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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Jan 16. 2022

계양산에 다녀왔습니다

부부 등산 에세이

오늘은 우리 부부가 평소와는 다른 일상을 보냈다. 보통 주말에는 거실 소파에 드러누워 이불을 폭 덮고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보곤 하는데, 오늘은 좀 다르게 보내기로 했다. 진짜 진짜 오랜만에 등산을 하기로 한 것! 그나마 우리가 즐겨하는 액티비티는 등산이었는데 날씨도 춥고 몸도 무거워져 한동안 산에 가질 못했다. 작년 가을에 등산을 한 뒤로 꼬박 4개월 만이다.


나는 등산을 좋아한다. 막상 올라갈 때는 속으로 ‘미쳤다, 여길 어떻게 올라가나’ 온갖 불평불만을 내뿜으면서 올라가다 보면 어느새 정상에 도달해있는 쾌감을 즐긴다. 집 앞에 소래산이 있어 왕복 한 시간 삼십여 분 코스로 혼자 곧잘 다녀오곤 했다. 높이도 다른 악산에 비하면 굉장히 낮은 편이라(299m) 등산 초보자인 내가 산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남편도 본인 말로는 어릴 적에 날다람쥐처럼 산을 탔다는데 내가 보기엔 날아다니면서 탈 정도는 아니고 체력이 좋아서 나보다는 확실히 잘 타는 편이다.


이번에는 소래산(시흥시) 말고 인천에 있는 계양산으로 정했다. 계양산의 높이는 394m로 평소 가는 소래산보다 약간 높은 산세라 비슷하겠지 하며 남편과 고른 산이다. 하지만 우리 부부의 예상을 완전히 비껴갔다.



본래 산 내음도 맡고 경치도 즐기면서 산에 오르는데 오늘은 그럴 정신이 평소보다 덜했다. 일단 등산로 입구부터 높은 돌계단을 마주했다. ‘워밍업이 너무 센데?’ 속으로 말하면서 한 돌, 한 돌씩 올라갔다. 남편과 나는 돌계단을 겨우 다 오르고 나서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았다. 우리는 한 마디씩 건넸다.


“자기야 나 벌써부터 힘들어”

“어, 나도 마찬가지야 내려갈까?”


이 두 마디에 서로가 빵 터졌다. 하지만 이 웃음이 오래가지 않았다. 꽤 오른 돌계단 위로는 넓은 계양산성이 펼쳐졌다. 계양산성을 느끼는 것도 잠시, 산성을 끼고 왼편을 보니 누가 봐도 가파른 경사가 보였다. 이제 산의 오르막이 시작되는 것이다.


경사로를 한참을 오르고 나서는 나무 계단이 나오고 나무 계단이 끝난 뒤쯤 내려가는 구간이 있었다. 남편과 나는 또 서로를 쳐다보며 한 마디씩 건넸다.


“아니 한참을 올라왔는데 왜 또 내려가야 하는 거야?”

“이왕 내려가는 거 온 길로 내려갈까?”


또 서로가 빵 터졌지만 바로 웃음기가 사라졌다. 내려간 만큼 정상에 오르려면 다시 오르막을 마주해야만 했다. 내려갔다 다시 오르니 힘이 들었다. 남편의 얼굴을 보니 마스크 사이로 땀이 줄줄 흘러나왔고 얼굴은 벌게져 있었다. 요새 운동 안 하고 살이 많이 오르더니 체력이 많이 떨어졌구나, 안쓰럽게 그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오르는 계단이 나무 계단에서 파란색 미끄럼 방지 고무판이 깔린 계단으로 바뀌었다. 계단 한 칸 한 칸의 높이가 이전보다 높아서 허벅지에 자극이 오기 시작했다. 들숨을 방해하는 마스크를 던져 버리고 싶은 충동이 생길 때쯤 중간 쉼터에서 쉬어 가기로 했다. 삼삼오오 앉아 있는 사람들을 피해 구석진 나무 밑에 엉덩이 댈 곳을 찾아 대충 앉았다. 남편은 앉을 곳을 찾는 것도 힘든 나머지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땀인지 입김으로 맺힌 물방울인지 모르는 젖은 마스크를 벗고 등산 초입에서 산 500ml 생수 뚜껑을 열었다. 남편이 먼저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분명 본인은 등산할 때 아무것도 마시지 않겠다고 생수도 사지 않으려 했던 그였다. 물을 사네 마네 별것도 아닌 걸로 실랑이하다 결국엔 물 한 병만 샀다. 내가 남편을 째려보자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라며 멋쩍게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아침을 일찍 먹고 1시 정도부터 올랐던 산이라 허기를 느껴 초코 과자를 뜯었다. 과자를 잘 먹지 않는 나인데 눈 깜짝할 사이에 다 먹고 없어졌다. 역시 힘들면 뭐든 다 맛있다.


쉴 만큼 쉰 것 같아 눌러앉은 엉덩이를 일으켜 다시 계단 지옥으로 들어갔다. 정말 말 그대로 계단 지옥이었다. 뭐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산 높이에 비해 계단 높이도 높고, 경사가 급했다. 아마도 경사가 급해서 미끄럼 방지 고무판까지 깔아 만든 계단 같았다. 만일 계단이 없었다면 조금만 과장을 보태서 암벽 등반을 했을 것이다.



거의 정상에 다 온 시점에 남편이 다시 주저앉았다. 계단에 주저앉으면 통로에 방해가 되니 옆으로 빠져서 쉬기로 했다. 집에서 보온병에 담아온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종이컵에 따랐다. 뽀얀 김을 뿜으며 나오는 커피가 우리 몸에서 나오는 열과 비슷해 보였다. 몸이 힘드니 정신이라도 차리자 싶어 조금씩 마시며 기운을 회복했다. 더는 못 가겠다던 남편이 몸을 일으켰다.


오른 지 얼마 안 돼 정상에 도달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커피는 참을 걸 그랬나 약간은 아쉬웠지만 정상에서 느끼는 상쾌한 기분이 아쉬운 마음을 곧바로 덮어주었다. 오랜만에 타는 산이라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그런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뿌듯함을 느꼈다. 춥다고 집에만 있을 뻔했는데 산을 타서 더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정상 기념사진을 찍고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와, 우리 못 올라오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와서 너무 좋다

“그렇지? 성취감이 장난 아니다. 정말 좋다”


더는 못 가겠다고 주저앉았던 게 불과 몇 분 전이었는데, 정상을 찍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로 말 바꾸는 우리다. 우리는 부부가 맞다.


특별한 재능이 없어도 노력과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정상이라는 결괏값을 얻는 이 성취감이 나는 너무 좋다. 어쩌면 인생은 노력, 꾸준함, 끈기가 특별한 재능으로 인정되어 큰 성취감을 얻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며 하산을 했다.


인천 계양산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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