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리가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나는 혼자만의 규칙을 가지고 있다.
누구에게 말해본 적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규칙.
이 규칙이 지켜지면 마음이 조금은 편안하고,
깨지는 순간 폭식이 시작된다.
내 규칙은 단순하다.
“가공식품만 먹기.”
편의점 김밥, 닭가슴살, 삶은 계란, 곤약 젤리.
칼로리가 적혀 있는 음식만 먹을 수 있다.
집 반찬은 잘 못 먹는다.
엄마가 끓여둔 된장찌개, 멸치볶음, 김치조차도.
칼로리를 알 수 없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그릇 앞에 앉아도 젓가락을 들 수가 없다.
가끔은 참지 못하고 밥 한 숟갈을 떠먹는다.
그 순간 머릿속에서 계산기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밥 한 숟갈에 몇 칼로리지?
반찬까지 합치면 도대체 얼마나 될까?”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결국
“어차피 망했다”는 말로 끝난다.
그리고 그 말이 나오면 멈출 수 없다.
냉동실, 냉장고, 찬장을 계속 열어보며
먹을 수 있는 건 다 꺼내게 된다.
배가 불러도, 속이 아파도 멈추지 않는다.
사람들은 음식에 규칙이 왜 필요하냐고 묻겠지만,
나에겐 그게 안전망 같은 거다.
그 규칙을 지킬 때만 안심할 수 있고,
깨지는 순간 스스로를 붙잡지 못한다.
오늘도 나는 계산기를 들고 음식을 고르며,
내가 만든 규칙에 매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