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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Jan 27. 2022

모닝 페이지를 처음 경험했습니다

내 안에 창조성을 일깨우기 위한 모닝 루틴

5시 30분에 알람을 맞춰놨는데 옆에서 자는 남편의 인기척에 고맙게도(?) 잠이 깼다. 시계를 보니 4시 32분. 1시간 더 자려고 눈을 감았는데 왠지 지금 자면 라클 모닝 기상 시간을 지키지 못할 것 같다. 꼭 다시 잠들면 알람을 못 듣더라고. 눈은 피곤했는데 머리는 점점 맑아져 조용히 이불 밖으로 나왔다.


이틀 전부터 책 <아티스트 웨이>를 읽고 있다. 매일 아침 창조성을 끌어 내주는 모닝 페이지에 관한 부분을 읽고 나도 실천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뭐든 남들이 좋다고 하는 건 따라 해 보는 성격이라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잠들기 전에 내일 일어나자마자 실행하겠다고 다짐을 해서 일찍 눈이 떠졌는지도 모른다.

컴퓨터 방으로 들어와 좋아하는 secret garden 방석을 깔고 좌식 책상 앞에 앉았다. 침대에 앉아 책을 읽으려고 산 책상인데 요새는 여기저기 책상을 펴고 바닥에 앉는다. 의자에 오래 앉아 있으면 골반이 아파서 공부하거나 글 쓰는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바닥에 앉아서 뭐든 하려고 노력 중이다.


모닝 페이지에 적합한 노트가 무엇일까 책장을 훑었다. 지난해 강릉 여행 때 장보기 위해 들린 하나로 마트에서 산 노트가 눈에 들어왔다. ‘핑크퐁 아기 상어 종합장’이라고 적혀 있는 스케치북형 노트다. 초등학교 때 많이 썼던 추억이 떠올라 구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창조성을 끌어올리려면 이만한 노트가 또 없다며 만족스럽게 하얀 종잇장을 펼쳤다.



인간은 본래 창조성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한다. 다만 사회 규격에 맞게 살아가면서 어느새 그 창조성이 도태되어 애초부터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내 안에서 어딘가 있을 창조성을 밖으로 표출시키기 위해 모닝 페이지를 써야 한다고 <아티스트 웨이> 작가 줄리아 카메론은 말한다. 매일 일어나자마자 노트 세 쪽을 손이 가는 대로, 아무렇게나 작성하는 게 모닝 페이지다. 아직 책 초반부를 읽고 있는 터라 정확히 어떤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른다. 그저 창의성을 키우는 데 좋다고 하니까 따라 할 뿐이다. 그런데 낯설지 않았다. 이 비슷한 걸 예전에 해봤기 때문이다.


4년 전쯤 처음 참여한 글쓰기 모임에서 모임을 이끄는 작가님이 제안한 방법과 비슷했다. 작가님은 글쓰기 실력을 높이기 위해 매일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한글이나 워드 파일에 몇 분 동안 글을 쭉쭉 써보라고 하셨다. 글감은 따로 정하지 말고 그냥 아무렇게나 타이핑을 하라고 했다. 정확히 몇 분인지, 몇 페이지를 쓰라고 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실력을 높여준다기에 해 본 기억이 난다. 한 일주일 정도 해보고 그 뒤로한 적이 없지만 이때 했던 행위가 모닝 페이지였다는 생각이 든다.


막 써도 잉크가 아깝지 않고 스케치북과 케미가 좋을 것 같은 펜촉이 부드러운 펜 하나를 쥐었다. 오늘 날짜를 페이지 맨 위에 적는다. 그리고 말 그대로 아무렇게나 쭉쭉 쓰기 시작했다. 고요한 새벽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나만의 시간이었다. 종이와 펜, 나만 이렇게 이 세상에 존재하듯이 조용하게 써 내려갔다.

막상 쓸 말이 없을 때는 쓸 말이 없었다고 한 것 같기도 하다. 그때 그 순간 드는 생각을 적었으리라. 잠깐 멈출 때도 있었지만 이내 드는 생각을 그대로 종이에 옮겨 나갔다. 생각을 하고 글을 쓰는 건지, 글을 쓰는 게 생각이 되는 건지 어느새 분간이 안 갔다. 물론 생각을 바탕으로 손이 움직이는 거겠지만 내가 느끼기로는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의 수준이다. 그렇게 펜에만 집중하여 세 페이지를 작성했다.


첫 페이지를 썼을 때 언제 두 페이지를 쓸까 싶었는데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더니 여기저기 퍼져 나가 나머지 두 페이지도 금방 채웠다. 신기하게도 무슨 내용을 썼는지 잘 떠오르지 않았다. 꿈을 꾸고 나서 무슨 꿈을 꿨는지 기억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모닝 페이지를 쓰는 꿈을 꾼 것일까?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드는 생각을 바탕으로 꿈을 꾼다는데, 어쩌면 비슷한 양상일 수도 있겠다.


우리는 하고 싶은 말이나 내뱉고 싶은 생각이 있어도 사회에서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아 눈치만 보다가 결국 꺼내지 못한다. 그래서 창조성이 발달하지 못하고 억압받았을 거라 추측이 된다. 다행인 것은 생각은 말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고 자유롭게 할 수는 있다. 문제는 생각이 표출되지 못하므로 우리의 창의성은 점차 사라지는 것이다. 두 번, 세 번 가로막히면 생각도 ‘내가 환영받지 못하는구나’라며 새로운 생각으로 찾아오지 않는다. 모닝 페이지는 그동안 표출하지 못한 생각을 나만 볼 요량으로 종이 위에 꺼내 보이도록 한다.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낳아 억압받았던 창조성은 앞으로 영역을 더 넓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 모닝 페이지를 쓰면서 무언가 배설하는 느낌이 들었다. 배설이라는 표현이 더럽게 느껴질 수 있는데 무언가 쾌쾌 묵은 것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느낌이라 배설이라는 표현밖에 할 게 없다. 다 쓰고 나서는 명상한 것과 같은 느낌도 들었다. 원래 모닝 루틴으로 스트레칭과 명상을 하는데 앞으로 명상을 건너뛰어도 좋을 만큼 깊게 나 자신에게 빠져들었다. 쓰다 보면 점차 무의식 상태로 들어가 눈을 감고 명상하는 것과 비슷했다. 명상을 다 끝내고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도 모르는 것처럼, 모닝 페이지에 쓴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모닝 페이지를 처음 해본 사람치고는 말이 참 많다. 누가 보면 몇 개월 하고 이렇게 후기를 쓰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오늘 모닝 페이지로 썼던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느낌만이라도 기억하고 싶어 첫 수행을 기록해 본다.

작가가 모닝 페이지를 쓰고 나서 바로 읽지 말고 8주는 지나서 읽으라는데 그 이유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어서 남은 책을 읽고 모닝 페이지 수행의 의미를 깨닫고 싶다.


앞으로 내면의 창조성을 일깨우기 위해 나의 모닝 페이지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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