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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Mar 19. 2022

봄이 오더니 이상한 일이 생겼다

유부녀에게 이러시면 안 됩니다

지난주 동네 버스 정류장에서 강남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누군가 내게 다가오는 느낌이 들었다.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무언가 말을 걸려는 것 같았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내게 끼고 있는 무선 이어폰을 빼라는 손짓을 하였다. 길을 물어보려는 것 같아 오른쪽 이어폰을 빼고 그의 말을 기다렸다.


“저기, 버스 기다리시는 거예요?”

‘버스 정류장인데 당연히 버스를 기다리지’ 속으로 xnejf거리며 나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네”

“혹시 이 동네 살아요?”


‘그건, 왜 묻니 꼬맹이야’ 생각하며 또 대답했다.

“네~”


“제가 버스 기다리면서 지켜봤는데 눈이 예쁘신 것 같아요, 혹시 번호를 알려주실 수 있나요?”

“네..? 아, 안돼요!”


당황한 나는 다짜고짜 안 된다고 외쳐버렸다. ‘저기 학생, 나 30대 아줌마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런 일은 처음 겪는 터라 당혹스럽기만 했다. 그리고 그의 말이 이어졌다.


“왜 안돼요..?”

“아, 감사한데 저 결혼했어요!”


그는 난감한 표정으로 “아,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유유히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황당했지만 왠지 기분이 좋았다. 크게 한번 웃고 싶었지만 그 친구가 민망해할까 봐 그러질 못했다. 남편과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빨리 알리고 싶어 내 입은 근질거렸다. 잠시 후 기다리던 버스가 왔다. 그는 분명 같은 버스를 탈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타지 않았다. 버스에 자리를 잡고 창문 밖을 살짝 내다보니 그는 정류장에서 멀리 떨어져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서있었다.


엄청 꾸미고 나간 것도 아니었다. 집에서 입는 검은색 후드 원피스에 코트를 걸친, 친구들과 술 한잔하기 위한 편한 옷차림이었다. 옷맵시로 어려 보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코로나 시국이 아닌가. 마스크로 얼굴을 절반 이상 가렸으니 언뜻 멀리서 보기엔 그 친구가 나를 보고 괜찮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막상 번호를 물어보려고 나에게 가까이 왔을 때는 아차 했을지도 모르지. 심장아 너무 좋아하지 말자.

이렇게 마음을 다잡아도 새어 나오는 웃음은 숨길 수가 없었다. 강남으로 가는 버스 1시간 내내 이 사실을 친구들과 남편에게 톡으로 알리면서 좌석 구석에서 킥킥댔다. 친구들은 그 남자가 시력이 심하게 안 좋은 거 아니냐며, 마스크가 아니라 가면을 쓰고 나간 거냐며 좋아하는 나를 놀려댔지만 무슨 말을 해도 즐거웠다.


실은 지난 달부터 몇 주 간 몸이 좋지 않았다. 나는 결코 안 걸릴 줄 알았던 오미크론 코로나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뉴스나 지인들한테 들었던 말처럼 가벼운 독감처럼 일주일이면 나을 줄 알았는데 아프기도 심하게 아팠고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몸도 몸이지만 마음도 무척 힘들었다. 열흘 넘게 꼬박 아팠으니 정신적으로도 지쳤다. 벌려 놓은 일과 주어진 과제들이 많았는데 도통 할 수가 없었다. 뜻대로 되지 않으니 신경질만 잔뜩 났다. 그러다 스케줄을 소화하지 못하는 불상사도 생겼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할 일을 하지 못해 마음의 부채만 늘어갔다. 샤워를 하는데 가만히 눈물이 흘러나왔다. 나는 꺼이꺼이 울고야 말았다.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부담이 커지다 못해 터져 버린 것이었다.


그날은 코로나에 걸린 후 첫 외출이었다. 몸도 거의 회복되었고 무력감을 떨쳐내고 싶어 친구들과 약속을 잡았던 것이다. 2주 동안 집에만 틀어박혀 있어 밖으로 나오는 것만으로도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뚫렸다. 추위도 많이 풀려 있었다. 겨울에서 봄이 된 것이다. 아픈 시간 동안 이불속에서 ‘왜 난 코로나에 걸렸을까, 왜 난 이렇게까지 아플까, 왜 이 정도 아픈 걸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까’ 자책을 했었다. 외출하기로 결심했을 때도 컨디션은 어느 정도 돌아왔는데 오미크론 바이러스가 마음에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런데 모르는 남성이 나에게 번호를 물어보자 ‘너 아직 젊어! 아팠어도 괜찮아, 밀렸던 일 다시 시작하면 돼!’라고 말하는 걸로 들렸다. 그 순간 마음의 오미크론이 씻은 듯이 낫는 기분이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마음도 점차 괜찮아졌을 것이다. 다만 마음의 병은 오래 남아있을수록 회복이 더디기 마련인데 그 남자의 말 한마디 덕분에 나는 더 빨리 회복할 수 있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이 스스로에게 냉혹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 말랑해졌다. 마음의 봄을 하루빨리 만끽하게 해준 그 사람은 천사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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