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아닌 곳에선 평소 하지 않았던 것들에 관심을 쏟게 되는 것 같다. 남해살이를 하는 동안은 그게 요리였다. 보통의 경우 집에서 음식을 해 먹기로 할 땐 안방 남자가 요리를 하고 나는 보조를 한다. 나는 어쩌다 한번 영상이나 쇼츠를 보고 특정 메뉴에 꽂혀서 요리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게 1년에 한두 번 정도인데 내 관심과 흥미를 끄는 요리여야 하는 것이다. 횟수와 가짓수가 많지 않아 했던 요리를 나열해 볼 수 있는데 닭볶음탕, 수육, 갈비찜, 전, 미역국 정도다. 내 수준에선 난도가 있는 음식들이었다. 요리를 하고 나면 안방 남자는 내게 하면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어 더 하길 바라는 눈치였지만 몇 번을 해봤음에도 레시피대로 하면 할 뿐, 아직까지 흥미를 일으키지 못하였다. 이 점에 대해 생각해 봤는데 아마 음식을 정해진 대로 해야 하기 때문에 그 틀을 지켜야 맛이 나는 데에서 재미를 못 느끼는 것 같다. 요리해 주는 사람은 본인이 한 요리를 누가 먹어줄 때 뿌듯함과 보람을 느낀다는 데 실로 나는 그러한 인간은 아닌 것이다.
남해에 있을 때 내가 꽂힌 첫 요리는 다름 아닌 '밥'이었다. 밥 자체를 음식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요리에 있어 문외한이지만 평소에 밥을 직접 해서 먹지 않고 즉석밥을 사서 먹기 때문에 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었다. 머무는 곳이 시골 단독 주택이라 그런지 남해에 도착하자마자 가마솥 밥이 생각났다. 리얼리티 예능에서 가마솥에 밥을 짓고 솥뚜껑을 열어 그곳의 정취와 어울리는 뽀얀 김이 새하얗게 올라오는 장면과 밥 내음이 떠올라 나도 그렇게 밥을 해보고 싶었다. 머무는 곳에는 가마솥이 없어 마트에 5~6인용의 밥을 지을 수 있는 미니 가마솥을 구매하였다.
인터넷 검색 창에 ‘가마솥 밥’이라고 검색하여 밥 짓는 방법을 찾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마솥에 밥을 지어먹고 있었다. 그중 내가 산 솥과 비슷해 보이면서 퇴근 후 아내를 위해 저녁밥을 하는 분의 방법이 마침(?!) 눈에 들어와 그대로 따라 하였다.
쌀을 씻고 30분 정도 불린 다음, 손 등보다 살짝 아래로 물이 오게끔 물 양을 맞춘 뒤 인덕션에 솥을 올렸다. (심지어 인덕션이 가능한 솥이 있었다) 처음에 센 불로 끓여주다가 하얀 거품이 생기면 중불로 바꿔주었다. 이내 거품이 거의 없어지면 약불로 한 다음 뚜껑을 닫고 10분 정도 더 끓여주었다. 이후 불을 끄고 10분을 뜸을 들이면 되는 것이었다. 뜸 들이기가 끝나 뚜껑을 열어 보니 상상했던 것만큼 밥 김이 올라오는 건 아니었지만 포실한 쌀 알이 맛스럽게 보였다. 혹시라도 탈까 봐 밥이 지어지는 내내 주방을 벗어나지 못하였는데 다행히 주걱으로 저어보니 타지 않았다. 밥 내음도 좋았다. 임무를 마친 나는 흰밥과 어울리는 반찬을 할 수 있도록 남편에게 바통 터치를 하였다. 그는 전날 먹고 남은 김치찌개에 라면사리와 만두를 넣고 다시 끓였다. 동시에 마트에서 사 온 양념 고기를 구웠다.
가마솥이 주는 감성 때문인지 정성이 들어간 밥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밥맛은 정말 좋았다. 반찬이 많지 않더라도 흰쌀밥과 김치찌개, 양념고기는 그야말로 밥도둑이었다. 안방 남자는 너무 맛있다며 한 공기를 단번에 해치우더니 뒤이어 두 번 밥을 더 퍼다 나르게 하였다. 이거 원 자주 해달라는 뉘앙스다. 이왕 솥도 사고 쌀도 샀으니 있는 동안만큼은 솥밥을 해서 먹어야겠다. 후각, 시각, 입맛도 다 잡은 남해 시골집에 어울리는 난생처음 가마솥 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