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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Jan 03. 2023

놓았던 펜을 다시 잡았다

퇴사 후 진로 고민 끝에 놓았던 펜

작년 이맘때쯤 나는 진로 고민에 머리를 싸맸다. 연애 상담 관련 회사에 입사도 지원해 놓은 상태였고 명리 공부에 대한 새로움, 글쓰기 욕망 이렇게 세 가지 갈래에서 어느 방향으로 갈지 고민이 깊었다. 이제 정하면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만큼 신중해야 했다.


나는 한동안 연애 실용서를 쓴 이후로 독자들을 위해서 또는 훗날 독자가 될 분들을 위해서 무료로 연애 상담을 진행했었다. (지금도 하고 있다) 상담은 메일을 통해 접수받았다. 상담 건수가 많지는 않아 무리는 전혀 없었지만 앞으로 관련 커리어를 계발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이 있었다. 난 의외로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고 나의 경험담을 통해 도움이 될만한 조언을 주는 일이 즐거웠다. 상담 후기를 들어보면 내담자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혹시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이 작은 재능을 좀 더 키워보기 위해 훗날 어떤 곳에 취업을 하면 좋을지 알아보다가 연애 상담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는데 덜컥 서류가 합격된 것이었다. 서류 질문 자체가 답변하기 어렵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내가 쓴 책이 경력 한 줄에 도움이 된 것 같았다. 코로나 상황이라 전화로 1차 면접이 진행되었는데 막상 면접을 보려고 하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의문이 들었다.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게 맞을까? 상담도 좋지만 이것을 하려고 그동안 직장을 여기저기 옮기고 결국 퇴사를 했던 걸까? 백수 된 지 1년이 넘었다고 무작정 뛰어드려는 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에 전화면접 일정을 잡지 않아 자동으로 탈락됐다.


사주 명리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이미 사주에듀라는 곳에서 온라인 강의를 들은 상태였고 좀 더 깊이 공부하고 싶은 욕심이 컸었다. 아는 것은 점점 많아지는데 어떻게 활용할지 몰랐다. 명리학을 연구하는 동양학과 대학원 입학도 알아봤는데 지금 내 수준에서 과연 논문을 쓰는 연구는 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 선뜻 지원서를 쓸 수 없었다. 그런데 마침 지금의 명리 스승님께서 대면 수업을 공지했고 난 주저 없이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찾아뵈었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욕망도 컸었다. 2021년도에 책을 출간하고 난 뒤 내 책을 내가 다시 읽는 게 힘들었다. 퇴고를 수십 번 했지만 글은 보면 볼수록, 쓰면 쓸수록 는다는 말이 정확했다. 썼던 원고의 수준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더 욕심이 생겼다. 다음 책은, 다음 글들은 더 좋았으면 한다고 말이다. 습작을 많이 하고 싶어 에세이 쓰는 법 강의를 들었다. 글이 좀 더 나아지는가 싶으면서 절대 짧은 시간에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글에 대한 욕심을 조금씩 내려놓게 되었다. 쓰면 쓸수록 나의 재능이 그렇게 크지 않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글로는 먹고살 수 없다는 걸 계속 부정해오다가 내 글의 실력을 알고 현실이 보였다.


그렇다면 내가 잘하는 게 뭘까.. 뭘까를 또 고민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상담하며 대화하는 걸 즐긴다는 점, 그리고 상담가로서 내가 재능이 조금 있다는 걸 받아들이면서 심리 상담이냐(연애와 같은) 사주 명리 상담이냐의 길이 나뉘었다. 앞으로 심리 상담 시장이 더 넓어지겠지만 명리 상담의 수요는 더욱 커질 것 같았다. 또한 나는 분석적 성향도 갖고 있어 사주팔자 여덟 글자 간명을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무언의 자신감도 있어 점차 내 진로의 방향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명리 공부에 집중한 나머지 자연스럽게 글쓰기에 소홀해졌다. 글쓰기 모임에도 여럿 소속해 있었는데 글을 매일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고 똑같은 일상인 것 같은 글이 싫어졌다. 콘셉트가 다른 원고 3개를 목차와 서문을 써놨는데도 진척이 없었다. 나는 쓰기에 열망을 잃어만 갔다. 더는 쓸 수 없겠단 생각까지 들었다.


펜을 놓은 지 몇 개월이 지났다. 작년 말부터 쓰기에 대한 갈망이 스멀스멀 생겼다. 주변 지인들이 다음 책은 언제 나오냐가 발판이 되었다. 묵혀두었던 원고를 보면서 1년 전 나는 이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구나를 돌아봤다. 아이디어도 추가되어 어느새 글을 수정해 가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새벽에 원고를 쓰며 직장 다닐 때도 생각났다. 일은 힘들었어도 원고 쓰는 그 시간만큼은 신바람이 났었다. 강제 미라클 모닝을 하면서 나는 아침형 인간이라는 걸 처음 깨닫게 된 것도 원고를 쓰면서 알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글에 대한 욕심이 너무 커서 펜을 못 잡은 것 같다.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은 일상의 소소한 글이 보잘것없다고 여기게 만들었다. 나의 매일이 하찮게 보여 더는 쓸 수 없었던 것이다. 이후 쓰고 싶은 날들이 있었음에도 한번 은 펜을 다시 잡기란 어려웠다. 그렇게 글들을 멀리했던 것 같다.


이제는 그 부담감을 내려놓으려 한다. 명리 술사와 학자가 되는 진로를 정했으니 글은 공부와 일상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나의 좋은 취미가 될 것 같다. 누가 그러던데 취미가 일이 되면 절대 행복하지만은 않다고. 나는 이 글쓰기가 평생의 행복감을 내게 줄 수 있도록 일로 만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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