶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때보다 조금 나아졌어요.
무조건 참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이젠 아주 조금씩,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배우고 있어요.

생야채만으로 버티던 날들을
‘나 참 이상했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그건 분명 아팠던 시기였어요.
그리고 그 시절의 나도
나름대로 살아보려 했던 거니까.


지금은 그때보다는 조금 나아졌어요.
예전처럼 무조건 참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이제는 천천히 배워가고 있어요.

그땐 그저 버티는 게 전부였지만,
이젠 따뜻한 밥도, 나를 위한 식사도
조금씩 다시 시작해보려고 해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닭가슴살만 먹던 날들, 그래도 나는 괜찮아지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