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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 않는 두려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중 무엇이 가장 두려운가?

by 다인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그 자체가 두렵다



나는 겁이 많고 두려움에 공포를 쉽게 느끼는 사람이다. 어떤 일을 시작하고, 포기하는 두려움은 전혀 없지만 내 안전을 위협하는 두려움은 무섭다. 이 질문을 보고 딱 한 가지가 떠올랐다. 요즘 들어 나를 가장 짓누르는 두려움은 ‘코로나’이다.


‘코로나’는 나뿐만이 아니라 매일매일 두려움의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을 것이다. 어디를 가도 그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는 사실 자체가 두렵다. 게다가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유독 더 예민하게 두려움을 느낀다. 남들이 나를 보면 유난 떤다고까지 할 수 있다. 코로나 터지고 회사 다닐 때는(지금은 퇴사했다) 윗분들이 하자는 회식, 팀에서 하자는 회식에 확진자가 많이 나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모조리 빠졌다. 자꾸 빠지게 되어 팀장님께는 솔직히 말했다. 혹시 모를 감염 때문에 내 주변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고, 두려워하며 회식 자리에 있기보다는 집에서 회식 참석 못 하는 불편함을 느끼겠다고 했다. 회식 자리뿐만이 아니었다. 각종 집안 경조사에도 불참했고, 술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는 내가 친구들 모임도 거의 하지 않았다. 보통은 주최자가 되어 여기저기 사람을 다 끌어모아 만남의 자리를 만드는 나인데도 말이다.


회사 구내식당에서도 점심 식사하는 게 늘 불안했다. 가끔 외부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때는 불안의 극을 달려 밥도 제대로 넘기지 못해 체하기도 한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가게 종업원이 감염되어 있을 수도 있고 많은 손님을 상대하기에 그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다는 상상을 한다. 식당 공중에 떠다니는 바이러스 입자가 내 호흡기로 들어갈 수도 있다. 그곳에 있는 내가 감염되어 누군가에게 전파시킬 수 있고 그 누군가는 가족, 친구, 동료일 것이다. 그 사실이 너무 두려웠다. 아픈 것과 후유증, 합병증도 모두 두렵지만 가장 큰 두려움은 나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플 수 있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의 건강을 해치고 그 사람의 생계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게 생각만 해도 너무 끔찍하다. 그 일이 벌어진다면 내가 수습할 수도 없고 통제 불가능하다. 눈에 보이지 않음 자체가 두려움이 되어 두려움을 증폭시킨다.




안전을 단순히

‘그날의 운’에 맡길 수 없다



며칠 전 남편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다음 주 월요일에 본인이 일을 쉬는 데 상암동 한우집과 이자카야 술집을 가자고 말이다. 그 자리는 나도 당연히 참석하는 자리다. 남편 친구들은 늘 함께 만난다. 그 세월도 벌써 7년이다. 얼떨결에 시간은 되니까 동의는 했는데 동의하고 나자마자 코로나 때문에 마음에 걸렸다. 겨우 잠잠했던 일상에 또 두려움이 몰려왔다. 지금 서울과 경기 확진자가 합쳐서 500명 정도 되는데 이 시국에 서울까지 나가자고? 이후 강박에 걸린 생각이 나를 덮쳤다. 꼭 가야만 하나? 식당 환기는 잘 되나? 걸리면 어떡하지? 내가 걸려 우리 가족에게 옮기면 어쩌지 등등 호흡도 조금씩 빨라지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더니 급 피로해졌다.


생각은 그만하고 사태를 좀 더 파악해보자며 네이버 창에 ‘코로나 식당 감염’이라고 검색했다. 아니나 다를까, 두려움은 더 커졌다. 식당에 종업원이나 손님이 코로나에 걸린 사람이 있다면 그 시각 식당 사람들의 80~90퍼센트는 걸리는 듯했다. 나의 건강과 두려움을 식당에 감염자가 없길 바라는 ‘운’에 맡길 수 없다. 그 친구가 있는 카톡 방에 코로나 식당 감염 기사들을 보여주며 다음에 만나자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서울에서 만나기로 한 약속은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막상 사람들을 만나면 즐겁지만 이제는 만날 때마다 두려움과 걱정이 앞선다. 누군가를 만나는 게 두려워지는 세상이 가혹하다. 가족과 친구들의 개인 방역도 믿어야 하는데 잘할 거라는 믿음보다는 의심이 먼저 든다. 이렇게 사람에게 팍팍해지고, 의심부터 하는 내가 나도 싫다.




스스로가 통제하지 못하는 삶이

가장 두렵다



그렇다면 나는 왜 유독 다른 사람들보다 더 예민하게 반응을 할까? 지킬 것이 많아서? 잃을 게 많아서? 나이 들면서 지킬 것들이 많이 생기긴 한다. ‘나’만 생각할 수가 없어서이다. 나와 내 가족, 친구,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나’로 인해 피해를 줄 수 없다. 그리고 지금 나는 하고 싶은 일들이 정말 많다. 그 일들을 하기 위해 병에 걸려 쉴 수 없다. 병으로 나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삶은 살아갈 의욕을 떨어뜨릴 것이다. 내 노력으로 일궈내는 삶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삶을 ‘나쁜 운’으로부터 방해받고 싶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는 두려운 코로나는 우리 눈앞에 있을 수 있고 없을 수도 있다. 보이지 않아 내가 직접적으로 통제하기 힘든 존재기 때문에 가장 두렵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게 인생이라고 행복할지, 슬플지, 두려울지도 모를 인생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거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두려움이 추가된 것이다. 내다보지 못한 인생이 조금은 궁금하지만 우리는 행복하길 바라며 오늘을 잘 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는 내일도, 모레도, 당분간은 두려울 것이라는 확신을 주어 가뜩이나 힘들 수 있는 인생에 버거움도 더해졌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을 환경을 만들고 병에 걸리지 않으려는 노력을 통해서 이 두려움을 조금씩 극복해 나갈 뿐이다.


두려움이 심해 마음이 불안정하더라도 그 두려움을 내려놓아 피하려고 하면 안 된다. 두려움이 또 다른 두려움을 만들어 내지만 두려움 자체가 내 가족을 지킬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대신 그 두려움에 너무 큰 스트레스는 받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그동안 받아들이지 못해 스트레스였던 것 같다. 이제는 마스크도 삶의 일부가 되지 않았나? 앞으로는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도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 사랑하는 나의 사람들을 지킬 것이다.


오늘은 내가 느끼는 극한의 두려움을 글로 표현할 수 있어 좋았다. 단순히 코로나가 두렵다고만 생각했었는데, 마음 깊숙한 면을 들여다보며 왜 이렇게까지 두려워하는지에 대해 명확히 알게 되었다. 나조차도 들어가 보지 못한 마음속을 발걸음을 한 기분이다.




* 위 질문은 김애리 작가님의 책 <글쓰기가 필요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에서 발췌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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