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불안하면서 우울하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다. 나라는 인간은 정말 자아성찰과 자아실현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만큼 고민이 많고 생각이 많기도 하다.
과거와 다른 사람이 된 나를 깨닫는 순간이 종종 찾아온다. 그러면 그때마다 내 자신에게 놀라곤 한다.
얼마전 김영하 작가님이 유퀴즈에서 한 인터뷰를 보았다. 기억나는대로 적어보자면 어떤 노인이 젊은이를 만나 대화를 해 보았더니 '아, 이사람 정말 나랑 맞지 않는구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사실 이 젊은이가 과거 노인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나에게 너무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최근 내가 정말 달라졌고 달라지고 있다는걸 느낀다. 과거 내 모습을 떠올리면 대체 왜 그랬을까, 너무 답답하다 따위의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이 훨씬 더 마음에 든다. 그런데 이 마음에 든다는 것도 과거와 비교해서이지 나는 아직도 내 성격에서 답답하고 고치고 싶은 단점들이 너무나 많이 보인다. 그러면 이제 다시 생각하게 된다. 미래의 나는 현재의 나를 싫어할 수도 있겠구나.
나는 너무나 내향적인 사람이었다. 현재도 그렇지만 과거에는 더욱더. 그런 모습 때문에 나는 스스로가 너무 답답하고 싫었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이렇게까지 달라진 내가 대견하기도 하다. 이렇게 변한건 아마도 내가 용기를 냈을때 나를 받아준 좋은 사람들 덕분이다. 그들 덕에 자신감을 얻고 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인간관계에서의 성격뿐만 아니라 가치관이나 생각도 계속해서 바뀌어 왔다. '소속감'에 목매였을 때와 개인주의라는 생각을 가졌다 다시 그 사이 어딘가로 돌아온 지금이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에는 내가 어떤 '무리'에 속해있다는 것은 정말 중요한 문제였다. 짝을 지을때 나와 함께할 사람이 있는지 아닌지는 꽤나 심각한 사안이다. 그래서 더욱더 관계에 집착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왔다. 나와 맞지 않더라도 꾸역꾸역 줄을 놓지 않으려 하고 진짜 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다 문유석 작가님의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고 내 스트레스의 이유를 깨달았다. 이런 단체주의 시스템 속에서 나는 계속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내 고통의 이유를 깨닫게 되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또 그렇게 살 필요 없다고 설득력있게 말해주는 것 또한 나에게 큰 위로를 주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나는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오히려 당시에는 혼자 있는 것이 편안하다고 느끼면서 '나는 혼자서도 잘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그러다 코로나가 찾아오고 나는 강제로 혼자 지내는 삶을 체험했다. 그리고는 다시 깨달았다. 나는 혼자서 잘 살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이 그리웠고 함께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간절했다. 이걸 깨닫고 난 후에 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물론 이건 상대적인 것으로 이전보다 살짝 더 나아진 결과에 불과하긴 하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나의 주변에 귀인이 많았던 것인지 대부분 나의 이런 용기를 잘 받아 주었고 서서히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정말 놀랐던 것은 '개인주의자 선언'을 다시 읽었을 때이다. 나에게 그 책은 깜깜한 굴 속에서 나를 꺼내준 길잡이가 된 책이었다. 책을 읽을때마다 모든 구절이 공감되어 따로 써놨을 정도이다. 그런데 이런 사건들을 겪고 다시 그 책을 읽으니 따로 옮겨 적을만한 구절이 눈에 띄지 않았다. 내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