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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Jan 16. 2023

쓰는 사람으로

나는 글을 쓰고 다른 사람이 되었다.


직장을 그만둔 지 2년이 넘었다. 2021년 1월 11일.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그날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원고를 투고하자마자 출판 계약이 바로 성사되는 날이었다. 머릿속에는 '퇴사 날'보다 '계약 날'로 각인되어 있다. 그전부터 글쓰기를 해온 건 아니었다. 직장 다니면서 삶이 무료하다 여겨 글쓰기 모임을 알아보고 이후 책 쓰기 모임을 알게 되었다. 그곳에서 원고 기획부터 출판까지 전 과정을 배웠다. 그렇게 오래 살진 않았지만 원고를 쓰면서 30여 년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고 몰랐던 나의 모습을 솔직하게 마주하였다.


출간한 첫 책은 <내 남자 찾는 36가지 기술>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연애 실용서'에 가까운 책이다. 책 쓰기 모임 첫 시간에 살면서 내가 가장 잘했던 것을 떠올려 보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게 떠오르지 않으면 뭘 하면 행복했는지를 말해보라 했다. 주저 없이 나는 지금 붙어살고 있는 남편을 떠올렸고 그와의 장기 연애 속에서 수많은 다툼과 화해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순식간에 이전 과거 연애 전부가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모두 앞에서 난 말하였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은 '연애'라고 말이다. 당시 결혼 2년 차 유부녀가 할 말은 아니었다. 내가 이 말을 하자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진 게 육안으로 보였다. 그곳에는 비혼주의자 여성도 있었고 일흔에 가까운 어르신 두 분도 계셨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흥미롭게 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모임 대표인 출판사 소장님은 재밌다는 듯이 나의 이야기를 더 끌어내었다. 당시에 말한 내용 그대로 책의 서문과 목차가 되었다.


출판한 지 2년이 다 되어간다. 책은 많이 팔리진 않았다. 책을 쓴다고 하루아침에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고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나는 말할 수 있다. 하루하루 삶의 형태가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나'는 달라졌다고 말이다. 원고를 쓰면서 몰랐던 '글쓰기'가 좋아졌고 하고 싶고, 잘하고 싶은 일 중 하나가 글쓰기라는 걸 찾은 셈이었다.


그러나 하고 싶은 걸 찾았으니 이제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난 뒤로는 글이 써지지 않았다. 잘 써야겠다는 부담감에 어깨가 무거웠고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글 쓰려는 마음이 강하게 짓눌러졌다. 스트레스에 못 이겨 한동안 쓰지 않았다. 가만히 있는 성격은 못 되어 다른 공부에 집중하였고 글쓰기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대학원 진학을 했다.


머릿속으로는 계속 생각했다. '쓰고 싶다. 쓰고 싶다. 쓰고 싶다.' 하지만 한번 놓은 키보드에 다시 손을 올리기 어려웠다. 줄 노트 위에서 펜을 잡을 때면 괜히 심장이 빨리 뛰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것이었다. 나는 왜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것인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다. 원고를 쓸 땐 솔직한 마음을 다 쏟아내며 쓰는 게 행복했다. 내 안에서 신비로움이 나가는 느낌이랄까. 그러다 뚜렷한 목표나 글감이 없이 글을 쓰려고 하니 군더더기 없는 일상을 드러내는 게 왠지 모르게 부담이 컸다. 점차 일상 글이 매력 없어 보였다. 다른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 글에서 감동을 받고 공감하면서 왜 나의 일상을 내비치지 못하는 것일까. 혹시 이렇게 사는 내가 만족스럽지 않았던 걸까? 솔직하지 못할 바에 쓰지 않는 게 나아서였을까. 지금 말하는 모든 것들이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던 이유였다.


나도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평소 성격이 사람 대할 때  솔직한 편이다. 마음에 없는 말은 죽어도 못한다. 기분 나쁘게 들릴까 봐 장난을 섞어서 말할 때에도 진심이 80퍼센트는 담겨있다. 가족들과 나와 가까운 지인들은 이런 나의 성격을 잘 알고 있지만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내 글을 본다고 하니 불안감이 있었다. 글은 마음과 같다 보기에 이런 나를 보여주는 게 쉽지 않았다. 세상이 두려웠다. 혹시 나의 솔직함으로 뭇매를 맞을까 등의 생각으로 사람들의 눈치만을 보았던 것이다.


글을 안 쓴 지 몇 개월 동안 내린 결론은 '나'를 위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다른 사람들과 세상에 기준을 두는 게 아닌 나를 위한 글을 쓰자고 말이다. 또한 내 글로 인해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다. 짓눌린 어깨가 가벼워졌다.


글을 쓰면서는 삶을 돌아보았고 글을 쓰지 않는 기간에도 '글'에 대해 생각하면서 '나'를 봤다. 글은 '나'를 확실히 바꾸었다. 생각하는 인간으로, 성숙한 사람으로, 지나치게 타인을 신경 쓰지 않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말이다. 나는 글을 쓰는 괜찮은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 앞으로 50년, 60년 (손가락만 잘 움직인다면) 글 쓸 것을 생각하니 마음 깊숙한 곳에서 행복이 차오른다. 업이 되든 안 되든 상관없다. 심심할 때마다 마음을 들여다보는 글을 쓸 텐데 얼마나 풍요로운 삶이 될까? 그나저나 앞으로 글 안에 솔직함이 더욱 중무장될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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