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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May 22. 2023

불쑥

어렸던 나를 위로해


지난 주말부터 어릴 적 좋지 않은 기억이 불쑥 떠올랐다.

평소에 웃으며 할 일을 잘하고 지내는 '나'지만

예전 기억이 무의식적으로 툭 지나가면

맥없이 기력이 툭 떨어진다.


누구나 가슴속 상처나 마음의 병 하나씩은 가지고 살 거라고 생각한다.

나만 이러는 게 아닐 거야

다른 사람들도 이런 짐 하나쯤은 냅다 버리지 못해 살아가고 있겠지.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럼에도 덮어내지 못한 그날의 상처는

언제 그칠 줄 모르는 눈물로 한없이 뿜어댄다.


상처는 이렇게 말한다.

덮지 마 덮지 마 덮지 마,

지금 위로해 줘 위로해 줘 위로해 줘.

네가 원하는 미래 때문에 앞으로 가려고 하지만 말고

지난날의 '나'를 좀 봐줘

나를 위로해 줘.


남편과 연애할 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그날의 일을 그에게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자기 일처럼 불같이 화를 내주었다.

그 어린 날의 나는 보호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어린 날의 나를 괜찮다고 보듬어주는 듯했다.

나를 위해 대신 싸워주는 듯했다.

따듯하고 안전했다.


오늘 오전 그에게 내 마음이 이상하다고 톡을 보냈다.

한참 쥐 죽은 듯이 있다가 오랜만에 튀어나온 그날의 기억.

아무것도 몰라서

아무것도 대처하지 못해

시간이 지날수록 화가 난다고 말했다.

남편은 가만히 들어주었다.

그런데 말할수록 듣기만 하는 그에게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나는 그에게 왜 같이 화를 내주지 않냐고 말했다.

그는 이미 그전부터 화를 많이 내줬고

자기는 화를 잘 내는 성격이 아니라고

직접 느끼지 못한 부분에 대해선

어찌할 줄 모른다고 말했다.


내 감정을 받아주고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솔직히 고맙긴 하지만,


내가 당시에 보호받지 못했던 순간을

그가 화를 내줌으로써 내 보호막이 생겼다고 느꼈는데

그게 없으니 방관했던 엄마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연애 시절 내가 회사에서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같이 상사를 욕해주고

어릴 적 이야기에

같이 화를 내주던 그로부터

가장 큰 위로와 사랑을 받았고

내 보호자 같은 느낌이었다고

안전한 보호막이었다고

구구절절 말을 늘어뜨리고 나서야

그는

'아'

라는 탄식 한 마디 던지더니

지금 내게 온다고 한다.


1년에 한 번.. 정도

내가 이런 기억으로 힘들어하고

상처가 올라올 때 그가 나와 함께 화를 내주었으면 좋겠다.

해결해 달라는 건.. 아니다.

수용만으로는 부족해.

그 당시 수용만 해준 엄마로부터

괜찮다고 말만 해준 엄마로부터

나는 또 다른 상처를 받았으니까.


언젠가 이 상처를 글로 남겼으면 좋겠다.

아직까지는 용기가 나질 않는다.

아직까지는 괜찮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글로 쓰면 더 나아질 거라는 걸... 알고는 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다.

그때 못 냈던 화와 울분을

어렸던 '나'를 위해 더 내주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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