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딸에게

'앞으로 뭘 하며 살게 될까' 고민하는 딸에게

by 행복담기 씨소

딸에게
씨소 에세이


“엄마, 나는 앞으로 뭘 하며 살게 될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고민하는 문제겠지만, 아직 어리다고 생각했던 딸이 이런 고민을 안고 있다는 사실에 내심 당혹스러웠다.

딸은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만드는 일을 좋아했다. 어렴풋이 우리 아이는 미술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살겠구나, 생각한 적도 있다. 아니나 다를까, 중학교 입학 후 딸은 화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타고난 성격, 좋아하는 일과 이루고 싶은 꿈까지 어쩌면 내 어릴 적 모습을 쏙 빼닮았는지. 놀라우면서도 솔직히 반갑지는 않았다.

이루고 싶은 꿈이 생겼다고 기뻐하는 아이를 보며 ‘그림 그리는 사람은 평생 배를 곯고 산다’는 부모님의 말이 귀에 맴돌았다. 순수미술을 하면 수십 년간 그림을 그려도 유명 작가가 되기 전에는 돈벌이를 못 하는 것이 현실이다. 좋아한다고 무작정 시작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의 교육방식 영향과 타인의 시선에 얽매여 결국 나는 아이의 꿈을 존중하고 응원해 주지 못했다.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은 언젠가는 하게 되나보다. 딸은 고등학교 입학 후 고집스레 미술을 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온기 한 점 없이 냉담한 현실을 논했다.

“좋아한다고 그 일을 평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좋아하면 그 분야에서 잘한다는 인정을 받아야 해. 실력이 있어야 취업도 할 수 있고, 너의 역량을 발휘하면서 살 수 있는 거야.”

지금 생각해도 어린 딸에게 참 무섭고 차가운 말이었다. 공예나 순수미술에 관심이 많던 아이는 취업도 고려해야 한다는 내 말을 반영했는지 디자인 분야를 선택했다. 대학 입학 후 순수예술과 달리, 소비자가 좋아하고 만족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구별화된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내는 과정에서 밤새 고민을 한다. 남다른 아이디어 창출을 위해 어떤 노력이 더 필요한지, 취업 후 디자이너의 삶은 어떠할지, 수많은 생각에 잠겨 딸은 이마를 찌푸릴 때가 있다. 이런 모습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취업을 강조하며 디자인 분야로 밀어 넣은 것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딸의 ‘앞으로 뭘 하며 살게 될까’라는 낯설고 당혹스러운 질문은 사실 내 마음을 무겁게 눌렀다. 20대부터 지금까지 한 분야만 파고든 나에게도 위기가 찾아왔고 쓰임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했다. 딸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하나. ‘무조건 열심히 해’ 이 말이 정답일까. 이리저리 퍼즐을 맞춰봐도 젊은 청춘이 어떻게, 뭘 하며 살지는 예측할 수 없고 정답도 없다. 죽어라 노력해도, 좋은 학벌을 가지고 있어도 한 번쯤은 위기에 처하고 주저앉는 순간이 온다. 나는 딸이 미술을 하겠다고 다짐하던 날과 같은 실수를 했다. 또 온기 없는 한마디를 툭 던졌다.

“미래에 대한 지나친 불안과 걱정은 아무 도움이 안 돼. 정신건강을 해칠 뿐이지.”

좋지 않은 경제 상황으로 취업 문은 좁고,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젊은 층이 증가하는 이런 시기에 딸의 고민은 지극히 당연하다. 뭘 걱정하는지 딸의 마음을 뻔히 알면서도 그 순간 충분히 공감해 주지 못했다.

오랜 시간 침묵이 흐르고 우리는 식탁에 마주 앉았다. 나는 조심스레 어릴 적 나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는 걱정이 많은 아이였어. 오늘 숙제를 못 하면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학을 못 가면 부모님이 실망하겠지. 부모님 뜻대로 살지 않으면 내 인생은 망하려나. 늘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생각하며 걱정을 안고 살았단다.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늘 전전긍긍했지. 우리 딸이 미래에 대한 계획을 꼼꼼하게 세우고 신중하게 결정하는 것도 좋지만, 그냥 오늘 너가 할 수 있을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행복하면 좋겠어. 누군가의 기대에 못 미칠까 봐 안절부절하면서 살지 않기를 바래. 너 삶은 너의 몫이니까. ”

아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뭘 하며 살까’ 묻는 딸에게 어떤 격려라고 하고 싶어 몇 마디를 했을 뿐인데 내 마음의 응어리가 조금 풀리는 느낌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인정받으려고 눈치 보며, 모든 일을 부모님께 묻고 결정했다. 4남매 중 셋째로 자라면서 비교를 당할 때도 있었고 사랑받기 위해 부모님 뜻에 따라 행동할 때도 있었다. 오십까지 이런 환경에서 자란 내가 이십 대의 딸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뭘 하면서 행복을 느낄 것인지 말할 자격이 있을까. 다만, 내 삶을 미루어볼 때 한 번 사는 인생, 사랑하는 내 자녀가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놓지 않기를, 누군가를 실망시킬까 봐 두려워하며 행복을 갉아먹지 않기를 바란다.

삶이 충만하다는 것, 살수록 삶이 아름다운 것은 부모나 누군가의 기대에 도달했을 때가 아니라, 스스로 세운 기대치에 만족하는 삶일 것이다.


“딸아, 너는 너의 인생을 누군가의 틀에 맞추지 말고, 네 뜻대로 인생을 꾸며가길 바란다. 내일의 걱정은 잠시 접고 오늘은 오늘의 행복을 담아보렴.”



탄생화 감꽃과 이름을 브랜딩하다- 딸아이의 방구석 창작


디자인전공자의 그림은 유화나 아크릴화와 너무 다른 느낌이 든다..

어린시절 딸아이가 여러번 읽던 ‘샬롯의 거미줄’

컴퓨터로 뭔가 긁적거리더니 책표지를 바꾸었다. 오래된 책표지보다는 초등학생들이 좋아할 것 같다는 나의 개인 생각.. 시공주니어에 표지 바꾸시라고 말해볼까..^^

#자녀 #인생목표 #행복 #부모생각


*잊혀질 듯 하면 올리는 한 편의 글을 늘 따뜻하게 읽어주시는 작가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발행일과 상관없이 글을 올립니다. 너그럽게 이해해주세요.

keyword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