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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Dec 22. 2021

어릴 적 나의 글쓰기 친구, Jenny

글쓰기를 왜 좋아하게 되었냐고 스스로에게 물었더니

일주일 정도, 아니 열흘 동안 글쓰기를 쉬었다. 변명을 하자면 다니고 있는 학교 기말고사 공부에 매진한다고 잠시 매일 쓰는 걸 내려놓았다. 마지막 과목 시험이 12월 12일에 끝이 났다. 이후 고생했다며 말 그대로 푹 쉬어버렸다. 애초에 글쓰기 습관을 만들자고 하지 않았던 것처럼.  


쉬는 내내 좋아하는 뒹굴거리기를 하루 종일 했고 보고 싶었던 예능과 드라마도 정주행 했으며 친구들과 술잔도 부딪쳤다. 그리고 15년 지기와 경주 여행도 2박 3일로 다녀왔다. 이런 일상을 보냈으면서 매일 글쓰기를 한다고 다짐했단 말인가. 그래도 쉬면서 손가락이 근질거리긴 했다. 쓰고 싶은 욕망, 표현하고 싶은 욕망, 뭐라도 끄적거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욕망에 이끌려 다행히 다시 펜을 잡았다.


오랜만에 actto 키보드로 ㅎㅎ


매일 글을 쓰겠다고 다짐한 게 한 달도 채 되지 않는다. 불과 2주일 만에 시험이라는 장벽 앞에 나의 열흘이 무너졌다. 잠시 쉬어가는 구간이라고 하기엔 써 놓은 글이 참 미미하다. 시험이라는 장애물 하나 만났다고 이때다 싶어 잠시 내려놓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매일 쓰는 건 여전히 힘들고 고되다. 하루 이틀 명확한 주제가 있다면 키보드라는 무대 안에서 신나게 손가락 춤을 추겠지만 소재가 고갈되면 키보드 한 자 한 자 누르기가 두렵다.


이쯤 타박해야겠다. 반성은 반성인 거고 쉬는 동안 다시금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것에 마음을 확인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작심삼일도 반복하면 작심삼일이 아니지 않을까? 단번에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면 나는 진작에 여러 권의 책을 낸 작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지 못해 습관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이렇게 채찍질하는 게 아닌가.



글쓰기를 왜 좋아하게 되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어릴 적부터 속상하거나 답답한 일이 있으면 Jenny라는 가상의 친구에게 편지 쓰듯이 일기장에 적었다. 적다 보면 감정이 분출하여 쓰는 손에 힘이 들어가 손이 아팠던 게 기억이 난다. 다 쓰고 나서 일기장을 탁, 덮으면 안 좋았던 감정이 딱, 멈추는 듯했다. 마음이 가라앉았고 흐르던 눈물이 멈췄다.

처음에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만 Jenny를 찾았다. 그러다 점점 Jenny를 부르는 날이 많아졌다.  그 시절 짝사랑, 친구와의 문제, 공부 고민, 진학 문제 등 심지어 가정사까지 온갖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Jenny는 나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는 존재이자 마음을 함께하는 동반자였다.   



어느덧 대학에 입학하고 취업을 하면서 Jenny를 부르는 일이 줄어들었다. 점점 잊고 살았다. 심지어 Jenny라는 이름도 어느새 기억나지 않았다. 일에 치여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자주 들 때쯤, 무언가 표출하고 싶은 마음이 꿈틀거렸고 글로 풀었던 과거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리고 수차례 불렀던 Jenny가 번뜻 생각났다. 그동안 힘든 일이 없어서 부르지 않은 게 아니었다. 먹고 산다고 부를 겨를이 없었다. 그만큼 내 마음을 돌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Jenny를 다시 떠올려 보니 반가우면서도 코끝이 찡하다. 어릴 적 나는 힘들 때마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던 아이였다. 가상의 친구를 만들면서까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어린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그 모습이 안쓰러워 눈물이 핑 돌았다.


많이 외로웠던 거니?
누군가에게 말할 수 없던 비밀을,
없는 친구까지 만들면서 마음을 풀고 싶었던 거였니.



오늘 펜을 잡을 때만 해도 Jenny의 이야기를 할 줄 몰랐다.

Jenny의 존재는 내가 만든 가상의 존재이고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인물이다.

다 쓰고 나니 무언가 부끄럽고 창피하네.


글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생각지 못한 마음속 이야기를 끄집어내 준다.

왜 글쓰기를 좋아했는지 다시금 상기시키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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