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후 슬픔에 목이 메일 때,
메이는 목을 핑계라도 대기 위해 먹는 고구마케이크
이별 후엔 목이 메어서일까. 메이는 목을 핑계라도 대기 위해 더욱 텁텁한 맛의 고구마케이크를 먹는다. 그렇게 하면 조금은 "나 지금 아파서 울고 싶은 것 아니아."라고 말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사랑했던 그와 헤어진 지 어언 9개월 이제야 조금은 스스로를 다독이고 돌아본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만난 기간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9개월이 어느 날은 9주 같다가도 9년 같기도 했으니 말이다. 갑작스러운 이별로 너무도 힘든 매일과 힘겨운 일상을 살아가다가 점점 좋아지는 날이 오기도 했다. 이런 날이 올까 했는데, 정말 오더라.
이제 조금은 내 마음이 미련인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놓아버리지 못해 괴로울 필요도 없고, 조용히 나 자신에게 "나는 충분히 최선을 다 했어. 그러니 이제 조금 쉬어도 괜찮아."라고 말해 줄 수 있을 것만 같더라. 달달하고 퍽퍽한데 또 고소한 맛의 고구마 케이크는 결이 살아있고 촉촉한 맛 그대로였다. 그런데,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은 사실 이별 후가 아니었다. 동생의 취업축하 파티용 케이크였다. 같은 음식이라도 이렇게 다른 의미를 줄 수가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이전에는 가장 기쁜 의미의 음식이 이제는 가장 슬픈 날의 추억을 불러줄 음식이 되기도 한다는 게 또한 음식이 가지고 있는 특색이 아닐까 한다. 추억을 불러주는 음식은 그 기억이나 이미지가 바뀌기도 변하기도 하는 아이러니를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번 이별은 처음이 아님에도 오래나 앓았다. 나를 다독이지 못해 많이 아팠고, 스스로를 안아주거나 다독일 힘 같은 것은 없었던 나였다. 진정한 이별 은 나를 다독이는 이별이다. 어떤 이별이든 아름답기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진정한 이별은 나와 상대 모두를 다독이는 이별이다. 서로의 마음을 지키고 존중하되, 끝까지 한쪽이라도 마음이 정리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 그 또한 이별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한쪽이라도 이별을 고했다면 그 입장의 선택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작별을 고해야 한다. 그러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서서히 멀어짐이 그래서 좋은 것 같지만 다 그렇게 천천히 오지는 않으니, 우리는 차츰차츰 둘 모두의 마음이 정리될 때까지 속도를 마지막까지 맞춰야 탈이 나지 않는다. 급히 먹은 밥이 체하듯이. 천천히 둘 모두를 위한 사랑과 이별의 과정과 속도가 필요한 것이다.
이제 나는 나 스스로에게 말해줄 수 있다. "나는 충분히 사랑했고, 잘 정리했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우리의 관계를 이젠 놓아주기로 했다."라며 말이다. 그렇게 각자 또는 서로를 위로하며 마무리 짓는 것은 어떠할지. 이별에 대한 생각은 무수히 많은 색들의 이별 중 무엇이 옳고 그르냐의 문제가 아닌 무엇이 가장 서로를 덜 해하는 이별일까 라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