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말을 아끼는 시간에

by 정상환

이른 아침에는 세상이 아직 나를 부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스크롤 대신 종이신문을 펼친다.
하루를 가장 조용하게 여는 방식이다.


주말 이른 아침이면 슬그머니 집을 빠져나온다.

모처럼 늦잠을 자는 아내의 수면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하지만 그 시간대의 공기가 좋아서다.

하루가 본격적으로 말을 걸기 전, 모퉁이 같은 시간.

그 여백 속으로 나는 커피 향과 함께 스며든다.


이른 아침 문을 여는 카페는 없다.

대신 무인카페의 불빛이 아침 공기를 가르고 있다.

자동문이 열리고, 사람 대신 기계가 나를 맞는다.

주문을 재촉하는 목소리도, 쓸데없는 대화도 없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찾는 건 오히려 이 조용함이다.

익숙한 AI 목소리가 들리고, 커피가 내려오는 소리만이 공간을 채운다.

자리에 앉아 가방에서 신문을 꺼낸다.

이 순간이 좋다.


종이신문은 온라인 뉴스와 다르다.

화면 속 뉴스는 끝없이 스크롤해야 하고, 무엇을 먼저 볼지는 대부분 알고리즘이 정해준다.

그러나 종이신문은 정치, 경제, 사회, 외교, 문화와 예술까지 한눈에 하루를 펼쳐 보인다.


지면의 배열과 사진의 크기, 제목만 훑어도 세상을 꿰뚫것 같은 우쭐함이 생긴다.

그것은 정보의 나열이 아니라, 하루의 풍경을 담은 지도에 가깝다.

나는 신문을 읽을 때 순서를 정하지 않는다.

그날그날 눈길이 먼저 머무는 곳부터 시작한다.

어떤 날은 '한 사람의 인생'이 시선을 붙잡고, 또 어떤 날은 따듯한 작은 사진 한 장에 오래 머문다.


그렇게 흐르는 '세상 읽기'는 계획되지 않은 여행이다.

손끝으로 지면을 넘길 때마다 생각도 함께 방향을 바꾼다.

아래위 스크롤이 아닌 ‘넘김’이 사고의 리듬을 만든다.

종이신문을 읽는 것은 '생각 에스프레소'를 원샷하는 것과 같다.

'생각의 공복'을 짜릿하게 훑는...


커피 향으로 시작된 아침은 신문으로 이어지고, 신문은 다시 글로 이어진다.

주말 아침의 이 습관은 나에게 작은 즐거움이다.

무인카페의 고요, 커피의 따뜻함, 신문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그리고 그 뒤에 찾아오는 사유의 시간.

종이의 질감, 지면의 전체성, 그리고 그 속에 남아 있는 여백은

한 손에 쥐어진 '딱딱한 기계'에선 절대 찾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종이신문을 펼친다.
세상이 아직 말을 아끼는 시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