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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텐조 Jun 13. 2024

성을 쌓은 자들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302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삼백이 번째



인터넷 눈팅을 하다가 출처를 알 수 없는 "성을 쌓은 자들은 망하기 마련이다"라는 문장이 보였다. 칭기즈칸의 정복전쟁의 낭만에 젖어 그의 명언인지 아니면 유목제국이 정주문명을 쌈 싸 먹던 역사를 그런 한 문장으로 설명 한 건지는 모르겠다. 동의할 수 없다. 뭐든 장단점이 있기 마련인데 인류 문명의 발전을 짚어보면 성을 쌓고 지내는 것이 공동체의 운명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면 여전히 우리들은 화전을 하던 유목을 하던 계속 돌아다녔을 것이다.



성을 쌓고 살아가는 것이 폐쇄적인 것처럼 보이며 고인 물은 썩는다는 표현을 정주문명에 빗대어 유목제국은 진취적이라는 판타지스러운 평가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성을 쌓는 이유가 무엇인가? 건물을 세우는 이유가 무엇인가? 기름진 땅이기 때문에 정착을 하는 것이며 살기에 적절한 환경이 조성되어 있으므로 정착하는 것이다. 그리고 광활한 평야라면 우리 공동체처럼 생각하는 다른 공동체들이 한둘이 아닐 텐데 그들을 막아내려면 방어적인 시설은 절대 필수였던 셈이다.


극적인 예로는 아마 메소포타미아 문명일 것이다. 구글링을 하다 보면 인류최초의 제국이었던 아카드문명이나 바빌론 제국이 만들었던 엄청난 지구라트 "흔히 바벨탑이라고 불렀던"그런 시설들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지금은 터를 제외하곤 찾아볼 수가 없다. 그들이 성을 쌓지 않아 망했다는 것이 아니라 성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중동은 과거엔 비옥한 초승달지대로서 먹고살고 풍성히 지내기에 최고의 장소였던 지라 주변의 침입이 잦았다.


성을 쌓는 것에 대한 장점은 모두가 알다시피 이민족의 침입으로부터 공동체를 지켜나가는 것에 있다. 동로마 비잔티움제국의 테오도시우스의 삼중성벽은 1,000년 이상 제국을 마르고 닳도록 지켰다. 메흐메트 2세가 웅장한 대포를 끌고 오기 전까지는. 여하튼 성 그리고 성벽이라는 시설은 인류에게 엄청난 이점을 가져다주었다. 찾아보진 않았으나 문득 글을 쓰다가 뇌피셜로 이야기해 보자면 구성원의 평균수명에도 기여하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들었다.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고대와 중세에선 수명이 지금처럼 길지는 않았고 잦은 전쟁으로 많은 이들이 고통에 시달렸다. 어느 순간 지평선 너머로 적들이 찾아와 약탈을 하고자 한다면? 목숨을 파리떼처럼 여기고 쳐들어온다면 그들 앞에 놓인 성벽이라는 존재는 굉장히 조직되고 체계적인 병력이 있지 않는 이상 뚫기가 대단히 어려워지고 이는 쉽사리 침략할 수 없는 조건을 제공해 준다. 그렇게 되면 성 안쪽에 있는 사람들은 심리적으로도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라 다른 활동에 에너지를 투입할수가 있었다.


유목제국이 당시에는 순식간에 정주문명을 침입하고 연전연승을 하며 활약했지만 중요한 건 정주문명의 공동체 수명에는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누구보다 빠르게 공격할 수 있지만 이 말은 반대로 누구보다 빠르게 본인들도 공격당할 수 있다는 크나큰 리스크가 있었다. 그리고 흉노나 여진 혹은 이민족들을 야만적이라고 깔보던 중국의 왕조들은 몇백 몇천 년 동안 시달리다가 어느 순간 빅데이터랄까? 정보가 쌓이면서 대처능력도 두드러지게 되면서 기억될만한 유목제국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다시 돌아와서, 성을 쌓은 자들은 폐쇄적이고 안에만 갇혀지내 진취성이 떨어진다는 호사가들의 평가는 정작 몽골제국이 남송을 정복하고 정주문명이 만들어놓았던 엄청난 선진 문물을 적극이용했다는 점이 단순히 유목이니 정주로 표현될 수 있는 차이가 더더욱 아니었던 셈이다. 중요한 건 기꺼이 흡수하고 현장에서 응용하고 써먹었던 실용적인 정신에 입각한 것이 바로 진취성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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