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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 못했던 그때 그 이름, 경남아

이름 때문이라고 여겼던 지난날을 돌아보는 이야기

by 다인


“자 출석 부른다. 강미정~”

“네~”

“강민경~”

“넵!”

“김경남!”

“... 네!”

“빨리빨리 대답 안 허냐~~”


중학생 때 선생님께서 내 이름을 부를 때마다 내 얼굴은 홍당무가 되어 버렸다. 이름이 불리면 나는 늘 고개를 숙였다. 초등학생 때는 생일 순으로 출석을 불렀었다. 생일이 빠른 나는 1년 학교를 일찍 간 덕분에 끄트머리에 이름이 불렸다. 차라리 끄트머리쯤에 불리는 게 나았다. 내 이름으로 친구들에게 집중 받는 게 싫었다. 중학생이 되자 가나다순으로 번호를 배정받았다. 김 씨인 데다 중간 이름이 ㄱ으로 시작해서 강 씨 집안 이름이 끝나면 김 씨 집안의 맏이 역할을 도맡는 게 내 딴엔 부담이 되곤 했었다.


나의 이름은 ‘김경남’이었다. 경남이. 언뜻 들으면 귀여운 것 같은데 ‘김경남’이라 그러면 강한 남성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낯가리고 수줍어하는 내 성격은 이름의 영향이 지대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여자 친구들은 한나, 지은, 정은, 다혜, 민지 등 예쁘고 귀여운 이름이 수두룩한데 왜 내 이름만 ‘김경남’일까, 내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는 같은 반 남자애 이름이 ‘김경만’이었다. 그때 그 애 이름을 보고 내 이름이 남자 이름 같다고 처음 생각했다. 친구들이 내 이름을 가지고 놀린 것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반 친구들은 쉬는 시간이 되면 칠판에 흰색 분필로 ‘김경만’을 적고 그 밑에 ‘김경남’을 적었다. 그다음 노란 분필로 김경만의 ‘만’과 김경남의 ‘남’에 동그라미를 쳤다. 둘이 만났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 2학년 치고는 지능적으로 놀리는 것 같은데 그래도 유치함의 끝판왕이 아닐까 싶다. 그때 막 이성에 눈을 뜨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남자아이들과 내외하고 있는 내향적인 나에게 ‘만남’이라니, 부끄럽고 창피했다. 특히 마음에도 들지 않는 그 애와 엮이기 싫었다. 그 애 표정을 지금 떠올려보니 그 애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이름 때문에 잔뜩 움츠러들며 사춘기를 보내고 대학생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는 이름에 관해선 조금은 무탈했던 것 같다. 왜냐고? 나름 모범생 축에 속하여 수능을 공부한다고 이름에 신경을 덜 쓰게 되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자 교수님이 출석을 부르면서 또다시 이름에 대한 수치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꽃답고 생기 넘치는 스무 살을, 지난 유년 시절처럼 수그린 채 보내고 싶지 않았다. 스무 살 발랄한 여자애 이름이 ‘김경남’이라니, 스스로 납득할 수가 없었다.

이름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해 진지하게 엄마와 이야기를 나눴다. 여차여차 하면 개명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엄마는 나의 고충을 어릴 때부터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이토록 예쁜 이름에 대한 갈망이 큰 줄은 그때 처음 아셨다. 엄마는 그날로 자주 가는 절의 스님에게 이름을 두 개 받아오셨다. 스님은 사주에 물의 기운을 보충해야 한다며 ‘보미’와 ‘보경’ 이를 추천하셨다. 나는 ‘보미’란 이름이 단번에 끌렸다. 내가 생각했던 스무 살 여자의 이름 같았다. ‘보경’이는 가운데 이름 ‘경’ 자가 기존 이름 ‘경남’이 연상이 되어 바로 아웃시켰다. 나는 ‘경남’이한테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 뒤로 나는 집에서 ‘보미’로 불리었다. 엄마도, 아빠도 “보미야~” 하셨는데 바로 바꿔서 불러주신 부모님께 감사했다. 그 이름을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속 깊이 자신감이 끌어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대학교 친구들에게 예명이라고 ‘보미’에 대해 소개했다. 사주에 물 기운이 약해 물을 보충해야 해서 스님이 지어주셨다고, 지금 집에서 나는 ‘경남이’가 아니라 ‘보미’로 불리고 있다고, 그러니까 너네도 나를 ‘보미’라고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착한 내 여자 친구들은 나를 보미라고 불렀다. 장난기 많은 남자 친구들은 예나 지금이나, 세월이 10년이 흘러도 여전히 경남이라고 부른다.


바꿔 불리는 이름 덕분이었을까. 외모에 자신감이 생기고 무슨 일이든 앞장서서 발 벗고 나서는 나를 발견하였다. 개명은 따로 하지 않았는데 이름이 불러지기만 해도 ‘보미’의 귀여운 억양이 꽤 마음에 들었다. 자꾸 내 이름을 누가 불러주기만을 기대했다.

몇 년 뒤에 나는 직장인이 되었다. 개명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은 탓에 다시 경남이로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 “김경남 씨~ 이것 좀 봐 봐요” “김경남 씨, 이 부분 틀렸잖아” 사회 초년생인 내가 이름이 불리는 경우는 대부분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내가 잘못해서 불리는 이름인데도 그 이름이 듣기 싫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미루고 미뤘던 개명을 하기로 말이다.

몇 달 뒤 법원으로부터 개명 승인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이상했다. 개명을 했는데도 나의 마음이, 가슴속 불만이 나아지지가 않는 것이다. 상사와의 마찰, 회사의 불만, 남자 친구와의 다툼, 사람에 대한 집착 등 내 주변에 둘러싸인 모든 문제가 나를 힘들게 했다. 이름만 바뀌면 모든 게 좋아질 줄 알았는데 해소가 되지 않는 문제들에 화가 났다.


짜증스러운 마음이 한동안 지속되자 펜에 힘을 주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답답한 마음을 지렁이 글자로 종이 위에 풀어 버리면 엉켜버린 마음의 실타래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점차 깨닫게 되었다. 이름이 문제가 아니었다는 걸 말이다. 그동안 내 이름에 불만이 많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나’에 대한 불만이었다. 무슨 일이든 잘 처리하지 못하면 이름 때문이라고 내 이름을 경멸했다. 그 이름 때문에 내가 당당하게 일하지 못하고 수줍고 소극적인 성격이 되었다며 내 이름을 누구보다도 싫어했다. 여자아인데 왜 남자 이름을 지었냐고 부모님께도 화도 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이름 때문이라고 치부했던 날들을 돌이켜 보면 단 한 번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생겼던 문제라는 걸 글을 쓰며 알게 되었다. 나를 진심으로 사랑한 적이 없고 아껴주지 않았다. 그래서 늘 외롭고 사람들에게 기대고 독립적이지 못했던 것이었다. 가장 순수하고 어렸던 그 시절 경남이를 사랑했다면 내가 날 괴롭히지 않았을 것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세상을 보는 눈도 달랐을 것이다. 이름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건 나이니까 말이다. 무엇으로 불리든 그게 나였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이름이라고 나를 사랑하며 살지 못했던 지난날들이 후회스러웠다.


그때 사랑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어린 경남이에게 꼭 전하고 싶다. 지금은 그때 그 이름이 그립고 듣고 싶고 부르고 싶다. 이제라도 거울을 보고 어린 경남이를 떠올리며 말한다.

“미안하고, 사랑해, 경남아”




* 이 글은 2W매거진 21호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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