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도 따뜻하게 보내시길...
밤새 온 비로 기온이 뚝 떨어졌다. 12월에 눈 아닌 비라니. 잿빛 하늘이 맘에 안 든다. 추워진 날씨에 배도 출출했다. 집에 도착하면 따끈한 우동 한 그릇 먹을 생각에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옷깃을 여미며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을 때, 한 노인이 서 있었다. 예전에 옆집 살던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옆집에서 4년을 살고 4년 전에 이사를 갔다.
“어머, 언제 오셨어요. 감기 걸리면 어쩌시려고. 추운데 들어가요.”
나는 할머니 손을 얼른 잡았다. 손이 꽁꽁 얼어 있었다.
“아니, 아니야. 내가 좀 바빠. 얼른 가야 해. 못 만나면 어쩌나 했는데.”
할머니는 머뭇거리며 꼼짝을 안 했다. 혹시 돈이 필요하신가, 생각했다.
전에도 우리 집에 와서 반 시간을 머뭇거리다 30만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당시 할머니 사정을 묻지도 않고 빌려드렸다. 사실 돈을 주셔도 받지 않겠다는 마음이었다.
몇 년 전 염증 수치가 높아져 내 얼굴 전체가 화농으로 뒤덮였을 때 “이쁜 얼굴 어쩌나, 이리 아파서 어쩌나”하며 나를 안고 함께 울어 준 할머니였다. 자궁암 수술로 아이들 밥을 챙기지 못할 때 밑반찬을 살며시 문 앞에 놓고 간 할머니기에 30만원이 아닌 그 이상의 돈을 드려도 아깝지 않았다.
“무슨 일 있으세요? 식사 안 하셨죠?”
유난히 작고 마른 할머니는 손에 꼭 쥐고 있던 검은 봉지를 건넸다.
“내가 정리할 게 많아. 이거 밥에 많이 넣어 먹어. 자궁암에 콩이 좋다네.”
친정엄마도 시어머니도 나를 위해 밑반찬을 해준 적이 없다. 암에 좋다는 식품을 품에 안고 온 적도 없다. 할머니의 따뜻함에 눈물이 왈칵 나왔다.
“내가 말없이 가면 안 될 것 같아서 왔어. 나이도 많고 여기저기 아파서 내일 평택에 있는 아들 집으로 가.”
여든다섯인 할머니가 아들과 같이 살면 좋은 일인데, 내 마음은 먹먹했다.
“나이가 뭐가 많아요. 요즘 백이십 세 시대인데. 오늘 제가 추어탕 사드릴게요. 앞으로 아들 며느리랑 같이 살면 말벗도 있고 좋죠.”
나는 애써 태연한 척했다.
“봄에 꼭 올게. 내가 엄마 없이 자라서 사람 정이 늘 그리운 사람인데, 준원 엄마 만나서 참 좋았어. 건강 잘 ...”
할머니는 목이 메워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할머니를 꼬옥 안아드렸다. 바짝 마른 몸이 어린아이처럼 작았다. 이사 간 후에도 가끔 김치를 들고 오셨지만 내가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것이 죄스러웠다.
할머니는 눈물을 보이기 싫었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잰걸음으로 갔다. 뒷모습을 보며 혹시나 뒤돌아보시지 않을까 한참을 서 있었다.
집에 들어서니 거실이 따뜻했다. 그런데 내 마음은 왜 이리 시린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한참을 핸드폰 액정만 봤다.
나는 벌떡 일어나 지갑을 챙기고 차 시동을 걸었다. 따뜻한 내복을 사다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마트로 향했다. 쓸쓸한 마음에 라디오를 틀었다. 캐롤이 흘러나왔다. 여느 때 같으면 흥얼흥얼 따라 불렀겠지만, 오늘은 입이 움직이지 않는다.
‘봄에는 오실 수 있으려나 ...’
소박한 만찬
며칠전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몸살 기운이 있어서 이불을 돌돌 말고 있던 나는 문밖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예고없이 1년만에 찾아오신 할머니… 점심때가 되어 할머니께 점심을 대접하고 싶은데, 돈 모으기 힘든데 뭐하러 사먹냐고, 사양을 하신다. 솜씨없는 내가 냉장고에 얼려놓은 오징어 한 마리 해동시켜 전을 한 장 후다닥 붙였다. 모양새는 형편없지만 할머니와 마주보고 먹은 한끼 식사는 최고였다.
이 글은 1년전 할머니와 이별한 후 썼습니다. 건강도 안좋으시고 멀리있는 아들집으로 가시기에 언제 만날 수 있을까, 저 혼자 고맙고 그리워 울었는데... 며칠전 연락도 없이 오셔서 얼마나 기쁘고 놀랐는지...소박한 밥상을 차리고 함께 먹으면서 가족보다 더 끈끈한 정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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