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찍었던 삶의 마침표 뒤에는 분명 새로운 시작이 온다
‘더 늦기 전에 내 맘이 원하는 것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나이 들며 희미해지고 잊혀지는 나의 일상을 기록하고 싶었다. 어린 시절 꿈을 담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새로운 길로 걸어가 보고 싶었다.
30년 만에 잡은 붓은 자유롭지 못하다. 곱아들고 무딘 손과 달리 팔레트에 짜 놓은 붉은색 물감이 물에 섞여 수채화처럼 번져나가면 내 마음엔 붉은 열정이 담긴다. 다시 타오른 열정에 행복해지는 찰나, 어릴 때부터 치명적으로 나쁜 한쪽 눈이 앞길을 막는다. 책을 보거나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열면 눈물이 날 정도로 눈이 부신다. 조금 참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다 보면 편두통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찢어지는 고통이 찾아온다.
어느 주말 아침, 안개가 낀 듯 뿌옇고 컴컴했다. 아이들에게 어두우니까 등을 켜라고 했다. 아이들은 이상한 듯 나를 바라봤다. 하늘이 투명한 날 안개가 뿌옇게 꼈다는 말이 얼마나 이상하게 들렸을까. 아마 미쳤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눈에 이상이 생겼음을 인지하고 병원 진료를 받았다. 주변에 있는 안과를 집 드나들 듯 다녔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발생한 눈부심과 편두통이 뇌와 연관이 있을까, 의심이 되어 MRI도 촬영했다. 아픈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니까 이런 고통이 찾아온 현실에 난 억울해서 몸부림쳤다.
괴로움에 고래고래 소리도 질렀다. ‘눈이 망가졌는데 뭘 할 수 있을까, 내 인생은 끝났구나’ 마침표를 찍었다. 글과 그림은 나에게 꿈에 지나지 않았다는 슬픔에 빠져 사용하던 노트북과 그림 도구를 안 보이는 곳으로 치워 버렸다.
세상에서 홀로 고립된 것 같고, 쓸모없는 존재가 된 느낌에 사로잡혀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걸었다.
좁은 길을 걷는데 무언가 내 다리를 스쳐 지나갔다. 아주 보드라웠다. 뒤돌아보니 갈라진 시멘트 사이에 자리 잡고 싹을 틔운 강아지풀이었다. 비옥한 땅이 아니어도 꿋꿋하게 서 있는 강아지풀이 나보다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강아지풀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어쩌면 나는 누군가 힘든 내 사정을 알아주기를, 보듬어주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우연히 만난 여린 강아지풀도 지독한 매연 속에서 뿌리내리고 오늘을 살고 있는데, 왜 낙담하고 주저앉아 있는지 나는 온종일 ‘가슴이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묻고 또 물었다.
밤새 뒤척이며 커튼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한 줄기 빛에 기대어 내 마음을 다독여본다.
‘희수야, 건강이 뒷받침되지 않아도 간절한 마음이 있다면 할 수 있어.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격려해주지 않아도 네가 자신을 사랑해주면 되는 거야. 강아지풀을 봐봐. 행인에게 밟혀 언제 죽을지도 모르면서 최선을 다해 연둣빛을 뿜어내고 있잖아. 너는 길가의 강아지풀보다 강하잖아.’
그날 이후 우리 집 식탁 위에는 두툼한 줄이 없는 공책이 놓여있다. 소중한 순간을 쓰기도 하고, 미안했던 일을 고백하는 반성문도 쓴다. 머리가 아픈 날은 큰 팔레트에 물감을 풀고 이색 저색을 섞으며 동심으로 돌아간다.
마침표는 끝이 아니다. 마침표 뒤에는 또 다른 문장이 시작되듯, 내가 찍었던 삶의 마침표 뒤에는 분명 새로운 시작이 다가올 거다.
씨소 드로잉 -<가을 끝자락, 너를 보내며>
#삶 #시작 #극복 #살아있음에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