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고쳐야 할 필요성은 느끼지 않았다. 왜? 이게 나니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잘못한 게 있다면 반성하고 받아들이면 되는 것을, 나의 일부를 억지로 변화시켜가면서 ‘나’를 새롭게 만들고 싶지 않다. 내 성격은 있는 그대로 만족한다.
이랬다 저랬다 변덕은 심하다. 기분파이기도 하며 친하고 안 친한 사람들에게 태도가 천지차이인 ‘나’이지만 나름 괜찮다고 생각한다. 변덕 심한 것은 이래저래 하고 싶은 게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고, 기분파인 것은 대체로 기분 좋은 날이 많기 때문에 괜찮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잠깐 자거나 혼자 있는 시간이면 금세 풀어진다.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살갑게 못하고 마음을 쉽게 못 열기 때문에 처음에는 낯을 가리지만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해결해 준다. 대신 첫 느낌이 통하는 친구를 만나면 적극적으로 대시한다.
다름은 잘못된 것이 아니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성격적 결함을 뽑아본다. 같이 사는 사랑하는 남편이 그동안 나에게 바라는 의견들 위주로 떠올려봤다.
첫 번째는 잔소리가 심하다. 보통 가족들과 친한 친구들에게 잔소리가 심한 편이다. 잔소리라는 뜻을 네이버 사전을 찾아보니까 ‘쓸데없이 자질구레한 말을 늘어놓음’, ‘필요 이상으로 듣기 싫게 꾸짖거나 참견함’이라 한다. 내가 하는 말들이 맞는 것 같다. 굳이 더 말할 필요는 없는데 내 기분이 상해서 기분이 풀릴 때까지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것. 이것은 내 사람들을 위해 줄이고 싶다.
내 잔소리는 거의 남편과의 집안일 문제에서 발단이 된다. 내 눈에는 보이는 집안일이 남편 눈에는 보이지 않아 시작된다. “이것 좀 해줘~, 저것 좀 해줘~” 하다가 어느새 내가 하고 있으면 갑자기 화가 치민다. 같이 사는 집인데 내 눈에는 보여서 내가 하고, 남편 눈에는 신경 쓰이지 않아 결국은 나의 몫이 돼버린다. 그게 쌓이고 쌓여 평소 대화가 화와 잔소리로 변질된 것이다. 항상 말하고 나서는 내가 너무 심했나 생각하지만, 바로 시원하게 실행해 주지 않은 남편의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잔소리가 나가고 그 말투는 어느새 명령조로 바뀌어있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어떻게 하면 잔소리를 줄일 수 있을까, 안 할 수 있을까.
앞으로는 기다리기로 했다. 한번 요청은 하되, 더는 말을 안 하기로 말이다. 괜히 내가 해서 내가 한다는 명목으로 나도 스트레스를 받고 그로 인해 잔소리 듣는 남편도 스트레스받는다. 나도 하지 않고, 남편이 할 때까지 기다리면서 나도 다른 업무를 보는 걸로. 서로 받아들이고 느끼는 게 아예 다르다. 문제의 속도나 심각성을 느끼는 게 차이가 있다. 그냥 나와 다른 사람, 남편이라고 내 말을 다 들어주고 실행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도 사람이기에 나와 같을 수 없고 그의 입장에서도 나는 다른 사람이다. 성미 급한 내가 좀 더 기다리기로 한다. 결혼 3년 차인 우리에게 요새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는 문제이기에 내가 좀 내려놓고 기다릴 것이다. 사랑하는 내 남자에게 잔소리로 그 사람 기를 죽이고 싶지 않다. (그런데 아무리 내가 뭐라 해도 질 사람은 아니다^^)
낯가리고 싶지 않아
두 번째는 낯가림이 심하다.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 정도 낯가림은 낯가림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게 엄청 노력한 결과이다. 그 노력이 참 힘들다.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낯을 가리는 내가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다. 좀 더 열린 마음으로, 그 사람을 환영하고 반가워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라는 사람이 당당하지 못해서일까?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낯가림은 해소가 돼도 그 시간이 꽤 걸린다는 것이다. 대학 때는 몰랐는데 사회에서, 좀 더 경직된 분야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더 어려운 것 같다. 그 사람이 나에게 해코지하는 게 아닌데도 말이다.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도 편하게 웃으며 대화하는 사람들이 부럽다. 내가 가지지 못한 재능이다. 열린 마음으로 사람 대하는 법,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진정한 싫은 소리는
나를 위한 좋은 소리다
세 번째는 싫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 이건 내 발전을 위해 고치고 싶다. 하긴 누가 싫은 소리를 좋아하겠냐 만은 나는 유독 더 못 듣는 타입이다. 그리고 그 불편함을 온몸으로 티를 낸다. 기본적으로 내가 하는 방법이 옳다는 전제가 깔려 있어서일까? 친한 친구 사이여도 나에게 싫은 소리나 반박하는 소리를 조금만 해도 그 불편한 기억 때문에 마주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과거 회사 생활이 더 힘들었을 수도 있다. 상사가 나에게 하는 쓴소리들을 귀담아듣지 못해 쓰리고 아팠다. 당연히 내가 부족해서 듣는 소리도 기본적으로 무슨 자만과 오만으로 듣지 않았는지, 반박은 또 있는 힘껏 잘한다. 미운털이 박힐 수밖에 없다.
살아가면서 좋은 소리만 듣고 살 수는 없다. 감언이설과 같은 달콤한 말에만 귀가 호강하여 넘어가서는 안 된다. 진짜 나를 위해 해주는 조언과 충고들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단순 험담이나 앞담화는 들을 필요가 없지만, 적어도 내 사람이 나를 위해 하는 말들은 귀담아듣는 연습을 해야겠다.
“친구들아 나에게 간혹 쓴소리 좀 해주겠니?
내가 잘못 살고 있을 때 정신 차리라고 따끔하게 해 주기를 바랄게.”
처음 이 질문을 듣고 내 성격이 그냥 ‘나’인데 고치고 싶은 게 있을까? 했다. 좀 뻔뻔해도 내가 ‘나’이므로 가족이나 친구들은 온전히 나를 받아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곁에 있어서 잘 모르지만 내 성격적 결함으로 언젠가는 문제가 될 수도 있고 나 때문에 상처 받을 수도 있다.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좀 더 그 사람들에게 괜찮은 내가 되어 보는 것이다. 온전히 받아주는 것도 사랑이지만, 좀 더 나은 관계를 위해 괜찮은 사람으로 변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사랑이다.
이 사랑을 앞으로 내 사람들과 내 사람들이 될 사람들과 나누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함께 하고 싶다.
* 위 질문은 김애리 작가님의 책 <글쓰기가 필요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