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서
추위에 덜덜 떨어도 아샷추를 마시곤 한다. 작년 이맘때쯤 꽂혀버린 '아이스티에 샷 추가'라는 시즌메뉴가 늦바람인지 뭔지 뒤늦게 꽂혀버려 줄곧 마시곤 한다. 커피보다 쓰지 않고 달달하며 새콤달콤 카페인이 적당히 충전되는 그 느낌에 즐기는 것 같다. 주로 가고, 마시고, 만나는 애정하는 것들이 있다는 것은 모든 행복의 근원인 것 같다. 한때 유행하던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했다.
소소한 행복이란 무얼까?
행복에 집착하며 행복하자 행복만 하자 외치며 살던 때가 있었다. 이제 어느새 그 마음 또한 내려놓고 보니 진정한 행복이 오더라. 종교는 크리스천이지만 다른 철학적인 학문과 다양한 관점의 종교관 또한 일리가 있다고는 보는 편이다. 신앙으로 삼지 않을 뿐. 그래서인가? 중도를 지치는 것, 무소유를 함으로 오는 진정한 자유 등의 논리를 어느 정도는 고철 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스몰라이프를 실천하기 어려워하는 아이러니가 있다) 너무 가지려다 보면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가는 모래알처럼 미끄러진다. 우리는 거머쥘 수 있는 무게가 한정돼있다. 나는 그것을 인정하기까지 꽤나 오래 걸렸다. 앞으로도 더 내려놓는 법을 배우기 위해 많은 성찰을 해야 하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알 것 같다. 마음의 힘겨움은 지켜내야 할 것이 많을 때, 거머쥘 것들이 많을수록 비례한다는 것을 느껴간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때론 뜻과 같지 않게 흘러가지만 그럼에도 지켜야 하는 마음은 우리의 거머쥔 것을 흘려보내야 다른 것, 거머쥘 여유분이 손바닥에 생긴다는 것., 그것을 생각하는 일이 아닐까?
사유하는 마음으로 모든 사물과 사람과 행위와 행동들을 관찰하다 보면 모든 게 다 그럴듯한 이유가 있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마음의 평온이 찾아온다는 것은 그 모든 이유와 순환의 법칙 안에서 굴레안에 나를 밀어 넣고 그냥 굴러가듯 사는 것 같다. 정말 참 행복은 그런 데서 오는 것 같다. 어지럽고 복잡한 출근길 덜컹거리는 지하철 안에서 울렁이는 속을 아샷추 하나로 달래듯. 오늘하루 얼어 죽겠어도 마실 수 있는 시원한 아샷추 하나에 숨을 들이켜고 내쉬어 낼 수 있는 것. 오늘도 나는 얼어 죽어도 아샷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