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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Feb 18. 2022

글쓰기를 칭찬합니다, 엑설런트!

초등학교 4학년 때 경험한 글쓰기 그룹 과외 이야기

“자 오늘은 OO 시를 읽어 보자”

선생님이 시를 낭독하신다. 그런 선생님의 목소리를 네 명의 초등학생이 가정집 테이블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귀 기울여 듣는다. 성악을 할 것 같은 맑은 목소리이다. 선생님 목소리에 실린 시를 조용히 감상한다. 낭독이 끝났다.

“그럼 이제 10분 동안 감상문을 써 볼까?”     


초등학교 4학년 때 나는 글쓰기 그룹 과외를 다녔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애들이 모여서 듣는 수업이었다. 가정집에서 진행해서 학원은 아니고 과외라고 불렀다. 또래 친구들이 태권도를 다니던 때였다. 지금처럼 어렸을 때 나는  몸 쓰는 것을 싫어하고 정적인 것을 좋아했다. 동생이 밖으로 뛰어나가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을 때, 나는 방 안에서 혼자 인형 놀이를 하거나 위인전을 읽었다.    

 

그런 나를 엄마는 아파트 단지 안에서 글짓기 그룹 과외에 나를 꽂아 넣었다. 엄마는 아파트 상가 문구점 아줌마와 친했는데, 그 아줌마의 동생이 동네 아이들 대상으로 글짓기 그룹 과외를 할 거라고 엄마에게 귀띔을 해 주었다. 당시 나는 피아노, 미술, 구몬 학습지까지 하는 게 많아 벅찼다. 그런데도 주 2회 수업하는 글쓰기 과외까지 엄마의 강요로 할 수밖에 없었다. 나의 의견은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도 받아들였다. 마침 피아노와 미술 학원이 지루하게  느껴질 무렵이었다. 글쓰기에 집중하다 보면 자연스레 피아노와 미술을 그만둘 찬스가 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장소는 문구점 아줌마 집이었다. 우리 집 바로 앞 동이라 5분도 안 걸어 그 집 거실 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다. 문구점 집 딸(언니), 아들(동생), 같은 동에 사는 동갑내기 친구와 나, 이렇게 네 명이서 멤버가 되었다.     


선생님은 사투리를 쓰셨다. 열 살인 내가 들어도 대구 지역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다. 선생님은 시를 읽는 것으로 수업을 시작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많은 시를 읽어주셨지만 기억에 남는 시가 단 한편도 없었다. 기억나는 건, 시를 낭독하는 선생님의 목소리와 이후 우리에게 10분의 시간을 주고 감상문을 쓰도록 시키는 장면이었다. 감상문을 쓰는 동안 선생님은 과일과 과자, 음료수를 꽃무늬가 그려진 쟁반에 내오셨다. 나는 시에 대해 쓸 말이 없었지만 다 쓰고 나면 과자를 먹을 수 있어 없는 말, 있는 말을 지어내어 빠르게 쓰려고 했던 게 기억이 난다.

감상문을 쓰고 나면 선생님이 원고지에 쓴 글을 맞춤법에 맞게 수정해 주었고, 시에 대한 의견도 물어보셨다. “이렇게 느꼈구나”하면서 공감도 해주셨던 것 같다. 그녀의 따뜻한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들리는 듯하다. 수정이 끝나면 당일 원고지에 쓸 글감을 주셨다. 그 중 기억나는 딱 한 개의 글감이 있다. 신기하게도 기억은 지금까지도 선명히 남아있다.      


선생님은 ‘칭찬’이라는 주제로 자유롭게 써보라고 하셨다. 분량은 원고지 매수로 8~10 매였다. ‘칭찬? 칭찬받은 걸 쓰면 되는 건가?’ 나는 생각해보았다. 처음엔 단순하게 생각하다가 왠지 그날만큼은 색다르게 쓰고 싶었다. 주제가 칭찬이니 그날 글에 대해 칭찬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한참을 생각하다 머릿속에 번뜻 떠오르는 게 있었다. 바로 <칭찬합시다>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MBC에서 일반 사람들이 나와 또 다른 일반 사람들을 칭찬하는 예능이었다. 칭찬이라는 주제로 보고 싶은 사람에게 과거에 느꼈던 고마운 마음을 표하기도 하고, 사회적으로 도움을 주신 분에게 TV를 통해 감사 인사를 전달하기도 했다. 부모님과 저녁상에 마주 앉아 매주 봤던 프로그램이었다. 어린 내가 봤을 때, 그 당시 IMF라고 떠들어 대는 불안한 사회 속에서 사람들의 온정이 빛나는 프로였다고 생각됐다. 솔직히 원고지에 정확하게 뭐라고 썼는지는 기억나지는 않지만, 힘든 생활속에서도 서로를 칭찬하고 배려하는 모습이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것 같다는 나의 느낌, 덧붙여 나도 앞으로 친구에게 칭찬을 많이 하고 칭찬받을 만한 행동을 하는 사회의 인재로 거듭나겠다는 정도의 내용을 썼던 것 같다.



그날 글 쓰는 내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글감을 오래 생각하느라 다른 친구들보다 늦게 연필을 잡았다. 연필을 잡고 나니 생각이 쓰는 속도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하도 속도를 내어 쓰다 보니 손과 손목이 아팠다.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이 들어 무척 흥분해 있었다. 혹시나 나의 좋은 소재를 옆에 앉은 동갑내기 친구가 볼까봐 왼손으로 가리며 쓰기도 했다. 가장 늦게 시작했지만 보란 듯이 제일 빨리 제출했다. ‘소재도 속도도 모든 게 완벽했어’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리곤 음료수 한 컵을 의기양양하게 마셨고 선생님의 평가를 기다렸다.

내 글을 찬찬히 읽은 선생님은 환하게 웃으며 “엑설런~트!”라고 외쳤다. 칭찬이라는 것을 일상에 국한하지 않고 현재 이슈가 되는 프로그램에 연동하여 사회적 시선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 마지막으로 본인의 다짐으로 잘 마무리했다며 엄지 척을 해주셨다. <칭찬합시다>를 제목으로 낸 나의 작품에 칭찬을 해주신 것이었다. 

    

책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에서 “글 속에 깊이 빠져들면 쓰는 사람과 글은 분리되지 않는다”라고 나탈리 골드버그는 말했다. 그녀가 말한 것처럼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그 시절의 나는 글 속에 깊이 빠져들어 내가 글인지 글이 나인지 모르는 경지를 처음으로 경험했던 것 같다.

20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이 날 일은 모든 게 기억난다. ‘슥슥’, ‘따다다딱’ 원고지에 연필로 글을 쓰면서 책상과 부딪치는 소리, 지우개로 지우다 구겨져버린 원고지를 다시 빳빳하게 펴는 모습, 마지막으로 글쓰기 선생님의 “엑설런트!”까지, 아직도 귀에 맴돌고 가슴이 설렌다. 그때 글을 써 내려간 강력한 느낌과 선생님께 들었던 칭찬은 지금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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