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게 혼자만 간직하고 있는 꿈이 있는가?
질문을 보고 좀 의아했다. 아무도 몰라야 하고, 간직해 왔던 꿈이라... 감췄던 이유, 감추게 된 배경? 등 바로 나오지 않는 답 때문에 질문 자체를 쪼개어 생각해 봤다. 나는 보통 흥미 있거나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기어코 하는’, ‘숨기지도 않는’ 유형의 사람인데 과연 이 질문에 대답할 게 있을까? 우려했던 대로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아 조금 다르게 생각하기로 했다.
‘마법이 있어 간직한 꿈을 이루게 해 줄 수 있다면?’
이것에 대한 대답은 사람 속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이건 평소 인간 심리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는 꿈까지는 아니고 소망 정도?라고 여기기로 했다. 그다지 간직한 적도 없으니 이 대답은 Pass~~
‘간직’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본다. ‘간직’ 자체가 오래된 느낌이라 과거로 거슬러 갔다. 어렸을 때는 내가 공부 말고 무엇을 했던 아이였는지, 무엇을 따로 연습하며 살았는지 말이다. ‘어렸을 때’라는 키워드가 꿈을 순수하게 간직하기 좋은 느낌이다. 그 좋은 느낌에 힘을 받았는지 무릎을 탁 치며 “아”라고 외쳤다. 어릴 적 우리 집 거실에 있는 소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컴퓨터 책상에 앉아 랩을 뱉던 모습이다.
그렇다. 잊고 지낸 나의 꿈은 ‘래퍼’였다.
정말 잊고 지냈다. 지금까지 랩 경연 프로그램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시청했으면서 어떻게 이걸 잊고 지낼 수 있을까? 지금 그 꿈은 소중한 꿈이 아니게 돼버렸지만 그때는 가슴 설레며 랩을 뱉었던 게 좋았다. 시험 끝나고 친구들과 노래방을 가는 게 중학생 소녀의 유일한 일탈이었다. 그때 고음 불가에 호흡도 딸려 노래 못하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나만의 무기를 만들고 싶어 찾은 게 랩이었다. 고음도 필요 없고 박자와 리듬에 맞춰 마디마디의 말들을 나만의 스웨그로 쏟아내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학교가 끝나고 학원 가기 전까지 자투리 시간에 <윤미래-Memories>를 따라 불렀다. 쉬워 보였는데 어려웠다. 하지만 비슷하게 리듬을 따라가며 뱉을 수 있을 때까지 윤미래 목소리에 내 목소리를 끊임없이 얹었다. 다른 사람들도 이 랩을 어떻게 연습하는지 다음 카페 영상을 보며 자연스레 숨 쉬는 법, 발음하는 법을 리듬감에 대해 배웠다. 안 될 것만 같던 랩이 강약도 조절하며 자유자재로 뱉을 수 있었고 가사도 다 외워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어느새 중학생 소녀의 마음속에는 래퍼라는 작은 꿈이 생겼다. 그 꿈을 많이 좋아했다면 이후에 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일단은 좋은 대학이 목표였기 때문에 학업에 열을 올려 점점 잊혀 갔다.
이 꿈에 대해서는 말한 적도 없으니 아무도 모른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말할 수 있을까? 선뜻 그렇다고 말을 못 하겠다. 이걸 감추는 나의 내면 심리의 바탕은 무엇일까? 왜 나는 감추고 싶은 걸까? 일단은 부끄럽다. 기본적으로 남 앞에 서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친구들끼리 노래방을 가도 긴장이 되어 제일 마지막에 노래를 한다. 나의 이야기는 그나마 하겠는데 노래의 경우, 심지어 랩도 노래방에서 정말 친한 친구들과 있을 때 ‘가끔’ 한다. 그리고 그걸 한때 꿈이었다고 말한다면 모두가 비웃을 것 같았다. 답이 나왔다. 내가 말 못 하는 이유는 ‘비웃을까 봐’다.
솔직히 비웃든 말든 상관없는 거 아닌가?라고 넘기면 되는데 그렇게까지 못하는 것 같다. 정말 왜 그러는지 내가 내 마음이 궁금했다. 떳떳하게 말을 못 하는 이유, 스스로가 떳떳하지 못한 거고, 남이 비웃을까 봐 말 못 하는 것은 나 스스로가 그 꿈을 비웃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당당하지 못하고 그 꿈을 하찮게 보는데 누가 그 꿈을 인정해 주고 응원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꿈만이 아닌 것 같다. 내가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 다른 내면의 요소들도 같은 맥락인 게 분명하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니까 남들 눈에도 그렇게 보일까 봐 지레 걱정하는 것이다. 나부터가 자신감 있게 행동했다면 남들은 그냥 그대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생각보다 관심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더욱 상관없는 거 아닌가?
결국 내 마음의 문제다. 나부터가 나를 먼저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못 받아들임의 문제인 것이다. 그런 자존감이 어렸을 때는 형성 안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나 자체를 내가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어느 누가 나를 가치 있게 인정해 줄까?
그 당시에 내가 당당하게 그 꿈을 말했더라면 왠지 지금까지 취미로라도 꾸준히 하고 있을 것 같았다.
꿈은 말로 뱉는 순간순간이 쌓여 이룰 수 있는 상태로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나의 모습을 잠시나마 떠올릴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그걸 강제로 간직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오늘 확실히 알았다. 문제는 ‘나’로부터 발생하며 앞으로 내가 이 문제에 대해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내 생각을 고쳐먹고, ‘나’에게 더 당당해지려고 노력하자. 당당해진 내 마음은 앞으로도 더 무궁무진하게 무엇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려운 일도 성공시킬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이다. 지레 겁먹고 감춘다면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원하는 꿈을 가두고 감금하는 꼴이다.
자신감 있게 나아가 보자. 까짓것 래퍼였던 꿈! 지금 한번 취미로라도 다시 시작해 보련다!
내가 나를 믿고 응원하고 확신을 가지며 살아야 한다는 오늘의 깨달음, 가슴 깊이 새길 것이다.
* 위 질문은 김애리 작가님의 책 <글쓰기가 필요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