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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Dec 25. 2021

마음이 힘든 크리스마스이브였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 들었어요

크리스마스이브날 아침에 남편의 핸드폰 너머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남편의 외사촌 누님이 뇌출혈과 백혈병으로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한다는 어머니의 전화였다.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지? 작년에 아버님 환갑에도 환하게 웃으며 건강하게 본 누님이었다. 게다가 몇 달 전에는 임신 소식도 전해 들었던 터라 믿을 수가 없었다. 꺼이꺼이 우시는 어머니 목소리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이브 날에 남편과의 만찬을 준비하려 했지만 우리 부부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혹시 모를 소식에 집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전혀 믿기지가 않는다. 누님과 나와 나이 차이는 세 살 남짓인 것으로 알고 있다. 결혼한 지 이제 3년이 넘어 서너 번 본 게 전부다. 딱히 이렇다 할 친근한 관계를 쌓은 것은 아니었다. 늘 멀리서 인사를 주고받으며 말은 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게 다였을 것이다. 귀여운 외모와 밝은 인상을 가진 누님은 주변을 항상 밝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낯을 꽤 가리는 나와는 반대의 성향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괜스레 나도 밝아지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왜 그런 사람 있지 않은가? 가까이 가기에는 주위에 사람이 항상 많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친해지고픈 사람 말이다. 늘 '언젠가' 기회가 있겠지 하면서 조부모님 생신이나 설에 한 번씩 보면서 기회만을 엿봤다. 근 2년 코로나 때문에 1년에 두 번 보는 것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작년 11월 코로나가 완화될 즘 아버님 환갑에 조촐하게 식사를 했던 게 마지막인 터라 그런 소식을 들으니 나로서는 정말 허망하여 눈물이 핑 돌았다. 내 슬픔이 이 정도인데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냈던 남편과 유독 큰 고모를 잘 따랐던 우리 어머니 마음은 오죽할까. 그리고 그런 딸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외삼촌과 숙모님의 억장 무너지는 게 들리는 듯했다. 누님의 남편은 또 어떻고. 한숨이 푹푹 나온다.



가족끼리 하하 호호 웃으며 보낼 연말 크리스마스가 하루아침에 눈물바다가 되었다. 어머니께서는 그 길로 아가씨와 원주에 있는 병원으로 달려가셨다. 중환자실에 있어 직접 얼굴을 보지는 못하지만 자식의 오늘내일을 대성통곡할 당신의 오라버니와 언니를 위로하러 가셨으리라.

남편과 나 역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초조하게 전화기만 붙드는 수밖에. 점심 겸 저녁 한 끼를 겨우 먹었는데 입맛도 없어 남은 배달 음식을 냉장고에 밀어 넣어 버렸다. 밥이 넘어갈 때가 아닌 걸 장기들도 알고 있는지 어제는 조용했다. 평소 같으면 아우성쳤을 텐데 말이다. 나름 크리스마스라고 거실 통창에 전구 트리로 분위기를 낼 참이었다. 이브날 완성하기로 한 트리는 거실 한쪽 바닥에 본분을 다하지 못한 채 놓여 있었다.


오지 않길 바라는 전화기를 붙들다가 열한 시쯤 잠에 들었다. 크리스마스가 무색할 정도로 평소보다 무거운 분위기로 잠을 청했다. 혹시 모를 밤 사이 전화에 미리 잠이라도 자야 되나 싶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뒤척이다 새벽 두 시 반에 잠에서 깼고, 옆에서 잠이 든 남편 얼굴을 보고 내가 잠든 사이 별일은 없었구나 싶어 조금은 안도했다. 남편은 보통 새벽 한 시쯤에 잠이 든다. 아침에 잠에서 깬 남편에게 어머님께 연락 온 거 없었냐고 물었더니 그래도 숨을 고를 수 있는 답변을 들었다.


"엄마한테 어젯밤 늦게 전화가 왔었는데, 좀 더 지켜보자고 했다네"


자세한 이야기를 들은 건 아니지만 고비를 넘긴 것 같았다. 분명 어젯밤을 못 넘긴다고 했으니 말이다. 어머니와 아가씨는 의사의 소견을 듣고 집으로 출발하셨다고 한다. 마음 졸였던 나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새벽에 남편을 깨워서라도 물어볼 걸 그랬다. 괜히 새벽에 무슨 연락이라도 올까 봐 남편 핸드폰과 내 폰을 수시로 번갈아가며 봤던 나였다. 큰 고비를 넘긴 거였으면 좋겠다.



크리스마스 당일, 본래 오늘은 어머니와 아가씨 생일 기념으로 가족이 만나 저녁 한 끼 먹기로 했었다. 어머님이 이번엔 생일을 챙기지 말자며 우리 부부 내외도 집에서 쉬라 하시며 다음을 기약했다. 웃으며 생일 축하하면서 밥을 넘길 수 없었을 것이다.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려고 그랬는지 어제는 눈이 조금 왔었다. 눈이 온 탓에 하늘이 줄곧 흐려 우중충했는데 좋지 않은 소식을 들은 우리 가족 마음도 종일 흐렸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당일, 집 뒤 창문으로 소래산을 보니 하늘이 맑아 산기슭까지 다 보이는 형국이다. 날씨가 맑아 눈과 마음이 맑아지는 듯하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글을 쓰다가 거실로 나가봤더니 어제 만들지 못한 크리스마스트리를 남편이 완성하고 있었다.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지만 좀 더 지켜보자는 소식을 전해 들어 빛나는 크리스마스 전구에 남편의 바람을 담아 완성시켰으리라.


지금 할 수 있는 건 어머님으로부터 좋은 소식이 들려왔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담은 기도뿐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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