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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Dec 29. 2021

장례식에 다녀왔습니다

어제 점심 즈음에 어머니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지난 일주일 동안 중환자실에 있던 남편의 사촌 누님이 운명했다는 소식이다. 잠깐 좋아졌다고 해서 위기를 넘긴 것 같아 약을 투여하며 지켜보기로 했었는데.. 약을 버텨내지 못해 상황이 더 안 좋아졌다는 것이다. 의사도 포기할 수밖에 없어 인공호흡기로 버티는 누님에게 좀 전에 마지막 인사를 했다고 하셨다. 어머니와 아가씨는 그 길로 짐을 챙겨 장례식장으로 가셨고 우리 부부는 저녁이 되어서야 아버님을 모시고 출발했다.


고요한 호실로 들어서자 눈이 팅팅 부은 아가씨와 어머니께서 맞이해 주셨다. 미리 와 계신 외가 친척 분들과 정신없이 인사를 나누고 고인을 만나러 갔다. 누님의 남편과 남동생이 상주석에 서 있었고 슬픔이 가득 찬 눈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리고 마주한 영정사진. 밝은 에너지가 느껴지는 사진이라 지금의 상황과 너무 대조되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남편과 함께 국화꽃 한 송이를 들어 고인에게 예의를 갖추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뒤에 계셨던 사촌 누님의 부모, 즉 외삼촌과 숙모님이 우리 부부에게 다가와 외삼촌은 남편의 손을, 숙모님은 나의 손을 잡으셨다. 눈물이 더욱 쏟아져 나왔다. 자식을 잃은 슬픔이 어떤지 감히 가늠할 수는 없지만 무척이나 슬프고 가슴 쓰리다는 것을 잡은 손에서 느껴졌다.

"얼마나.. 슬프... 시겠어요" 흐느끼며 말을 건넸다.

숙모님도 눈물을 머금은 채 말씀하셨다.

"와줘서 고마워.. 그리고 수혈한다고 가장 먼저 달려가 줘서 애써준 것도, 건강 잘 챙기고.."



지난주에 누님이 뇌출혈로 피가 멈추지 않아 O형의 피가 부족하다는 소식으로 병의 소식을 알게 되었다. 마침, 내 피가 O형이라 아무에게나 줄 수는 있어도 아무한테나 받을 수 없는 피인 줄 알기에.. 바로 근처 헌혈센터로 연락하여 지정 수혈을 하러 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지정 수혈이 무엇인지 몰랐다. 피가 급한 환자 번호와 병원을 말하고 수혈하면 그 환자에게 지정되어 피가 전달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내 피는 수혈할 수가 없었다. 팔에 혈관이 두껍게 보여야 하는데 보이는 건 희미한 핏줄이라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수혈을 못 해 마음이 무거웠던 참에 숙모님께 고맙다는 말을 들으니 보이지 않는 내 혈관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다행히 피는 서른 개가 넘게 지정 수혈로 왔다고 한다. 누님이 그동안 잘 사셨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아무쪼록 남편의 가족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싶어 좋아했는데 그러질 못한 셈이다. 늘 데면데면했던 사촌 누님에게 실상은 마음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피를 통해 전하고 싶던 마음도 있었다.


1년 전에 본 모습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했다. 결혼하고 서너 번 본 게 다 일뿐인데 그 사이에 정이 꽤 들었는지, 아니면 마음이 간 것일지도 모르겠다. 누님은 성격도 좋고 미소가 예쁜 사람이었다. 애교도 많아 주위를 밝게 만드는 사람, 나와는 결이 다르다 생각하여 멀리서 인사만 했었다. 아무래도 시가여서 내가 더 조심스러워했다. 그래서 가까이 가질 못했다. 어차피 가족이니까 가족이라는 이름 하에 서서히 나이 들면 언젠가 친해질 거라는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이제 가족이 되어간다고 느끼는 찰나에, 이번 설에 만나면 좀 더 손 아랫사람으로서 용기를 내야지 했는데 일이 이렇게 돼버렸다.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채 누님도, 그 기회도 놓치고 말았다.


내내 무덤덤했던 남편은 영정사진 앞에서 맥을 못 추리며 꺼이꺼이 울었다. 눈물로 젖은 마스크를 보니 그 속은 더욱 눈물로 가득 찼을 것이다. 평소 나보다 눈물이 많아 이번 소식을 듣고 내심 걱정했었다. 막상 덤덤한 그를 보니 사촌 간에 정이 없었나 싶어 의아했는데 그동안은 실감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어릴 적 같이 놀던 누님이, 어릴 적 친구였던 그녀가 하늘나라로 갔으니 얼마나 슬플까 싶다. 나의 슬픔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이번에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내면서 죽은 사람도 죽은 사람이지만, 산 사람이 더 힘들 거란 생각이 들었다. 막상 내가 떠난다고 생각해 보니 아찔했다. 나는 그렇다 치고 사무치게 슬퍼할 가족들이 생각났다.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사람 일은 정말 모르는 것 같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더니 장례식장을 나오는 내내 인생의 최고의 가치는 역시 건강임을, 함께 건강하게 살아가는 가족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루하루 삶에 아쉬움이 없도록, 의미 있는 하루를 만들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도 더욱 든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금도 즐겁게 살고 있지만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 등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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