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의 시선에서 완벽히 벗어난다면 지금 당장 해보고 싶은 일 한 가지는?
남들의 시선? 중요하긴 하다. 그런데 내가 시선에 신경 쓰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며 산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그것은 거짓말이겠지? 다시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남들의 시선’에 포커스에 맞춰져 잘 생각나지 않아 조금 다르게 생각하기로 했다. 혹시 포기했던 일이 있었는가 말이다. 있었다. 대학생 때 잠시나마 소망한 꿈 ‘카피라이터’이다.
회계세무 경력만 5년째인 나에게 광고 카피라이터가 무슨 소리냐고 할 수 있지만 대학교 3학년 때 광고 공모전 동아리를 6개월 정도 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가입한 동아리였는데 여러 실력자들과 함께 기획을 하고 영상을 만들고 그에 맞는 카피를 쓰며 광고에 잠시나마 푹 빠졌다. 정신 차리고 보니 밤을 새우고 있었고, 초짜임에도 불구하고 참가자 상도 받았다. 그동안 대학교에서 해왔던 공부는 내려놓고 무언가를 새로 탐색하여 결과물까지 만드는 게 참 신기하고 재밌었다. 동아리 활동이 끝나고 그 생활이 즐거워 잠시 진로에 대해 생각했었는데 그냥 하던 거를 하자며 포기했다.
솔직히 두려웠다. 회계세무학과에서 나름 학점도 높았고 (차석이라 반액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다) 졸업 후 진로를 결정한 상태라 바꾸기 힘들었다.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는 두려움도 한몫했다.
만약 지금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20대 초반으로 돌아간다면, 회계세무 직무에 대한 확신도 없었다면, 현재의 나의 삶을 알고 있다면, 더 내 뜻대로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루지 못한 일과 꿈은 계속 생각이 난다더니, 회사에 권태로움을 느끼거나 힘든 일이 생기면 잠시라도 꿈꿨던 카피라이터의 욕망이 저 가슴 깊은 용암로에서 불끈불끈 튀어 올랐다.
결론은 내가 나를 믿고 좀 더 용기 있게, 패기 있게 카피라이터에 도전하지 못했다. 20대 후반에도 여러 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도 지금 시작하면 너무 늦었다고 합리화하면서 마음을 다 잡았다. 32살의 지금과 별반 차이 없는 20대 후반의 나이, 무엇이라도 시작할 수 있는 나이 아닌가? 뭐가 늦었다고 그렇게 그 꿈을 피해 다녔을까?
내가 잘하고 싶은 것, 잘할 수 있는 것, 좋아하는 것을 나 스스로가 무시하고 살았다.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기 위해, 이 남자와 함께 하기 위해서 꽤 괜찮은 연봉의 직장이 필요했다. 내 남자는 처음 만났을 때 학생이었고 내가 누나고, 선배기 때문에 우리의 만남에 내 월급이 필요했다. 그래도 그렇게 한 것에 대해 절대 후회는 없다. 나에게는 ‘사람과 사랑’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과 공부는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미루다 보면 그 열정이 식을 수도 있고, 식으면 진짜 나의 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정말 한두 살 먹어가면서 점점 회사 일에 치여 그 열정이 희미해졌고 내가 하는 일보다 회사의 이름, 나의 직급이 더 중요해져서 더더욱 그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나를 가식으로 대표하는 것들뿐이었는데도 그때는 그런 것들이 더 좋았다.
지금도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란 의구심만 들뿐이다. 남들의 시선도 시선이지만 어쩌면 내가 보는 나의 부정적인 시선으로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내가 나를 붙들고 놓아주고 있지 않다. 꿈은 가지고 있으면서, 꿈이라고 말하면서 회사 생활에 지쳐버린 내가 다시 신입으로 밑바닥부터 일하는 나의 모습을 아름답게 보고 있지 않다. 보기 싫다. 상사의 다그침은 물론이고 업무 강도도 높을 것이며 보상은 적을 테니까.
우선은 배워보면 어떨까? 배워볼 생각은 예전에는 있었다. 이 생각을 몇 년 전에 가졌을 때도 광고 교육원 등 여러 곳을 알아봤지만 실무 경력자가 아닌 이상 신입이 배울 수 있는 교육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학위도 그쪽 학위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 진입 장벽이 높았다. 여전히 부정적인 나의 온갖 시선이지 않은가? 이래서 카피라이터는 절대 할 수 없다.
어쨌든 지금의 나는 카피라이터가 아니지만 카피와 조금은 관련된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책도 한 권 내봤고 글 쓰는 연습을 위해 매일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최종 목표에 카피라이터의 직업군은 없지만 원고 쓸 때도 그랬듯이, 글을 쓸 때 제목을 뽑아내는 일은 여전히 재밌다. 결국은 카피라이터의 꿈을 간접적으로 이룬 것이다! (정신승리!)
앞으로 어떤 인생이 펼쳐질지는 모른다. 내 인생의 목표로 가는 길목 길목에 ‘글’과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으로써는 충분히 만족한다. 포기했던 꿈이지만 포기한 꿈에 더 확장된 버전으로 지금 살고 있으니 말이다.
이번 질문을 통해 남들의 시선이라고 생각했던 문제가 나의 시선의 영향이 더 컸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들은 역시 중요하지 않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각이 더 중요하다. 앞으로 나를 더욱 내려놓고 살면 지금보다 자유롭고 행복하게 내 꿈을 펼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포기했던 꿈을 과거의 나를 만나는 시간, 과거의 나의 꿈과 만나는 시간을 통해 정리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 위 질문은 김애리 작가님의 책 <글쓰기가 필요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