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부터 어릴 적 좋지 않은 기억이 불쑥 떠올랐다.
평소에 웃으며 할 일을 잘하고 지내는 '나'지만
예전 기억이 무의식적으로 툭 지나가면
맥없이 기력이 툭 떨어진다.
누구나 가슴속 상처나 마음의 병 하나씩은 가지고 살 거라고 생각한다.
나만 이러는 게 아닐 거야
다른 사람들도 이런 짐 하나쯤은 냅다 버리지 못해 살아가고 있겠지.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럼에도 덮어내지 못한 그날의 상처는
언제 그칠 줄 모르는 눈물로 한없이 뿜어댄다.
상처는 이렇게 말한다.
덮지 마 덮지 마 덮지 마,
지금 위로해 줘 위로해 줘 위로해 줘.
네가 원하는 미래 때문에 앞으로 가려고 하지만 말고
지난날의 '나'를 좀 봐줘
나를 위로해 줘.
남편과 연애할 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그날의 일을 그에게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자기 일처럼 불같이 화를 내주었다.
그 어린 날의 나는 보호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어린 날의 나를 괜찮다고 보듬어주는 듯했다.
나를 위해 대신 싸워주는 듯했다.
따듯하고 안전했다.
오늘 오전 그에게 내 마음이 이상하다고 톡을 보냈다.
한참 쥐 죽은 듯이 있다가 오랜만에 튀어나온 그날의 기억.
아무것도 몰라서
아무것도 대처하지 못해
시간이 지날수록 화가 난다고 말했다.
남편은 가만히 들어주었다.
그런데 말할수록 듣기만 하는 그에게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나는 그에게 왜 같이 화를 내주지 않냐고 말했다.
그는 이미 그전부터 화를 많이 내줬고
자기는 화를 잘 내는 성격이 아니라고
직접 느끼지 못한 부분에 대해선
어찌할 줄 모른다고 말했다.
내 감정을 받아주고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솔직히 고맙긴 하지만,
내가 당시에 보호받지 못했던 순간을
그가 화를 내줌으로써 내 보호막이 생겼다고 느꼈는데
그게 없으니 방관했던 엄마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연애 시절 내가 회사에서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같이 상사를 욕해주고
어릴 적 이야기에
같이 화를 내주던 그로부터
가장 큰 위로와 사랑을 받았고
내 보호자 같은 느낌이었다고
안전한 보호막이었다고
구구절절 말을 늘어뜨리고 나서야
그는
'아'
라는 탄식 한 마디 던지더니
지금 내게 온다고 한다.
1년에 한 번.. 정도는
내가 이런 기억으로 힘들어하고
상처가 올라올 때 그가 나와 함께 화를 내주었으면 좋겠다.
해결해 달라는 건.. 아니다.
수용만으로는 부족해.
그 당시 수용만 해준 엄마로부터
괜찮다고 말만 해준 엄마로부터
나는 또 다른 상처를 받았으니까.
언젠가 이 상처를 글로 남겼으면 좋겠다.
아직까지는 용기가 나질 않는다.
아직까지는 괜찮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글로 쓰면 더 나아질 거라는 걸... 알고는 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다.
그때 못 냈던 화와 울분을
어렸던 '나'를 위해 더 내주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