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인 Jan 10. 2022

남편과 나의 TV 궁합 점수는?

1화만 보기로 했는데 7화까지 봐 버렸네

점심을 먹고 나른해진 일요일 오후였다. 남편이 오랜만에 넷플릭스 드라마를 정주행 하잔다. 보고 싶은 드라마가 생겼는데 나와 같이 볼려고 주말을 기다렸다고 한다. 기다린 게 기특하여 대충 스토리를 들어봤다. 재밌을 것 같았다. 해야 할 일이 많아 잠시 고민하는 나에게 1화만 보자고 남편이 꼬드겼.

그의 꼬임에 넘어가 한참 넋 놓고 TV를 보다가 창밖을 보니 새까만 밤이 되어 버렸다. 아뿔싸, 7화까지 보고 말았네.


자동으로 넘어가는 ‘다음 화 이동’을 멈출 수 없게 한 그 드라마는 2020년에 나온 넷플릭스 오리지널 ‘나 홀로 그대’다. 제목으로 봐서는 누군가를 짝사랑하는 뉘앙스가 물씬 풍기지만, 전혀 아니다. AI 인공지능 홀로그램 남자와(잘생겼다) 사랑에 빠지는 여자(예쁘다)를 그렸다. 이후 인공지능의 얼굴을 한 진짜 남자와 여주가 사랑에 빠질 것 같은 이야기. 보면서 날밤을 새지 않아 뒷부분 내용은 모른다. 다행인건가?


넷플릭스 나 홀로 그대 - 사진 : 넷플릭스


남편을 만나기 전에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TV 프로를 정주행 했다. 우리 가족 중에서 프로그램 정주행은 나만 하는 취미다. 가족들과는 TV 궁합도 맞지 않아 혼자 방에서 노트북으로 침대에 엎드린 채 웃고 떠들고 눈물 콧물 다 빼면서 봤다. 가족들은 그런 나를 보며 시간 낭비라고 혀를 찼지만, 평소에 할 일을 하고 한 번에 몰아서 보는 게 내 성향이라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다음 회를 기다리는 설렘을 굉장히 지루해한다. 한 회씩 끊어 보지 않고 흐름을 이어서 봐야 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정주행을 하는 편이다. 기다리는 맛보다 원할 때 바로 보는 맛이 좋다. 남편과 연애를 시작한 뒤로는 내 방에서 하던 TV 정주행을 그의 자취방에서 즐겨했다.


남편의 자취방에서 그가 보글보글 끓인 김치찌개(그는 손맛이 좋다)를 안주 삼아 맑은 소리 소주잔을 부딪치며 그때그때 유행한 드라마, 예능,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모두 섭렵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나 때문에 집돌이로 변했다던데 내가 볼 땐 본인이 더 좋아했다. 나는 보통 놀 때는 신나게 밖에서 놀고 집에서 푹 쉬는 편이라 남편과 한번 밖에서 데이트를 하고 나면, 그다음은 서로의 자취방을 오락가락 푹 쉬는 데이트를 즐겼다. 집순이 콘셉트 데이트를 자주 하다 보니 우리의 데이트는 자연스레 TV와 함께였다.


남편과 만난 뒤로 내가 TV를 누군가와 이렇게 재밌게 볼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우리는 TV를 그냥 보지 않기 때문이다. 둘 다 사람과 심리에 관심이 많아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의 심리 분석을, 리얼리티에서는 일반인의 표정과 행동을 보고 심리 분석을 한다. 또한 스토리의 앞날을 예측하면서 보는 걸 좋아하기에 어느새 혼자 보면 재미가 없다. 보면서 이야기 들어줄 사람이 필요해서 서로가 옆에 있어야 한다. 게다가 감수성이 풍부한 남편은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기 때문에 내가 옆에서 휴지로 닦아줘야 한다. 어쨌든 tv 궁합이 잘 맞다. 왜 그런 사람 있지 않나? TV 볼 때 말 못 하게 하는 사람 말이다. 그런 사람이 우리 부부와 TV를 본다면 우리가 말이 너무 많아 방이 아닌 밖으로 뛰쳐 나가버릴 것이다.


우리는 TV를 보면서 이야기가 길어지면 보던 프로를 중단하고 논제에 푹 빠져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제시한다. 중지 버튼을 눌렀다는 건 단순히 TV 내용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아마 우리에게 해당되는 이야기 때문에 계속 토론한 거일 것이다. 이야기하다 정지 버튼을 자주 눌러 앞에 스토리가 기억이 나지 않아 다시 처음부터 돌려 본 경우도 많다. 우리가 TV를 라이브로 보지 않고 정주행 할 수밖에 없는 이유기도 하다.


좁은 자취방에서 서로의 어깨를 기대어 TV 데이트를 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거실 소파에 함께 옆으로 누운 채 서로의 다리를 포개어 키득키득 수다 떨며 보는 게 삶의 낙이 되었다. 솔직히 같이 TV 보려고 결혼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월만 흘렀지, 그때 즐겼던 데이트와 지금과 변함이 없어 그와 나의 사랑이 더 깊어진 것 같아 마음이 행복한 주말 오후였다.


나중에 더 나이 먹고 TV 프로그램 가지고 싸우지나 않으면 다행이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남편의 취기를 사랑하지 못하는 아내의 죄책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