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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인 Jun 02. 2023

글을 다시 배워보렵니다

퇴사 후 공부하고 글 쓰는 삶

많이 살지 않은 34년 내 인생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눈다면 바로 글쓰기 전과 후의 삶이다.


직장 생활 6년 차에 나는 어딘가에 끌려다니는 삶을 사는 것 같았다. 회사라는 조직에선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원래 회사가 그런 곳이지 않나. 내 의견은 감춰야 사회생활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상사에게 예쁨 받는 그런 곳.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내겐 그랬다.


첫 회사를 대기업 계약직으로 들어갔을 때 참 행복했다. 1년만 딱 경력 쌓는다는 생각으로 졸업하자마자 바로 입사했다. 다른 친구들이 대기업 공채에 수없이 떨어질 땐 난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시간에라도 경력을 쌓고자 계약직으로 선택한 것이다. 물론 당시 자금 사정도 여의치 않았다. 나보다 한 살 어린 지금의 남편과도 갓 연애를 시작해서 학교 선배이자 누나인 내가 데이트 비용을 더 감당하고 싶었다.


1년 계약직을 무사히 마무리하고 두 번째 회사에 입사했다. 평소에 가고 싶었던 대기업 중 하나였다. 연봉, 복지 모두 마음에 들었다. 다행히 회사에선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이 아니라는 것에 후한 점수를 주었다. 내 계획이 딱 들어맞아 여기가 이제 나의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며 뭐든 열심히 했다. 나는 동기 중에서 위 선배들한테 칭찬과 예쁨을 받는 중고 신입이었다. 그러다 본부장님에게까지 눈에 들어 이사님 개인 심부름도 맡아서 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그 회사에서 송곳 같은 존재였다. 자잘한 일이든 중대한 업무이든 수행 과정에서 분명 티가 났다. 잘하면 잘하는 대로, 어려운 일이라면 중간 이상은 가려고 보이지 않은 곳에서 노력했다. 그런데 이 노력을 아니꼽게 보는 부장 한 명이 있었다. 그는 내게 얼굴과 몸매 지적 등 인신공격을 했다. 다른 사람들이 일 잘한다고 나를 칭찬할 때, 그 칭찬을 묵살시켜 버리기도 했다. 세상 억울했다. 그래도 차라리 인신공격이 나았다. 내가 참을 수 없는 건 같이 입사한 동기와의 업무 차별, 업무 배제 등이 날이 갈수록 심해져 견디기 힘들었다. 딱 10개월 만에 회사를 나왔다. 나를 챙겨주던 본부장님께서도 수차례 붙잡았지만 붙잡히기엔 이미 마음의 상처가 커져 버렸다.


이후 회사 생활에서 늘 적극적이지 않았다. 내가 열심히 할수록 남들 눈엔 잘하려고, 눈에 띄려고 발버둥 치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걸 전 회사에서 뼈저리게 겪었기 때문이다. 잘하고 싶은 열정이 샘솟더라도 그냥 '적당히'하자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다 일을 적당히 하다 보니 업무 스킬과 전문성에 한계가 왔다. 그럴 때마다 열심히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전에 받은 상처로 더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직장 생활 4년을 이어가다 보니 어느 날 막연한 두려움이 찾아왔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내 인생인데 난 왜 적당히 살아야만 할까. 그렇다면 행복도 적당히 오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제대로 한 번 살아보고 싶었다. 나도 온 열정을 다해 할 수 있는 게 하나라도 있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다.


© CoolPubilcDomains, 출처 OGQ


원래 글쓰기 흥미있었다. 화나고 상처받은 마음을 일기장에 잔뜩 쓰고 나면 아픈 손목에 반비례하게 마음은 가라앉았다. 두서없이 써도 맞춤법이 엉망이더라도 내 글을 다시 읽어보면 그렇게 재밌었다. 그즈음 마침 취미라고 할 것도 딱히 없어 글쓰기 모임을 검색했고 글쓰기 아카데미에 발을 들였다. 원고를 쓰고 퇴고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나의 열정과 몰입도를 발견했다. 내게도 이런 끈기가 있었다는 게 놀라웠다. 그 열정에 힘입어 결국 책까지 출간하였다.


그러나 한동안 나는 사주 공부한다고 글쓰기에 소홀했다. 책 한 권 썼다는 이유로 작가라는 호칭을 얻었지만 그 호칭을 듣기엔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이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을 해왔지만 눈에 띌 만큼 나아지지 않았다. 물론 글쓰기가 오랜 시간 공을 들여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걸 위해 나름의 노력이 그동안 부족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요즘 들어 커졌다.


평소 좋아하는 이은대 작가님 글쓰기 코칭 수업이 다음 달부터 금액을 인상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가격이 만만치 않아 몇 개월간 고민을 하다가 결국 오늘 아침에 결제를 해버렸다. 가격 때문에 미뤄놨었는데 결제를 하고 나서 보니 과연 나는 정말 가격 때문에 이 과정을 미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 글을 직설적으로 평가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뭐든 배움에 있어 '돈'을 들여야 한다는 주의이다. 공으로 배우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게다가 독학하면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성격상 금세 지루함을 느끼기 때문에 돈을 들이는 게 내 배움에선 최고의 방법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세상에 절대 공짜가 없다는 걸 사회생활에서 톡톡히 깨달았기 때문에 나의 노력이든 돈이든 할 수 있는 만큼 투자해서 얻어낼 것은 얻어내자는 마인드이다.


코칭 신청서를 작성하고 10여 분 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받아보니 이은대 작가님이었다. 처음에 당황했다. 이렇게 온라인 수강생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주시는 작가님의 열정에 감동받았기 때문이다. 수강생들이 많을 텐데 한 명 한 명 연락해서 어떻게 알고 왔는지, 나에 대한 소개와 간단한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코칭 과정이 평생이라 평생 스승님을 또 한 분 얻은 기분이다. (내겐 평생 명리 스승님이 계신다)


나는 앞으로 글 쓰는 명리학자가 되는 게 꿈이다. 무기력했던 직장 생활 6년 차였던 나의 서른한 살은 온 열정을 다 바쳐서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글쓰기라는 걸 알게 되었다. 뭐 거창하진 않더라도 공부하고 읽고 쓰는 지금의 삶을 영위한다면 적당히 살아왔던 지난 나날들을 메꿀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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