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정보는 권력이다. 오늘도 난 그걸 증명했다.

다 별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길을 밝히고 꿈이 되어야 진짜 별이다.

by 부라퀴버스터

- 믿을 수 없겠지만 등장인물들과 회사명을 제외한 대부분의 주요 내용은 현실에 기반한 이야기입니다.

* 부라퀴 : 자신에게 이로운 일이면 기를 쓰고 덤비는 자들을 일컫는 우리말입니다.



“우린 줘 터져 가면서 배웠죠. 그땐 쌈꾼이었죠. 아침마다 부러진 데 없는지도 살피고.”

“요즘은 나가서 취재도 않고 메신저로 노닥거리는 게 다야.”

모두가 웃었지만, 진규는 웃지 않았다. 그의 눈은 이미 테이블 아래, 사람들의 손가락 끝과 휴대폰 불빛을 훑고 있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웃는 자리일수록 귀를 세워라’는 걸 배웠다.

“정 팀장은 내 기업참고서야, 정보가 포탈보다 빠르고 확실해. 누르면 바로 나오는 AI라고나 할까. 굵직한 M&A나 딜에 대해 모르는 게 없어.”

“형님의 비밀병기까지 공유하다니, 이렇게까지 챙겨줄 줄은 몰랐습니다.”

“앞으로 자주 뵙죠, 팀장님.”

투데이뉴스 신은호 차장이 먼저 아는 체를 했다. 함부로 곁을 내주지 않는 신은호. 하지만 이경식의 말에는 무장해제였다. 기자들이 진규를 향해 반가이 잔을 부딪쳤다. 그의 얼굴에는 겸손한 미소가 걸렸지만, 속에서는 미세한 경보음이 울리고 있었다. 한바탕 마시고 난 뒤에 추가로 맥주를 가지러 갔다 온 순간, 귀에 스쳤다.

‘검사… 뇌물… 압색…’

기자들끼리 소곤소곤. 짧은 단어 세 개.

뭔가 있었다. 본능적으로 진규의 등줄기를 훑고 지나가는 서늘함. 하지만 확실한 걸 쥘 때까진 모르쇠로 일관했다.

“요샌 후배가 상전이야 상전, 글 안돼. 근성 없어. 부지런하지도 않은데 위아래도 없어.”

“예전에 회식하면 우리가 막내였는데, 후배님들 바쁘셔서 아직도 담배 심부름 해요.”

“게다가 조금만 뭐 하면 아재 냄새난다고 지랄들이죠.”

“그니깐 우리끼리 뭉쳐서 마셔요. 정 팀장은 준멤버니까 에브리타임 오케이요.”

그렇고 그런 말을 주고받으며 한참을 웃었다. 그러다가 이경식이 담배를 제안했다.

“거국적으로 담타 어때?”

다들 주섬주섬 담배와 라이터를 챙겨 들고 우르르 몰려나갔다. 바람이 불었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그 사이에서 또 한 줄기 말이 새어 나왔다. 주어가 없으면 모를 얘기지만, 진규는 눈을 가늘게 떴다. 담배연기를 막기 위해 그리고 귀도 닫힌 척했다.

“계열사 대표가 뇌물 줬대. 내일이라도 압색 들어간대.”

“그 김 사장이 권 검사 동문이라네. 서울대라지.”

진규의 심장이 크게 한 번 뛰었다.

‘한국대, 권 검사, 김 사장… 현성이 분명하다.’

그는 침착하게 웃었다.

“하하, 역시 세상은 좁네요.”

그리고는 담배를 비벼 끄며 딴청을 피웠다.

“오줌이나 한발 갈기고 오겠습니다.”

화장실로 향하는 복도. 진규는 뒤를 흘끗 확인하고선, 재빠르게 휴대폰을 꺼냈다. 손끝이 약간 떨렸다. 임재성 상무는 바로 받았다.

“정 팀장?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다급한 상황인데 목젖까지 말랐는지 말이 쉽게 터지지 않았다. 침을 두어 번이나 삼키고서야 소리를 찾았다.

“지금 술자리인데요, 이상한 말이 들렸습니다.”

“무슨 말?”

“현성그룹, 곧 검찰 압색 들어간답니다. 권영준 검사, 뇌물 수사 중이래요. 한국대 동문이라고… 김현수 사장 얘기 같아요.”

짧은 정적. 그리고 임재성의 낮은 한숨.

“고마워. 정 팀장 아니었으면 내일 우리 끝장날 뻔했다.”

“에이, 다 덕분에 제가 살아있죠.”

“쓸데없는 소리 말고, 끊어. 바로 조치 들어간다.”

통화가 끝나자, 진규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휴대폰 화면이 꺼지며 그 위로 그의 얼굴이 비쳤다. 그의 눈빛은, 이제 단단했다.

‘정보는 권력이다. 오늘도 난, 그걸 증명했다.’

몇 분 후. 현성그룹 재무실. 회사 근처에서 판을 벌이고 있던 직원들은 술잔을 내려놓고 사무실로 정신없이 내달렸다. 노란 장부 다섯 개, 컴퓨터 한 대, 책상까지. 모두 사라졌다. 단 10분 만에.


아직도 기자들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정 팀장은 다 좋은데, 골프를 안 쳐! 예약 잡고, 골프채까지 다 줄 테니, 맨 손으로 와.”

“그 키에 골프 안 치면 반칙이지!”

이경식과 신은호의 너스레에 진규가 웃으며 말했다.

“하하, 골프는 담에 하시죠. 안 치는 놈 하나 있는 것도 괜찮잖아요.”

그의 손끝에는 아직 미세하게 남은 떨림이 있었다. 그러나 웃음은 완벽했다.

‘누군가는 골프장 위에서 권력을 휘두르고, 누군가는 술자리에서 비밀을 건진다. 그리고 누군가는 전화 한 통으로 세상을 바꾼다.’


별일 없던 어느 늦은 오후의 휴대폰 벨소리.

예상치 못한 타이밍, 벨소리만으로도 머리 뒤쪽이 쪼여왔다.

“여보세요? 정 팀장님이시죠?”

“예, 그런데요.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한민일보 최경연 기자입니다. 명예회장님 인터뷰 건으로요.”

짧은 정적. 진규의 눈동자가 번쩍 빛났다. 한민일보. 그 이름 두 글자면 웬만한 재벌도 목에 힘이 빠졌다.

“안녕하세요, 기자님. 혹시 부회장님 인터뷰 말씀하시는 거죠? 하하.”

진규는 일부러 너스레를 떨며 방어막을 쳤다. 이직 때부터 모친인 이진희 여사는 절대적으로 대외노출을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김성운에게 몇 번이나 강조했다.

“정 팀장님, 내가 명함 보고 전화하는 사람이에요? 명예회장님, 직접 인터뷰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순간, 진규의 손끝에 힘이 풀렸다.

‘뭐? 본인이 직접… 하셨다고?’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뒤에 물러나 있지만 스포트라이트를 그리워하는 DNA가 어디 가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막았다. 언론이 늘 뱀눈을 뜨고 먹잇감으로 노릴수록 더욱더. 보도 한 줄도 조심해야 할 사람이 ‘내가 하겠어’라니. 어리다면 철이 없는 거겠지만, 그녀는 세상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무장해제 되어 한민일보 최경연이라는 맹수 앞에 던져진 건 진규 자신이었다. 사탕발린 맹수의 아가리 앞으로 웃으며 달려가는 이진희를 건져내야 했다. 하지만 막무가내로 버티다간 상처만 남을 뿐.

“그럼 약속까지 잡으신 건가요?”

“그렇다니까요. 전시회에서 뵀는데 직접 말씀하셨어요.”

“…….”

“다음 주 주말판이에요. 며칠 내로 인터뷰해야 합니다.”

“확인 후에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오늘 중이어야 합니다. 아니면 제가 직접 명예회장님께 전화드립니다.”

차가운 말투, 완벽한 칼끝이었다. 통화가 끊기자 진규는 고개를 떨구었다.

5시. 퇴근 대신 폭탄이 터졌다.

“상무님, 큰일 났습니다.”

“뭐 또.”

“명예회장님이 한민일보 인터뷰 하신답니다.”

“뭐? 그… 최경연?”

순식간에 김성운 상무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그 이름이 주는 공포는 재계 공통이었다. 진규는 숨을 고르고 말했다.

“행사장에서 직접 먼저 제안하셨답니다.”

“이럴 수가… 명예회장님이 요즘 또 언론 욕심이…”

“지금까지 다 막았는데 이번엔 저도 막막합니다.”

“조 부사장한테 보고할까?”

“그럼 일이 더 커질 겁니다.”

둘 다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왕이 칼을 빼면 신하는 숨을 죽인다.’

그게 지금 이 회사의 풍경이었다. 김성운은 핸드폰을 꺼냈다.

“유 비서, 명예회장님 아직 계시지?”

“응, 알았어. 시간만 좀 벌어줘.”

그리고 둘은 곧장 재단 이사장실로 향했다. 시간이 없었다. 먼저 움직여야 했고, 생각은 그다음이었다.

크림색 카펫은 구두 소리마저 집어삼켰다. 천장에 매달린 샹들리에, 손끝으로 닦아놓은 듯한 서류더미, 그리고 그 중심에 앉은 한 여인. 이진희였다. 세련되고 단단한, 그러나 싸늘했다.

“어, 김 상무. 나 나가야 해서 시간 없어. 왜?”



[일요일 17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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