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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Apr 10. 2024

시할아버지 입관식

친구의 결혼식을 가는 길이었는데

"할아버지가 많이 위독하시대"


지난주 토요일, 절친의 결혼식이 있어 남편과 서울로 가는 중이었다. 8km 정도 남았을 무렵 어머님께 전화가 왔다. 다급하게 당신의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할아버지의 위독 소식을 알려주셨다.


그 길로 우리는 바로 차를 돌렸다. 서울 꽉 막힌 도로를 2시간 남짓 걸려 예식장 코앞까지 왔지만 식에 들려 친구의 얼굴이라도 보고 간다면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영영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20분 정도 흘렀을까. 다시 어머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남편과 나는 서로를 보고 무언가를 직감했다. 받아보니 어머님의 우시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남편은 더 액셀을 밟았다.


병원에 도착해 보니 다른 식구들도 모두 와있었다. 마지막 모습을 아무도 보지 못해 다들 안타까운 심경이었다. 할아버지는 평소 주무시는 모습으로 눈을 감고 계셨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어 모르면 그냥 주무시는 것처럼 보였다. 더 늦었더라면 누워계신 마지막 모습도 보지 못했으리라.


안치실로 옮기고 본격 장례 절차를 밟았다. 갖춰진 장례식만 가봤지, 하나하나 정할 게 이렇게도 많다는 건 전혀 생각 못했다. 물론 손주 며느리의 위치에서 의사결정 할 일은 없지만, 슬픔 속에서 현실적 조건을 따져가며 장례 용품을 선택한다는 게 만만치 않아 보였다. 남편 가족 중에서 첫 장례라서 그런지 다들 경험이 없어 우왕좌왕 속에서 진행되었다.


다음날 정오에 입관식이 있었다. 수의를 입고 누워 계신 할아버지를 보며 가족들의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자리였다. 상조 회사 직원분이 할아버지의 머리와 어깨 쪽을 만지며 소리 내어 인사를 해도 된다고 하였다. 자식들부터 손주, 그리고 손주 며느리인 나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남편과 결혼식 날짜를 정하고 시댁 식구들과 처음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뵈었던 할아버지 따뜻한 모습이 떠올랐다. 이후 치매가 시작되어 기억을 잘 못하셨지만 그때마다 내 손을 잡으며 당신이 가장 잘 나갔던 시절을 이야기해 주셨다. 할아버지는 과학 선생님이었는데 그때 아이들이 어땠고, 당시 나는 이런 걸 가르쳤다면서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하였다. 어렸을 때 나는 이미 할아버지 할머니가 다 돌아가셔서 할아버지 정을 모르고 컸이런저런 말씀을 들으니 할아버지와의 대화가 정감 있고 따뜻한 느낌이구나를 그때 처음 알았다.


추억이 없는 줄 알았는데  막상 입관식 때 할아버지의 머리를 만지며 인사를 할 때 만나 뵈었던 모든 순간들이 떠올라 눈물이 펑펑 났다. 많이 아프셨는데 좋은 곳에 가셔서 편안해지셨으면 좋겠다고, 뻐해 주셔서 감사했다고 읊조리고 읊조렸다.


발인이 월요일 오전이라 조문은 일요일 하루 밖에 받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부고 소식에 많이들 못 오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밤늦게까지 조문객이 이어졌다. 문상 오신 분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자리를 안내하며 신발 정리를 하는 등 나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걸 하였다.


화장을 마치고 가까운 추모공원 납골당에 유골함을 모셨다. 모신 곳 주변을 살펴보니 바로 위 넓은 창문을 통해 양지바르게 햇빛이 들어오고 파릇파릇 공원이 보여 전망이 좋았다. 그렇게 할아버지를 보내드리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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