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인생에서 가장 아쉽고 안타까운 순간

지난 시간 중 가장 아쉽고 안타까운 순간은 언제인가?

by 다인


주변 사람들의 위로를

위로로 받아들이지 못한 순간



가장 아쉽고 안타까운 순간이 딱 떠오르는 두 가지 사건이 있다. 둘 중에 무엇이 더 안타까운지 고민을 많이 했다. 우선 한 가지는 2016년에 가고 싶었던 기업에 입사하였는데 상사의 괴롭힘으로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 1년도 못 채우고 그 해에 퇴사했다. 모두가 나의 퇴사를 말렸고 심지어 나를 괴롭히던 그 상사 윗분도 조금만 더 견뎌보라며 뜯어말렸다. 돌이켜 보면 신입사원인 나를 많은 분들이 아껴주었는데 그 단 한 사람 때문에 다른 누구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 같이 일했던 사람들은 정말 좋았는데, 한 사람의 괴롭힘으로 다른 사람들의 친절과 배려와 위로를 내가 진심으로 귀담아듣지 못했다는 점. 그게 지금 생각하면 조금 아쉽다. 사람이 힘들면 그 힘든 순간만 보여서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들어 위로를 위로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과연 모두의 염려를 조금 더 귀담아들었다면 어땠을까?

아니다. 당시 바닥까지 내려간 자존감에 자존감이라는 글자까지 없어질 뻔했어. 다시 고개를 흔든다. 그래서 이건 가장 아쉬운 축에 속하지는 않는다. 다시 돌아가도 나는 같은 결정을 할 것이다.




시작도 쉽고 끝도 참 쉬운 나



이후 바로 이직을 해서 다음 회사 재무팀 소속으로 3년을 다녔다. 그 회사에서 나는 ‘세무사’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이 자격증을 눈여겨본 이유는 회계세무학을 전공하기도 했고 업무도 잘하고 있어 분야의 최고인 자격증을 한번 취득해 보자였다. 전문성 획득과 평생 먹고 살 걱정을 안 할 기대를 하며 무작정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성격의 경우 한번 무언가를 시작하면 끝이 어찌 될지는 생각도 안 하고 시작만 잘해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제대로 준비하자며 다니던 회사를 과감하게 때려치우고 남편의 어깨에 기대어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열심히 했다. 그게 한 5개월이 지났을까. 슬럼프가 왔고 혼자 공부하는 외로움에 사무쳐 점차 친구들을 만나면서 시험과는 멀어지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 좋아하던 술을 끊었다가 다시 마시게 되었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기상 시간도 늦어지고, 기간 회원권으로 끊어놓은 스터디 카페도 가지 않았다. 시험조차 보지 않았다. 자연스레 세무사 시험을 관두는 일련의 과정을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결국 포기했다. 한번 관두면 뒤도 안 돌아보고 뿌리친다. 시작도 쉽고 끝도 참 쉽다.




그 순간을 피한다고 다른 걸 선택하면

또다시 그 선택으로부터 또 도망칠 수 있어



물론 시험공부를 하다가 이건 정말 아니라고 판단을 한다면 그만두는 것은 맞다. 안 되는 걸 붙잡고 늘어지는 것 역시 시간 낭비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 5개월 정도밖에 하지 못했다. 이 정도를 예상하지 못하고 시작한 나 자신이 한심했다. 5년도 아니고 5개월 이후의 삶을 예상하지 못하고 과감하게 회사까지 퇴사하면서 일을 저질렀다는 게 후회가 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다닌 회사의 권태로움이 새로운 시작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져 결론은 퇴사하고 싶어서 시험공부를 시작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 순간을 피한다고 다른 걸 선택하면 다른 선택을 하더라도 언제든지 도망칠 수 있다. 나는 또 도망친 셈이다.




‘나’는 진짜 어떤 사람인가가

내 ‘꿈’을 결정할 수 있다



시험공부하면서 아쉬운 점 또 한 가지가 있다. ‘꿈’에 대해 진심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세무사라는 꿈이 나의 진짜 꿈이었을까? 꿈이 아니었기에 이렇게 쉽게 그만둔 것이 아닌가? 그러면 나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할 줄 아는 사람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묻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게 없었다. 그 과정을 생략하다 보니 급한 결정을 하고 신중치 못한 선택을 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진심으로 자신에게 묻지 않고 그냥 막무가내로 하면 된다는 마인드가 실패를 거듭하게 되어 자존감을 떨어뜨렸다.

내 '꿈'을 결정하기에 앞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심도 있는 고민이 선행되었어야 했다. '나'에 대해 내가 잘 알고 있다면 내면의 단단함이 형성된다. 그 단단함은 단순히 주위에서 보기 좋은 직업 선택이 아니라, 내가 남들에게 말하기 좋은 직업이 아니라, 정말 내가 원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꿈을 선택하게끔 만드는 것이다.

호기롭게 시작한 세무사 공부는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포기해버려서 감히 꿈이라고도 말하기도 스스로도 너무 창피했다. 그 떨어진 자존감을 이끌고 취업 전선에 또다시 뛰어들었다.




오로지 나에게 집중한 시간



현재는 재취업한 회사에 8개월 일을 하다가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고 퇴사를 한 상태이다. 퇴사한 지 4개월이 지났지만 퇴사하기까지 과거 실패했던 세무사 공부를 생각하며 신중하게 결정하려고 노력했다. 우선 직장은 다니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찾기 시작했다.

가장 원천적으로 무엇을 좋아하는지부터 탐색했다. 평소 내가 쓴 글을 보며 치유를 받는 것을 좋아했다. 바로 온라인에서 글 쓰는 모임을 찾았고, 어쩌다 보니 책까지 출간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정말 어쩌다 보니였다. 당시 글 쓰는 것에 갈망이 커서 출근 전과 퇴근 후 시간을 활용하여 원고를 썼다. 그렇게 글 쓰는 내 모습이 자랑스러웠고 사랑스러웠다. 글을 쓰며 몰입이라는 것도 난생처음 겪었다. 한바탕 몰입을 하고 나면 그 희열은 큰 만족감을 주었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정말 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다. 이 재미나고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하고자 다짐하여 지금은 쓰고 싶은 글을 쓰며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고 있다. 게다가 글을 쓰며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많아졌다. 그 시간들을 통해 또 좋아하는 분야를 찾게 되었고 그 분야를 좀 더 공부하고자 학위를 취득할 계획도 세웠다.




단단한 ‘나’는

진짜 ‘나’를 만든다.



인생에 있어 가장 아쉽고 안타까운 순간은 누구나 있다. 그런데 인생이 늘 그런 후회의 연속이라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피폐하고 괴로울까? 인간은 과거에 대한 반성을 하고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려는 기질이 있다고 한다. 나의 경우도 시작은 창대하되 끝은 도망치는 삶을 반복하다 대체 나는 어떤 인간인가를 고민하고 이전의 삶을 반성하며 지금의 ‘나’에게로 돌아왔다. 이제 내가 ‘나’에게서 도망칠 수는 없다. 주변의 시선은 내려놓고 ‘나’에게 집중하는 삶,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삶, 내 꿈이 무엇인지 아는 삶은 나를 점차 단단한 ‘나’로 만들어 준다. 단단한 ‘나’는 진짜 ‘나’가 누구인지 아는 삶이며, 진짜 ‘나’를 알고 살아간다면 인생에서 안타까운 삶을 살지 않을 것이다.

험하지만 이 재밌는 세상에서 단단한 ‘나’와 진짜 ‘나’에 도달하도록 앞으로 나만의 것을 느리더라도 꾸준히 수행하고 오늘도 노력한다.




* 위 질문은 김애리 작가님의 책 <글쓰기가 필요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에서 발췌하였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