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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텐조 Mar 16. 2024

고지식 하지만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213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이백십 삼 번째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 나라마다 가지고 있는 문화는 다르다. 얼굴이 비슷한 듯 보이지만 똑같은 사람은 없듯이 국가 혹은 공동체마다 제 각기 가지고 있는 색깔이 비슷한 듯 다른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런 색깔을 이해하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살펴볼 수밖에 없고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알려면 그런 이야기는 역사에서 찾아봐야 한다.




오늘 이야기는 라인강의 기적이라 부르는 독일이다. 독일 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소시지와 맥주? 외제차와 산업? 2차 대전과 지금도 차마 입에 부르기 힘든 만국의 적인 "나치"? 그런 통념적인 이미지와 같이 독일 하면 우직하고 미적감각은 프랑스와 대비되는 듯한 뭔가 회색과 검은색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만 같은 나라다. 프랑스와 외나무다리 원수 같은 시절도 많았지만 지금의 두 나라는 브렉시트 이후로 결과적으로 스스로 자폭 혹은 왕따를 선택한 영국을 제외하고 유럽연합을 이끄는 쌍두마차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독일 역사의 대부분은 2차 대전까지이고 길게 잡아봤자 동독 서독 혹은 베를린 장벽붕괴 같은 일시적인 사건만 아는 경우가 흔하다. 물론 나도 그렇다. 그래서 최근에 독일 근현대사를 다룬 책을 읽게 되었다. 전쟁으로 쑥대밭이 된 독일은 유럽 냉전의 최전선에서 미소 양국의 팽팽한 줄다리기를 견뎌내야 했다. 그것을 견뎌내는 것은 오로지 독일인의 몫이었다.


아무리 2차 대전 당시의 무기대여법처럼 냉전의 마셜플랜도 서독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해준다 한들, 그리고 반대로 소련도 철의 장막으로 인한 동독에 지원을 해준다 한들 최전선의 총부리를 서로 겨누고 있었던 것은 독일인들이었다. 이 말은 즉슨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면 언제든지 다시 베를린이 쑥대밭이 되리란 의미이기도 했다. 당시 쾰른 시장 출신이었던 콘라드 아데나워가 서독의 초대 총리로 부임하면서 다시 무너진 폐허에서 시작해야 할 독일 인프라 구축은 시급한 문제였다.


여기서 인상 깊은 점은 콘라드 아데나워와 그의 당적인 기독교민주연합(CDU)인데 책을 살펴보면 콘라드 아데나워는 오늘날 현대 독일의 초석을 닦아놓고 어쩌면 지금의 독일인 이미지를 구축한 것인지도 모를 정도로 고지식하고 정적에게는 "노망 난 쇠심줄"이라는 욕까지 들을 정도로 강경하게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었지만 그것이 흔히 생각하는 극단적인 혹은 급진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과는 결이 달랐다.




콘라드 아데나워 서독 총리

자기가 마음먹은 노선이 있으면 아데나워는 밀어붙여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었으나 그 노선이라는 범주에 포함되는 모든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원만하게 받아들이며 독일 재건설에 앞장섰다. 인재 등용도 결과적으로 탁월하여 에른하르트라는 사업가 출신 경제부장관이 활약을 하게 되는데 웃긴 점은 에른하르트가 서서히 잘 나가자 아데나워는 정치적 위험을 느끼고 꼴 보기 싫어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에른하르트는 "아데나워가 왜 나를 그토록 미워하는지 모르겠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여하튼 기민련이라는 지금은 독일 정치의 대표정당이긴 하지만 2차 대전 직후 정당정치의 활동은 삼국지 군웅할거처럼 각 단체들이 서로의 입장을 대변하고 혼란기를 수습할 적임자라는 것을 어필하고 있었는데 기민련이 승리하고 아데나워 그리고 이어질 정치적 성공 등은 기민련이 가진 특성을 보면 독특하다. 아데나워와 정반대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흔히 군소정당도 가질만한 강령이나 지침등이 구체적으로 정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시간이 지나서야 구색이 갖춰진 강령을 내세우긴 했지만 그 이전까지는 그렇다 할 어떤 구속력을 갖춘 상징이 없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묘하게 기독교+민주연합이라는 단어에서 내포하듯이 종교단체인 것 같지만 종교단체가 아닌 것은 아데나워가 기독교라는 것은 어쩌면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도덕, 사회관 혹은 "유교사상"처럼 바라보는 듯했고 이 의미는 전 독일인을 상대로 어필하기 위한 어구임을 뜻하는 동시에 구체적이지 않고 추상적이기에 방금 서술했듯 명시적인 그 무엇이 없었던 강령과 같은 "유연성"에 기초한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첫 단추를 잘 꿰맸던 아데나워와 기민련의 정치는 장점도 많고 단점도 나름 많았지만 독일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어쩌면 우직한 리더십 혹은 일관된 비전을 이루기 위해 유연하게 움직였던 기민련을 보면 일반적으로 생각했던 독일의 고지식한 모습에서 어떻게 라인강의 기적을 이루어 냈는지 어느 정도 알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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