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문턱, 가슴 따뜻한 11월을 보내며...
11월에 태어난 나는 11월을 제일 싫어한다.
단풍이 다 떨어져 앙상하게 변해가는 나무를 보면 한 해가 지나가고 또 한 살을 먹는다는 서글픔이 몰려온다. 더군다나 낮시간이 짧아져서 저녁 5시만 되어도 주위가 칠흑같이 캄캄해지는 것이 을씨년스러워 더 싫다.
아이러니하게도 11월을 싫어하는 내가 결혼도 11월 8일 입동에 했다. 태어나는 날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지만, 결혼식도 11월 입동에 했다는 사실이 생각할수록 어처구니없다.
어느 11월 늦은 밤.
남편이 수상하다.
딸아이 방을 똑똑 두드리며 들락날락하는 모양새가 정말 의뭉스럽다. 두 사람은 무언가 중요한 결정을 하는지 옥신각신하면서도 가끔 까르르 웃는 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해서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고 싶었지만
부녀간의 대화를 방해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꾹 참았다.
11월 8일. 아침 식사를 준비하려고 부엌에 들어서니 새벽녘에 기온이 뚝 떨어져서 한기가 느껴졌다. 이불속으로 다시 기어들어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 찰나, 식탁 위에 놓인 상자가 보였다. 엉성하게 포장된 상자는 분명 남편의 솜씨였다. 상자 뚜껑을 여는 순간 예쁜 머그잔이 눈에 들어왔다. 커플 머그잔 위에는 11월 8일, 날짜가 새겨져 있었고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은 젊고 예쁜 커플이 그려져 있었다. 마치 30년 전 젊은 시절의 나와 남편을 연상케 하는 그림이었다.
얼마 전 딸아이에게 무언가를 부탁하고 의논한 일이 오늘을 위해서였구나. 11월 8일 입동에 결혼한 것을 가장 싫어하는 나를 위해서였구나. 마음이 뭉클했다.
남편이 직접 만들고 딸아이가 그림을 그린 커플 머그잔.
두 사람의 정성과 나에 대한 배려가 담긴 머그잔을 보며 올해는 더 행복한 11월을 꿈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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