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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Feb 07. 2022

처음 방문한 요가원에서 내 이름만 불리었다

고요한 요가원에서 내 이름만 불리는 느낌이란

오랜만에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해가 뜨지 않았으니 새벽이라고 해도 좋겠다. 손이 시렸다. 한 손엔 20L 가득 찬 종량제 쓰레기봉투 덩어리를 들고 있던 탓이다. 꼬박 1년이 지나 이 새벽 공기를 마시는 것 같다. 회사를 다닐 때는 늘 마시던 공기였는데 퇴사한 지 1년이 넘었다고 그새 낯설게 느껴진다. 회사를 가는 건 아니더라도 회사를 가는 기분만큼 몸이 썩 내키지 않는다. 목적지가 요가원이기 때문이다.


작년 10월부터 12월 중순까지 1:1 필라테스 훈련을 받았다. 훈련이라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운동이라고 느껴지진 않았나 보다. 키보드를 치는 손가락이 훈련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니 말이다. 평소 어깨가 말려있고 목도 굽어있고 골반은 틀어져 오래 앉아 있으면 몸이 뻐근하다고 아우성 댄다. 절대 오래 앉아 있을 수 없는 몸이다. 필라테스가 교정에 좋다고 하여 좀 비싸더라도 1:1 개인 교습을 받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내 몸 상태에 맞게 교정 방법을 배워 유익하고 몸도 풀어지긴 했는데, 주 2회 하는 필라테스가 내 몸에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주로 기구를 이용하다 보니 집에서는 초보자인 내가 혼자 하기 어려웠다. 배워서 남는 걸 좋아하는 성격인데 집에서 기구 없이 하는 필라테스는 운동 같지 않았다. 오로지 내 몸에 집중해서 할 수 있는 요가에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임인년 새해도 밝았으니 유튜브로 홈트 요가를 해보자며 야심 차게 거실 바닥에 요가 매트를 깔았다.


깔린 요가 매트에 자연스러운 먼지들이 쌓이기 시작할 무렵이 1월 말이었다. 매트라도 깔아 놓아야 운동을 할 것 같아 따로 돌돌 말아 개지 않았다. 매일 요가 매트가 깔린 걸 봤음에도 늘 본체만체했다. 이건 아니다 싶어 하는 수없이 네이버 검색창에 요가원이라고 입력했다.

집 근처에 요가원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불과 200m 반경에 요가원이 있는 게 아닌가? 자주 가는 스타벅스 옆 건물 4층에 있었다. 이사 온 지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한 번을 못 봤다. 집에서 꽤 먼 고깃집, 술집을 다 꿰차고 있으면서 말이다. 역시 좋아하는 건 알아서 머리와 몸이 기억한다.


2월 개강일이 바로 오늘이다. 아침 시간으로 수업을 신청한 탓이라 일찍 나왔다. (왜 그랬을까) 7시 10분에 명상을 하고 이어 9시까지 아사나 요가를 수련하는 과정이다. 요가원의 첫 느낌은 고요, 그 자체였다. 첫날이라 일찍 도착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이미 다섯 분이 고르게 앉아 명상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처음 왔다고 당당하게 티를 내면서 요가 매트를 깔았다. 시간이 다 돼 선생님의 목소리로 명상을 시작했다.

분명 편안한 자세로 시작했는데 20분 동안 가만히 있으려니까 몸이 근질근질했다. 호흡에 집중해야 하는데 침이 자꾸 꼴딱거렸다. 아침 먹을 시간에 명상을 하고 있으니 배꼽시계가 요동칠만하다. 눈을 감은 채 내 배꼽시계를 이해하고 있는 나 자신이 우스웠다. 이해하면서 이 위기를 벗어났다 싶었는데 이제는 다리가 문제였다. 솔직히 20분 동안 양반다리로 앉을 일이 없다. 게다가 나는 혈액순환이 잘되지 않는 몸이라 금방금방 다리를 펴줘야 한다. 순환이 되지 않는 느낌이 들더니 발이 점점 차가워졌고 쥐가 날랑 말랑한 순간에 다행히 사바아사나로 누우라는 천사 같은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역시 죽으라는 법은 없는 것인가? 고작 20분 명상에서 할 소리는 아니다만.


명상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사나 요가 수련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뭔지 모를 주문 같은 명칭을 선생님이 말씀하시면 수련생들은 척척 알아듣고 그 자세를 바로 취했다. 고수의 향이 물씬한 마주 앉아 있는 분을 따라 하면서 겨우겨우 하는 척을 했다. 옆에 앉은 분을 참고해서 하려고 했는데 이 분도 왠지 나와 같은 신입 냄새가 났다. 그래도 그분은 나보다 훨씬 잘했다.

초반 자세는 나름 유튜브로 몇 번 했던 자세라서 그래도 하기는 했다. 하지만 중반부, 후반부로 갈수록 멘붕이 오기 시작했고 선생님도 그런 나를 주시했는지 내 주변만 어슬렁거렸다. 가부좌 자세도 힘든데 그 상태에서 등 뒤로 손을 합장하는 자세가 있었다. 평소 어깨가 많이 말려 있어 손을 뒤로 젖히는 자체만으로도 힘들었다. 혈액 순환이 안 되는 다리는 얼얼했고 등 뒤 합장하는 손은 부들부들 떨렸다. 그 모습을 본 선생님이 나의 말린 어깨를 바로잡아주면서 이름을 물으셨다. 이때부터 고요한 요가원에서는 내 이름만 불렸다.


공간지각 능력이 부족해서 앞 수련생을 따라 하다가 방향이 헷갈려 반대로 동작을 취하고, (내 이름이 불렸다) 말귀도 잘 못 알아들어 머리 정수리를 바닥에 대라고 두 번을 듣고 나서야 자세를 고쳤다. (내 이름이 또 불렸다) 엎드려 코브라 자세를 하는데 엎어진 두 다리가 모아지지 않는다는 것도 깨달았다. (내 이름만 불렸다) 몸과 마음을 수련하러 왔는데 몸과 머리(뇌)를 수련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한 동작 한 동작을 할 때마다 내 몸의 현 위치를 뼈저리게 느꼈다. 학창 시절 ‘폴더폰’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체육시간에 유연한 자세도 곧잘 했는데 30대 중반으로 달려가고 있는 내 몸은 그 과거를 애초에 모르는 것처럼 뻣뻣하게 움직였다. 내 몸이 참 뻔뻔하다고 느껴졌다.



9시를 향해 가는 시계를 보며 이제 마지막 동작이라는 느낌이 왔다.(드디어!) 누우라 더니 두 다리를 들어 올려 그 다리를 몸의 뒤로 젖히라는 것이었다. 무거운 하체를 올리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이걸 허리를 손으로 단단히 지탱하고 뒤로 젖히라니. 천천히 하다 보니 일단 거기까지는 했다. 한참 호흡을 했다. 이제 끝이구나 싶었는데 물구나무를 점차 서라는 게 아닌가. TV에서만 보던 물구나무서기 자세를 내 눈앞에서 누군가 하는 걸 보는 건 처음이었다. 10명의 수련생 중, 다섯 분이 성공했다. 그러고 몇 분을 서계셨다. 물구나무도 서있는 거니까 서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물구나무를 서지 못하는 사람은 사바아사나 자세로 편안히 누워있으랬다.(누워 있는 자세의 명칭만 알아듣는다) 고개를 살짝 들어 올려 물구나무 자세를 감상했다. 얼마큼 수련하면 저 자세를 할 수 있는 것인가. 신기하고 또 신기했다.


수련이 종료되고 나서 선생님은 할 말이 있다며 신입생들은 자리에 남으라고 하셨다. 그리고 우리를 한데 모았다. 이때 내 옆에서 하던 분이 신입생이 맞다는 것을 알았다. 물구나무서기 자세를 하지 않은 다섯 명 중 4명이 모였다. 처음이라 힘들진 않았냐고 잠깐의 담소를 나눈 다음 앞으로 어떻게 수업에 참여해야 하는지, 호흡은 어떤 방법으로 연습해야 하는지 알려주었다.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인상 깊었다. 자세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 셨다. 그 자세를 못한다고 속상해하지 말고 특히 잘하는 다른 수련생들과 나 자신을 비교하지 말라고 강조하셨다. 순간 마음이 뜨끔했다.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저 자세를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생각보다 채찍질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내 몸에 못할 짓이었다. 자세를 잘하는 수련생들은 기본적으로 3~4년을 했던 사람들이라 비교하지 말고, 지금은 그저 내 몸에 집중하여 얼마큼 할 수 있는지 내 몸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좋은 수련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집으로 돌아왔더니 몸의 상태가 등산을 하고 온 컨디션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90분의 수련이었으니 그 시간만큼 등산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듯하다.

그동안 나 자신을 굉장히 잘 안다고 생각했다. 오늘 보니 내 몸과 마음은 내 것이 아니었다. 명상으로 마음속 깊은 나와 소통을 하고, 요가로 몸 구석구석 잘못된 곳을 알아차리는 시간이었다.

요가원 선생님이 내 이름을 알아차린 것처럼 말이다.


어쨌든, 오늘 운동은 이만.

"나마스떼"

(인도∙네팔 등에서 만날 때나 헤어질 때 주고받는 인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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