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일 잘한다고 소문났더라?
Part2. 직장 사람들 저한테 대체 왜 그러세요 ep.05
두 번째 회사를 나오고 며칠 뒤 눈 여겨봤던 회사의 공고가 올라왔다. 회계를 한다면 모를 수 없는 회계 프로그램 기업이었다. 회계 쪽 일을 하려면 당연코 이 회사 프로그램을 쓸 줄 알아야 했고 여기에서 발급하는 자격증도 있었다. 나도 학부 때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다만 채용하는 직무는 회계가 아니었다. 프로그램 개발사인 만큼 회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신입 직원을 뽑는 것이었다. 나는 고민 없이 바로 지원하였다. 일단 회계 전공자로서 인지도가 높은 기업이었고, 그 회사 프로그램 자격증도 2개나 있었다. 졸업 전 세무법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였는데, 그때 이 프로그램으로 일을 했었기 때문에 프로그램의 장단점을 알고 있어 면접에서 할 말도 많을 것 같았다. 이미 잘 알고 있는 회사이면서 동기부여도 확실하기 때문에 자기소개서도 수월하게 작성하였다. 합격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하긴 했었지만 정말로 서류와 면접까지 일사천리로 합격하였다. 전 회사 퇴사 후 약 한 달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회사 위치가 강원도 춘천이라 본가인 광명에서 출퇴근이 어려웠다. 셔틀버스가 다니기는 하였지만 그 위치도 집에서 멀었다. 어쩔 수 없이(이때다 싶어) 독립하기로 결정하였고, 셔틀버스가 오는 서울의 한 지역에서 보증금 500에 월 35만 원짜리 원룸을 구하여 출퇴근만을 위한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입사 첫날 회사에 가보니 팀원은 18명이었고 그중 3명이 나와 함께 입사한 신입이었다. 동갑내기 여자 1명, 2살 아래 남자 한 명, 나 이렇게이다. 업무 교육은 일주일 동안 바로 윗 선배 세 명이 돌아가며 진행하였다. 팀 안에 파트가 3개인데 각 파트마다 한 명씩 신입을 뽑은 것이었다. 사수도 1대 1로 정해져 있어 이후에는 전담으로 심화 업무 교육이 진행되었다.
본 업무 외에 신입으로 할 일이 더 있었다. 나의 경우 서울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출근하기에 다른 직원들보다 빨리 출근하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아침마다 부장이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리는데 그 커피 집기구를 닦고 정리하는 게 내 몫이 되었다. 내가 입사하기 전에는 윗 기수 여자 선배가 담당했던 걸로 보였다(그녀 밖에 할 사람이 없었다). 또한 팀 옆에는 본부장실이 있어 가끔 거래처 사람들이 오면 차를 대접해야 할 사람도 필요했다. 아침마다 커피포트와 잔을 정리하는 내가 당연하게도 손님 대접까지 하게 되었다.
이미 보증금 500만 원과 월세를 감당하면서도(마이너스로 시작하면서) 이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감지덕지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나에게만큼은 워너비 기업이었고 그 회사의 명함과 출입카드를 소지하고 있는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팀에서 뭐든 시키는 일이면 벌떡 일어나 빠릿빠릿하게 행동하였다. 다른 두 신입에 비해 1년 회사 경력도 있었기에 그들과 똑같이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누구보다 빠르고 열심히, 그리고 궁금한 건 질문도 바로 하면서 누가 봐도 ‘열정의 신입사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머지 두 신입은 그런 나를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다)
입사 한 지 두 달 정도 흘렀을 때였다. 어느 때와 같이 출근해서 자리에 가방을 놓자마자 커피포트, 스푼, 컵 등을 챙겨 설거지를 마치고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 중이었다. 평소 일찍 출근하지 않는 부장님이 그날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는 나를 힐끔 보더니
“너 일 잘한다고 소문났더라?”
이 말이 단순한 칭찬이 아니었다는 걸 그때 나는 모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