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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두 번째 요리

by 행복담기 씨소

올해의 두 번째 요리

씨소 에세이


결혼 후 남편은 20년 동안 음식을 해 본 적이 없다. 내가 바쁘거나 아플 때 할 수 없이 라면을 끓이거나 외식하자는 말만 할 뿐. 나와 아이들은커녕, 정작 본인을 위해서라도 앞치마를 둘러본 적 없는 전형적인 조선 남자였다. 그랬던 남편이 딱 4가지 요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크림파스타, 닭볶음, 차돌 된장찌개, 부추계란 볶음밥. 차려주면 먹고 안 차려주면 차라리 굶겠다던 50대 남자가 요리라니. 정확하지는 않지만 남편이 요리를 시작한 것은 아버님의 모습이 싫어서인 것 같다.


첫 아이가 두 돌 무렵의 일이다. 어느 날 부산에 계신 어머님이 전화를 하셨다. 주말에 올라갈 테니 아버님이 드실 반찬 좀 신경 쓰라는 당부 전화였다. 제대로 할 수 있는 음식도 없지만 당시 몸이 많이 지친 상태여서 걱정이 앞섰다. 아이가 워낙 약해서 두 돌이 지날 때까지 9kg이 안 되었다. 툭하면 미열이 나고 칭얼대는 아이를 밤새 돌보며 출근을 했다. 잘 챙겨 먹지도 못하고 수면 부족으로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았다. 허공에 떠 있는 듯 비몽사몽한 상태로 버티는 날들이었다.

여느 집처럼 부모가 자녀에게 먹이고 싶은 음식을 바리바리 싸서 온다면 감사한 마음에 버선발로 뛰어나가겠지만, 안타깝게도 시부모님은 누구와도 나눌 줄 모르는 분들이다.


부모님이 오신다는 아침, 나는 부지런히 국을 끓이고 나물 두 가지를 했다. 나물이라고 어려운 건 할 줄 모르고 시금치와 콩나물을 무쳤다. 먼 길 오시는데 고기반찬이라도 해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닭볶음을 했다. 식탁을 마주한 시아버지는 젓가락으로 반찬을 뒤적거리며 ‘먹을 게 없네’하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어쩔 줄 몰라 하는 내 모습에 어머님이 한마디 거들었다.

“니 시아버지는 육고기는 안 좋아한다. 근처에 어시장 없나?”

결국 어머니를 모시고 근처 마트에 갔다. 당시 나는 맘속으로 결심했다. 아들은 아빠를 닮는다고 하는데, 만약 남편이 아버님처럼 손 하나 까닥하지 않으면서 반찬 투정을 한다면, 집에서 내쫓겠다고.

그날 이후 남편에게 집안 살림이든 요리든 부부가 함께해야 한다고 수없이 권고했다. 남편은 내 말을 흘려들었다. 본인은 바깥일에만 신경 쓰면 된다고 여겼나 보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고 몇 해 전 결정적 사건이 터졌다. 허리도 꼿꼿하고 어디 하나 아프지 않던 어머님이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았다. 내가 힘들 때 보듬어주던 어머니는 아니지만 병들고 기억을 잃어가는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어머님이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은 후 맞이한 첫 명절, 나는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집 안 청소를 하고 오랜 시간을 들여 정성껏 한 상을 차렸다. 준비한 LA갈비와 해물을 뜸뿍 넣은 파전이 맛있다며 어머님은 평소보다 두 배로 드셨다. 아버님은 여전히 철없는 여든 살 아이처럼 다른 건 없냐고 툴툴거렸다. 그러더니 밥 먹는 게 지옥이라며 어머님께 화를 쏟아냈다.

“밥도 못하고, 반찬도 못하는데 뭐 할라꼬 사나? 치매 걸리면 인간도 아니다. 집에서 키우는 개는 집이라도 잘 지키지, 쓸모도 없어서.”

애정도 예의도 없는 말은 나에게 충격이었다. 남편은 주섬주섬 파전을 먹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60년을 함께한 부부인데, 배우자가 아프면서 본인의 삶이 불편해졌다는 이유로 이런 말을 내뱉다니. 함께 늙고 병들어가면서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날 텐데, 왜 더 사랑해 주지 못하는 건가. 아내가 아프면 남편이 죽이라도 떠 먹여주고, 남편이 아프면 아내가 보살피는 것이 부부가 아니던가. 아버님은 수많은 세월을 감정 없이 아내와 자식을 억지로 품고 살았나보다, 이런 생각이 들자 가슴이 아려왔다.

부산에서 돌아온 이후 아내가 아프면 밥 한 끼 챙겨주는 남편이 되고 싶어서인지, 아이들이 힘들 때 든든한 밥으로 채워주는 아빠가 되고 싶어서인지, 남편은 요리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도서관에 가서 요리와 관련된 책을 읽고, 핸드폰을 들면 간단한 집밥 레시피를 검색했다. 1년이 흐른 지금, 남편의 음식솜씨는 나보다 훌륭하다. 딱 4가지만.

한 달 전 첫 번째 요리 파스타를 했다. 오늘은 두 번째 요리 닭볶음을 하는 날이다.

아이들은 맛있다고 호들갑을 떠는데, 난 닭볶음을 보면 아주 오래전 아버님이 육고기를 싫어한다며 수저를 내려놓는 모습이 떠오른다. 밥도 반찬도 못 한다고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구박하는 아버님의 모습이 생생해서인지, 오늘 닭볶음이 눈물 나게 맵다.



결혼 후 맺어진 가족관계, 그 안에서 늘 불행하다고 생각했다.

힘든 순간, 내게 손 내밀어 줄 사람은 가족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결국 믿을 건, 나 자신 뿐이라고 이기적으로 변해야한다고 주문을 외우기도 했다.

하지만 마음을 닫고 타인에게 관심을 끊고 살고 싶지 않다.

어떤 피해도, 도움도 주지 않고 자신만 돌보는 삶은 더 불행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베풀면서 너그럽게 오늘을 살고 싶다.


#남편의요리 #요리#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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