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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Jan 15. 2022

엄마도 엄마가 그립습니다

엄마도 엄마가 있었는 걸요

아침부터 엄마와 동생과 번갈아 통화하느라 바빴다. 이번 설 연휴에 모처럼 가족끼리 전라북도 군산 외할머니 산소에 다녀오기로 했다. 연휴가 길어 정확히 며칠에 출발할 건지, 숙소는 어디가 좋을지에 대해 의견을 조율하느라 오랜만에 핸드폰이 열 일을 한다.


나에게는 할머니, 할아버지 추억이 거의 없다. 친할아버지와 친할머니는 아빠 어릴 적에 돌아가셨다 들었다. 외할아버지는 엄마가 20대 초반에 돌아가셨고, 외할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돌아가셨다. 어릴 적에 외할머니가 우리 집에서 꽤 살았다고 하는데 너무 어릴 적이라 그런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어렴풋하게나마 할머니의 잔상이 남아있고, 특유의 할머니 냄새도 기억이 나는 듯싶다. 예뻐해 주던 느낌도 남아있다. 유감스럽게도 명확히 기억하는 건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엄마가 아랫집 또래 친구 집에 나와 동생을 맡겨두고 상을 치르러 가셔서, 며칠 동안 신나게 논 기억이 전부이다. 장례식도 참석하지 않아 할머니의 죽음이 죽음으로 다가오지 않을 나이였다.


가끔 엄마는 엄마의 엄마가 보고 싶다고 말씀하시면서 산소에 같이 가자고 이야기를 하신다. 늘 하는 얘기라 나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냥 언젠가 시간 내서 가자고 말만 할 뿐,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았다. 산소가 가깝지 않은 거리에 있어 큰마음을 먹고 따로 시간도 만들어야지만이 갈 수 있기에 엄마도 더 이상은 깊이 말씀하시지 않았다.


이번에 동생 생일 겸 새해를 기념하여 1월 1일에 우리 집으로 가족들이 모였다. 다가오는 설에 아빠는 친할머니 산소 벌초 일정 이야기를 하셨다. 그 얘기에 엄마도 외할머니 산소를 가족끼리 가보고 싶다고 운을 떼셨다. 나도 시집갔으니 사위도 인사드릴 겸 언젠가 한 번은 가자고 하는 것이었다. “언젠가 가지 뭐”라고 늘 그랬듯이 대답만 했고 이렇게 또 지나가나 싶었다.


그저께 남편과 소주 한 잔을 하는데, 엄마가 할머니 산소에 가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던 게 돌연 떠올랐다.

“한번 가볼까?” 남편에게 넌지시 말을 꺼냈다. 가뜩이나 성인이 되고 각자 먹고살기가 바빠 가족 여행 한번 제대로 가보지 못한 게 줄곧 마음에 걸렸던 참이었다. 이번 할머니 산소를 이유로 가족끼리 1박 2일 여행이라도 다녀오면 좋을 것 같았다. 남편이 긍정적인 반응이라 이참에 고삐를 더 당겨보자 싶었다.

“그럼 언제가 좋을까?” 남편에게 물었다.

“이왕 가는 거, 의미 있게 설 연휴 어때?”라고 그가 말하는 것이었다. 순간 ‘내가 정말 남자 보는 눈이 있구나, 역시 내 남자다’ 생각하면서 감동을 찐하게 먹었다. 본인도 엄마가 할머니 산소 이야기를 꺼냈을 때 정말 한 번 모시고 가야겠다 싶었단다. 내 남자 역시 멋지다.

나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할머니 산소였다. 멀고 바쁘다는 핑계로 엄마에게 가자고 적극적이지 않았다. 이번 설에 가자고 하는 그가 예뻐 보였다. 나보다 실행력이 갑이다.



내친김에 이 소식을 엄마에게 바로 전했다. 뛸 듯이 기뻐한다는 표현이 이런 건가 싶을 정도로 기뻐하셨다. 그동안 외가 형제 모임에서만 갔었다고 한다. 그마저도 코로나라 형제끼리 만나지 못해서 몇 년 동안 못 가셨다. 새 식구인 사위와, 돌아가신 뒤로 한 번도 찾아뵙지 못한 아들딸이 동행한다고 하니 외할머니도 좋아하실 거라고 흐뭇해하셨다. 딸이 된 입장에서 엄마의 엄마를 그리워했을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가려면 얼마든지 갈 수 있었는데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내가, 첫째 딸 역할을 하지 못한 것 같아 죄송했다. 이제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이번 설에는 평소보다 더욱 따뜻한 설이 될 것 같다.

엄마와 오랜만에 나란히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울 것도 생각하니 가슴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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