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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Apr 02. 2022

KTX에서 앞 좌석과 창문 블라인드 문제를 겪었다

나는 창밖 풍경을 보고 싶은데


‘아, 바깥 벚꽃 풍경을 보고 싶은데 어떡하지’


며칠 전에 남편과 부산 여행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창문 밖 풍경은 서울보다 일찍 핀 벚꽃 덕분에 봄 내음 물씬 풍기고 있었다. 나는 창밖을 내다보며 '벚꽃엔딩' 음악을 감상하고 있었다. 밀양역에서 어떤 남성이 앞 좌석에 ‘쿵’ 소리를 내며 앉았다. ‘참 요란하게도 앉네’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내 좌석과 연결된 창문의 블라인드를 내렸다. 순식간에 내 시야는 봄 풍경이 아닌 누리끼리한 블라인드로 바뀌었다. 날씨가 흐려 햇빛도 거의 없었는데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게다가 그 창문 거의가 내 좌석에서 내다보게 되어 있었다. 그는 창문의 달랑 1/10을 차지한 터에 제멋대로 하다니 당혹스러웠다.


그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그의 행동을 관찰했다. 그는 앞 좌석에 붙어 있는 테이블을 펼치고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올렸다. 헤드폰을 쓰고 요즘 방영하고 있는 ‘스물다섯 스물하나’ 드라마를 재생시켰다. 만일 그 남자가 잠을 자려고 빛을 차단하기 위해 블라인드를 내렸다면 그의 무례한 행동을 나는 이해했을 것이다. 그저 드라마를 보려고 뒤에 앉은 사람에게 묻지도 않고 가린 행동이 불쾌했다. ‘그래, 영상을 보려면 어둡게 보면 좋겠지’라며 넘어가려고 해도 자꾸 창밖 벚꽃 풍경을 보고 싶어 나는 한숨만 푹푹 쉬었다.


차라리 암막 블라인드였으면 그렇게 아쉽지도 않았을 것이다. 옅은 블라인드 사이로 산, 강, 개나리, 진달래, 벚꽃, 시골 기와집 풍경이 어우러져있는 것이 보였다. 봄 경치를 선명하게 볼 수 없었다. 창문 면적도 내 좌석이 압도적으로 넓은데 생판 모르는 사람의 행동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언짢아졌다. 예전에 개그콘서트 ‘애정남’ 프로그램이 생각났다. 지하철에서 서있는 중에, 자리가 빈다면 어디에 서있는 사람이 우선적으로 앉아야 하는지 명확하게 설명해 주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애정남이 앞 좌석에 앉은 남성과 나 사이에 창문 블라인드 소유권에 대해 속 시원하게 판정 내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두 시간은 더 가야 하는데 나는 이 기분으로는 광명역까지 갈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기차가 어두운 터널에 들어갔을 때, 나는 이때다 싶어 문제의 그 블라인드를 슬금슬금 올렸다.


나는 창문의 20% 정도만 남겨두고 블라인드를 올렸다. 이 정도는 배려라고 생각했다. 앞 좌석 그 남자는 잠깐 어깨를 움찔하더니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는 보던 영상을 계속 볼뿐이었다. 이제야 나는 주도권을 가져온 느낌이 들었다. 다시 벚꽃엔딩 음악을 틀고 창밖으로 펼쳐지는 봄을 만끽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 남자가 다시 블라인드를 내리면 어떡하지?’ 나는 아까처럼 남자의 뒤통수만을 또 노려보았다. 그러다 구름에 가려져 있었던 햇빛이 구름과 창문을 뚫고 들어왔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블라인드로 손을 뻗었다.


다행히도 그는 창문의 반만 블라인드를 내렸다. 그도 나를 의식했는지 다 내리지는 못한 것 같았다. 내가 앉은키가 크지 않아 반 정도만 블라인드를 내려도 나의 시야는 봄 풍경으로 가득 찰 수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조금 전엔 내가 원하는 대로 블라인드를 올려 상황에서의 주도권을 가져왔다는 쾌감을 느꼈다. 그런데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주도권을 뺏길 것 같아 불안해졌다. 오히려 그 사람이 다시 블라인드를 내려 적당하게 조정함으로써 나도 더 이상 그를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내 상황도 만족하고 그 사람도 나를 조금은 배려하고 본인의 만족도 찾은 것 같았다. 그가 또 한 번 블라인드 전체를 내려 창문을 가렸다면 나와 다시 블라인드 줄다리기를 하게 됐을 것이다.


평소에 나는 남편, 부모님, 지인들과의 대부분의 관계에서 주도적으로 행동해야지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하다못해 식당을 정하는 것 같은 사소한 결정도 내뜻대로 해야 했다. 내가 짠 판에서 내 사람들이 있기를 바랐다. 내가 의견을 물어도 답은 정해져 있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주도하고 있다는 쾌감에서 나의 존재감을 느꼈다. 그런데 얼굴도 모르는 남자의 뒤통수를 째려보면서 블라인드 주도권 싸움을 겪으니 혹시 사람들이 내 고집대로 하는 상황에서 마냥 즐겁지만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다른 의견을 내면 시간상으로 비효율적이라고, 그건 내 기준에서 별로라고만 했던 게 미안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균형을 찾아가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정한 결정에 ‘당연히 모두가 행복할 거야’라고 생각한 건 오만이고 착각이었다. 상대방도 만족할 수 있는 균형을 만듦으로써 상대와 나 모두 평온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ktx가 천안역에 다다랐다. 갑자기 앞 좌석 그 남자가 반 정도 열린 창문 블라인드를 환하게 열어젖혔다. 그리고 그는 노트북을 덮고 가방에서 안대를 꺼내더니 잠을 자는 것 같았다. 나는 또 내 뜻대로 관계의 주도권을 점령한 것일까.


ktx에서 본 벚꽃 풍경..! 이걸 놓칠 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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