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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Jan 23. 2022

가족 같은 사이라 하더니 정말 가족이 돼버렸다


나에겐 분기마다 한 번씩 만나는 친한 모임이 있다. 코로나 전에는 못해도 두 달에 한 번은 꼭 만나던 모임이다. 이 모임은 대학교 같은 과에서 만나서 그 인연이 10년 넘게 이어졌다. 같은 과라고 해서 동기인가? 그건 아니다. 내가 3학년 1학기 때 공과에서 상경계열로 전과를 해서 만난 사람들이다. 편입한 오빠 한 명, 다른 과에서 전과한 두 명의 여동생, 나와 함께 전과한 동기, 여기에 전 회사에서 만나 친해진 과장님 한 명까지 총 여섯 명이다. 뜬금없이 왜 전 회사 과장님은 이 모임에 있을까 싶을 것이다. 회사에서 일하다 친해진 그가 왠지 내 친구들과 결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에게 이 모임에 대해 여러 번 이야기했고, 마침 주변에 형들밖에 없는 그는 좋은 동생들이 생기면 좋겠다고 했다. 정식으로 친구들에게 동의를 구하여 그를 한 번 합류를 시켰다. 한 번뿐인데 그 뒤로 꼬박꼬박 우리 모임에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 이 오빠가 모임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될 만큼 서로가 엄청 친해졌다. 나이가 가장 많은 그를 우리는 잘 따랐다. 내 예상이 적중한 것이다.

그중에서 바로 전 회사 동료였던 오빠가 어제 집들이를 하여 우리를 초대했다. 거리 두기 및 시간제한으로 송년회도 하지 못했는데 신년회도 할 겸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집들이의 꽃인 음식들이 하나씩 상에 올랐다. 집주인이 요리를 꽤 잘했다. 대충 하는 것 같은데 뚝딱뚝딱 만들어 내준다. 그는 음식이 조금이라도 마를 것 같으면 자리에 일어나 냉장고를 열고 프라이팬을 잡았다. 다들 처음 보는 그의 모습에 넋을 잃고 나온 음식에 대해 칭찬을 했다. 문득 재작년에 내가 집들이했을 당시가 생각났다. 아 그때도 이 친구들과 함께였지. 요리를 못하는 나는 배달 음식으로 상을 가득 채웠다. 굳이 성별을 논하고 싶진 않지만, 여자인 나보다 손이 야무진 그의 음식이 모두 맛있어 배달 음식으로 채운 나의 상차림보다 그의 정성이 더욱 느껴졌다.


다른 모임도 있지만 유독 이 모임은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왁자지껄 웃으며 떠드는 데 정말 재밌다. 딱히 재밌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재밌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 말만 하면 뭐가 그리 재밌다고 배를 잡고 물개 박수를 치며 빵빵 웃음이 터진다. 성격도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도 모두 다른 제각각의 사람들인데 만나면 그저 좋다. 다들 아쉬워서 집에를 못 간다.



우리 모임이 만나면 왜 이렇게까지 즐겁고 행복한지에 대해 생각해 봤다. 20대 초반에는 함께 수업을 들으며 술 한 번도 제대로 먹지 않았다. 친해진 건 불과 5년 정도 되었으려나. 개별로 연락을 취하며 근황만 전하던 사이였다. 취업한다, 회사에 적응한답시고 만날 생각도 못 했다. 아니 여유가 없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뭐 잘들 살고 있겠지였다. 그러다 2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다 같이 한번 만나고 싶었다. 우리가 모두 같은 전공이기도 하니 만나면 할 이야기가 많고 재밌을 것 같았다. 직무도 모두 같아서 서로 정보도 나눌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 자리를 만들었다. 


처음 어색해서 술잔만 부딪쳤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보고 싶어서 번개도 자주 할 만큼 친해졌다. 점차 만나다 보니 친목은 기본이고 힘든 회사 생활도 공유하여 서로에게 큰 힘이 돼준다. 내가 이들을 모으긴 했어도 이제는 각자가 먼저 연락하고 만나고 싶다고 한다. 20대 중반에 만나서 지금은 모두 30대가 되었다.


만나면 한 오빠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술 한 번 먹거나 밥 한 번 먹으면 무조건 가족이라고 말이다. 피를 나누지 않아도 같은 상에 앉아 밥을 먹으면 가족이란다. 그는 우리가 함께 먹은 밥이며 술이 무궁무진해 가족 같은 사이가 아니라 무조건 가족이란다. 하도 들어서 이제는 우리가 가족이란 그의 말에 세뇌가 돼버렸는지도 모른다. 안 보면 보고 싶고, 어떻게 사는지 대충 알아도 서로를 궁금해한다. 기쁜 일이 있으면 누구보다 나서서 축하해 주고, 서로를 무조건적으로 응원을 하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회사에서 누군가 힘든 일을 겪어 이야기하면 너 나 할 것 없이 쌍욕을 해주며 힘을 북돋아준다. 

어제 함께 있으면서 이토록 서로가 무조건적으로 지지를 할 수 있는 사이가 어디에 있을까 싶다. 

아, 정말 우리가 가족이구나 생각이 든다. 세상에 가족은 무조건적인 내 편이니까 말이다.


5시에 만난 우리는 자정이 넘어가는데도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 가정이 있는 나도 오늘만큼은 남편에게 허락을 받았다. 남편도 우리 모임이 어떤 모임인 줄을 알기에 기분 좋게 허락을 했다.

두시 반이 되었을 때쯤 집주인이 그 자리에서 스르르 곯아떨어졌다. 자리에 남은 나포함 세 명은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두 명은 우리보다 조금 일찍 집에 갔다) 누워 있는 집주인의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다 같이 인증숏을 찍고 아쉬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집주인에게 미안한 집들이의 흔적..ㅎㅎ


새벽 기운이 찬데 마음만큼은 따듯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소중한 인연이 내게 있어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부끄럽게도 아직 사랑한다는 말은 해보지 않았다. 다음에 만나면 이날 느꼈던 마음을 함께 나눠봐야겠다.


설 연휴 일주일 전에 만난 우리는 조건 없이 사랑을 퍼주는 진정한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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