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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텐조 Jun 12. 2024

존재는 존재대로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301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삼백 일 번째



뭔가 묘하게 답을 찾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사실 나의 미루기 문제는 내가 이 부분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부분이 많은 시사점을 안겨다 주는데, 머릿속으로 문제를 "인식"하고 벗어나고자 하는 것과 문제를 "인정"하고 벗어나고자 하는 것은 묘하게 다르다는 점이다. 전자는 해당 문제를 부정하기 위하여 인식하는 반면 후자는 해당 문제를 안고 가는 것이라는 점이다.



무슨 소리냐고? 가장 쉬운 비유로는 색깔이다. 여러 색깔이 존재하며 왜 나는 이 색깔만 쓰고 있느냐라고 힘들어하는 경우가 있다. 이미 칠해진 색깔은 내버려 두고 힘들지만 다른 색깔로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다. 특정 색깔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극단적인 순수함은 선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여러 방면의 색깔을 뿜어낸다. 가끔은 검은색대로 가끔은 흰색대로 또 한편은 그 중간 어디쯤이든.


글에서 느껴지는 미루기 문제 혹은 무기력 문제에 대해 해결하려는 집착을 느낄지 모르나, 어디까지나 이 부분을 부정하려는 움직임이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더 흐리게 만든다는 점이다. 예전에 흰곰효과의 글처럼 생각을 안 하려 해도 더 생각나는 것처럼 문제를 벗어나려 해 봤자 계속되는 괴리감에 좌절감만 더 늘어날 뿐이다. 이 역시 문제를 풀 열쇠는 수용이다. 혹은 인정이다.


수용이나 인정이라는 단어에 대해 어떻게 느껴지는가? 체념이나 포기와 같다는 생각이 마음속 한 모퉁이에서 튀어나오지 않는가? 지금껏 온 세상이 검게 느껴진다면 그것대로 내버려 두자. 관심을 주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다른 색깔을 칠할 때라는 것이다. 이러면 뭐가 달라지느냐라고 이야기할 수 있으나 이 부분이 참 묘하다. 모든 이가 문제에 대해 인정하고 해결하려는 듯한 모습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존재의 부정이 숨겨져 있다.



나의 부족한 점을 온전히 받아들이자. 찾아오는 충격이 생각보다 크겠지만 그렇다고 압도될만한 것은 아니다. 부족한 점을 받아들이고 어떤 점을 택할지는 그다음 단계다. 벗어나고자 한다면 벗어나지 못하며 잊어버리고자 한다면 잊어버리지 못할 것이다. 애초에 포커스를 잘못 설정했다. 하지만 이미 맞추어졌으니 벗어나지 못하므로 내버려 두고 새로운 깔때기를 들고 와 다른 것을 붓기 시작하자.


굉장히 매력 없는 단어 "수용". 몇 달 전만 해도 이 부분이 나랑은 다른 차원의 화두인 것 같았다. 와닿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제 뭔 말인지 어느 정도 알듯 싶다. 어쩌면 이런 고뇌의 과정은 수용이 주는 중요함을 더 받아들이게끔 하는 작업일지도 모른다.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지만 방법론적인 측면에선 여러 존재의 존재대로 흘려보내며 그것을 내버려 둔 채 다른 것을 택할 때다.


문 앞에 큰 돌이 놓여있다. 큰 돌을 두 손으로 든다.  돌 아래에는 열쇠가 놓여있었다. 이미 돌을 든 두 손은 열쇠를 잡을 수 없다. 돌을 내려놓아야 그제야 열쇠를 집을 수 있다. 돌은 돌대로 놓아야 비로소 두 손이 자유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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