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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Jan 13. 2022

절친과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너에게 먼저 연락하는 게 이리 두려울 줄이야

어제 내가 좋아하는 김애리 작가님 책 <열심히 사는 게 뭐가 어때서>를 읽었다. 책에서 작가는 매일 아침 외우는 세 가지 주문이 있다고 한다.


하나, 가장 두려운 일을 하라.

둘, 가장 귀찮은 일을 하라.

셋, 가장 행복한 일을 하라.


오늘은 이 규칙에서 내게 와닿는 부분, 가장 두려운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나에게 두려운 일은 살이 쪄서 거울 보는 일도 아니고, 술을 좋아하는 남편의 주사를 받아주는 것도 아니다.

바로 친한 대학 동기에게 연락하는 일이다.


그 친구와는 대학교 OT에서 만나자마자 친해졌다. 재수하고 입학한 대학에서 동갑내기 친구를 만난다는 건 재수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절친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 친구가 대학을 한 학기만 다니고 수능을 다시 본다고 자퇴를 해도 우리의 우정은 이어졌다.

피가 끓는 20대 초반, 우리는 만나면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셨다. 늘 꿈과 목표에 대해 이야기하며 서로를 띄워주고 격려를 안주 삼는 게 즐거웠다. 당장 원하는 위치에 있진 않더라도 언젠가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하자며 막걸리 잔을 수없이 부딪쳤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삐걱거리더니 결혼하고 나서는 더욱 멀어져 버렸다.


나름 이유를 생각해 봤다. 점점 사는 게 바빠져서 만나는 횟수가 줄긴 했다. 횟수가 줄었다는 이유로 마음의 짐을 내려놓으려고 했는데 횟수가 줄은 건 문제가 아니지 싶다. 쿵짝이 잘 맞았던 마음이 점점 달라진 느낌이 들었다. 20대 후반 즈음부터 만날 때 술잔만 부딪치는 게 아니라 각자의 가치관도 부딪쳤다. 만날수록 잘 맞지 않는 무언가 때문에 어느새 만나는 게 부담이 생겼다.

30대가 되고 코로나가 터졌다. 급격하게 멀어진 시점이 코로나 전이었는데, 코로나 이후로 거리 두기 때문에 만나질 못했다. 우리는 코로나를 핑계로 마음의 거리 두기를 했다. 약속을 잡으려고 연락을 하면 어느새 다른 이야기. 친구는 만날 의지가 없어 보였다. 그렇게 서운함이 쌓여갔다.


작년 10월, 그 친구의 생일이 있었다. 생일을 매년 서로 챙기면서 얼굴을 보지 못하다니. 나도 그동안 무심한 것 같아 축하 메시지와 선물을 보냈다. 이번에는 꼭 보자고 약속을 잡으려 했는데 2차 백신을 맞고 만나잔다. 힘은 좀 빠지지만 알겠다고 했다. 그럼 11월쯤 보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연락이 없었다. 백신 맞고 괜찮아지면 그 친구가 연락하겠지 싶어 기다렸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라오는 그녀의 다른 친구와의 일상을 봤다. 내 마음의 벽돌 하나가 더 올라갔다. 이제는 해가 바뀌었다.


바뀐 해에 새해 인사를 하려고 다시 용기를 냈다. 언제 보냐고 또 운을 뗐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방역 패스와 9시 셧다운 정책에 만나기 힘들 줄은 알지만, 친구의 “언젠가 보자꾸나”라는 말이 섭섭하게 들려왔다. 알 수 없는 기약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솔직히 만나려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누구 하나 적극적인 힘을 발휘해야지 만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나와 밀당을 하는 건지 속마음을 헤아리기 힘들다. 나도 그 정도의 마음은 아닌 건지 싶어 지난 젊었을 때의 그 친구와의 추억이 덧없다고 느껴진다.


톡 까놓고 얘기하고 싶다. 어쩌다 이렇게 멀어졌는지 따지는 이야기가 아닌, 그때 그 시절 우리가 나눈 미래를 지금 얼마나 일궈 왔는지, 이제는 점검할 때가 되었다고 말이다. 덧붙여 지금 하는 일,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이야기하면 금상첨화겠지.


그 친구에게 다시 연락해서 만날 날짜, 시간, 장소를 정할까 고민 중이다.

이번 연락으로 내가 용기 내는 게 마지막일까 봐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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