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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Dec 06. 2021

엄마는 김장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다음 해를 준비한다

우리 집 연례행사 김치 담그기

지난 금요일 저녁에 우리 가족은 엄마 집으로 모였다. 매년 이맘때 하는 김장 때문이다. 나와 결혼한 지 만 3년이 넘은 우리 남편도 이번이 세 번째 참석이다.

그동안 김장은 엄마와 나의 몫이었다. 우리 집 남자들은(아빠와 남동생) 김장하는 날만 되면 항상 바쁘다. 아빠와 동생은 일이 늦게 끝나는 날이 많다. 평일과 주말 구분도 없다. 주 5일 칼퇴를 했던 나만이 엄마를 돕기 바빴다. 그렇다고 아빠와 동생을 원망하는 건 아니다. 일이 바쁘니까 엄마도 크게 게의치 않는다. 예를 들면 '일찍 들어와달라', '일 하루는 쉬어서 같이 하자'라는 등 말이 전혀 없으시다. 나라면 했을 텐데... 아니면 딸만으로도 충분하리라는 생각도 드셨을 것이다. 결혼하고 나서는 우리 남편도 함께 거든다. 어느새 우리 부부는 부동의 참석자다. 하지만 이번에는 동생에게 강력하게 참석을 요구했다. 물류 회사에서 관리자로 일하는 동생은 이날만큼은 휴가를 냈다.


집합 시간은 오후 5시 30분이다. 엄마는 4시에 조퇴를 하고 자식들이 모이기 전에 밑 작업을 해 놓으셨다. 젓갈을 끓이고 김치 속에 들어갈 야채를 씻어 펼쳐 놓았다. 그 옆에는 고춧가루, 매실액, 간마늘, 생강, 설탕, 굵은 소금 등 각종 재료들도 깔아 놓으셨다. 오늘만큼은 회사에 연차를 내고 오전에는 쉬었으면 좋겠는데 내가 누굴 닮았으랴. 일 욕심도 많은 나의 엄마다.


남편과 나는 작년에 김장해서 받아온 김치통 두 개를 챙겨 집으로 향했다. 집에는 아직 두 통의 김장 김치가 남아있어 올해는 겉절이만 가져가기로 했다. 내가 올해는 김치를 안 가져 간다고 하자 엄마의 서운한 기색이 여력 했지만 그덕에 김장양을 평소보다 배추 한 박스를 줄이셨다고 한다. 보통 세 박스를 하는데 이번엔 두 박스만 한다. 집에 도착해서 줄어든 배추 양을 보고 이번에는 덜 힘들고 빨리 끝나겠구나라며 내심 좋아했다. 남편의 미소도 감춰지지 않았다. 작년에는 엄마, 나, 남편이랑 셋이서 김치를 담갔는데 올해는 동생이 추가됐다. 일꾼도 늘고 배추 양은 줄어들어 더욱 기쁘다.


두 남자는 무와 사과를 채칼로 썰고 나와 엄마는 김치 속에 들어갈 야채를 썰었다. 그러고 각자 썬 것을 큰 대야에 부었다. 다 썰고 나서 엄마의 지시에 따라 나는 각종 재료들을 부었고, 두 남자는 팔을 겉어 부쳐 고무장갑을 끼우고 열심히 버무렸다.

동생은 남편과 내가 연애했을 때부터 술도 함께 많이 마셔 꽤 친하다. 동생이 빠른 연생이라 남편과 동갑이기도 하다(남편은 나보다 한 살 연하, 동생은 나보다 두 살 아래다). 동생이 매형 대접을 잘하고 남편도 동생을 어릴 적 친구처럼 편하게 대한다. 그래서 그런지 둘이 속을 버무리는 속도와 궁합이 좋아 김장 속 야채도 조화롭게 잘 버무려지는 듯했다.

이제 배추에 속을 넣어야 한다. 엄마의 총괄 감독 아래 동생은 절인 배추의 물기를 짜서 남편과 나에게 속 넣을 배추의 물량을 공급했다. 배추의 하얀 속살에 빨간 옷을 연신 입혔다. 그러다 내 바지와 팔뚝도 같이 빨간색이 되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우리 집 김장은 우리 딸이 다하는 것 같네"라고 말하며 웃으셨다. 엄마가 웃으니 나도 웃고 남편도 웃고 동생도 웃었다.


역시 평소보다 한 박스 적게 김장을 했더니 금방 끝이 났다. 젊은 장정 세 명이 나서서 6시 즈음에 시작한 김장이 9시에 상에 둘러 앉아 보쌈을 먹을 수 있었다. 목삼겹 보쌈이 먹음직스럽게 김을 모락모락 피웠다. 보쌈만 먹으면 또 아쉬우니 제철인 방어 회도 함께였다. 남편이 가져온 레드와인의 뚜껑도 땄다. 그야말로 진수성찬이다.

엄마는 보쌈 한 점을 올려주며 사위에게 올려주며 고마움을 표했다. 이에 질세라 동생은 본인도 오늘 연차까지 내면서 도왔다고 어필한다. 그제야 엄마는 동생의 서운함을 알아채 "우리 아들도 최고지 고맙다"라고 말씀하신다.


김장 후 먹는 보쌈은 꿀맛이다


"뭐가 고마울까, 엄마도 참" 나도 한마디 거든다. 우리 가족이 먹을 김치인데 아들, 딸, 사위가 거드는 게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어릴 때 공부한다고 엄마 혼자 김장하게 했던 게 죄스러울 뿐이다. 좀 더 일찍부터 도와드렸다면 좋았을 텐데... 엄마의 고맙다는 표현이 그동안 혼자 김치를 담갔을 고생스러움이 느껴지는 것 같아 더욱 죄송해진다.


무엇보다도 남편에게도 고맙다. 시댁은 김치를 사드셔서 김장을 하지 않는다(어머니 감사합니다). 매년 김장하는 집안의 나와 결혼한 남편은 고무장갑을 끼고 속을 버무리고 속을 넣었다. 허리 펼 틈이 없었는데 힘든 내색, 싫은 내색 하나 없이 나보다도 더, 동생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엄마를 도왔다. 엄마가 고맙다는 말에 쑥스러운 듯 눈웃음과 함께 활짝 웃는다. 그런 우리 남편이 잘생겨 보인다. 나에게는 이 잘생김이 콩깍지가 아니라 평생 벗겨지지 않은 쇠깍지이다.



12월 김장으로 올해 1년도 다 갔구나 싶다. 지나간 1년의 아쉬움도 잠시,

엄마는 김장으로 우리 가족이 내년에 먹을 김치를 만들었다.

나는 내년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나..

무엇을 계획할지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 두루뭉술 무엇을 해야지 정도다.

작년에 남은 김장 김치가 있어 올해 김장양을 줄인 것처럼 올해 무엇을 했는지, 성과는 무엇인지 정리할 것이다.

잘 담근 김치가 내년에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정성스레 준비한 것처럼 나도 내년을 잘 계획해야지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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