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의 형태를 통한 시대상 바라보기
필자는 도시브랜딩을 연구하면서 도시가 가지고 있는 스토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도시를 연구하는 여러 가지 분야 중 필자는 고현학 관점에서 도시를 걸어 다니며 눈으로 보이는 현상을 중심으로 도시를 바라보고 있다. 그중에 눈여겨보는 시대가 바로 대한민국 근대사 특히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시대의 생활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오늘은 공주에 대한 문화주택으로 바라보는 공주의 시대상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먼저 문화주택이란 적산가옥의 한 형태로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의 주택형태는 크게 기존 한옥과 초가집을 제외하고 계량된 한옥(현재 북촌한옥마을에 흔전 존재), 일본에 있을 수 있는 전통 일본식 주택(군산근대화거리에서 볼 수 있음), 문화주택(서울 후암동 지역에서 볼 수 있음) 3가지 형태로 존재했다.
이 중에 문화주택은 1930년대 소개된 집의 유형으로 유럽(독일식) 스타일로 지어진 건축물을 의미하는데 뾰족한 지붕과 굴뚝 그리고 이층과 테라스가 있는 형태로 되어 있다. 창문은 원형이 있다. 물론 100% 이 형태를 유지하는 것을 아니지만 대부분이 이와 유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쉽게 양옥식 집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편하다.
김상훈박사의 논문에 보면 문화주택은 당시 고가의 집으로 당시 모던걸들이 선호했던 집으로 당시 조선인에게는 선망의 주택이었고, 당시 이 건축물은 서울 후암동 지역에 많이 분포하였는데 그 이유를 간략히 살펴보면 후암동은 성저십리 지역으로 지금으로 말하면 교외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4대 문 안 경성도심으로 쓰레기가 많았고, 번잡했던 곳으로 쾌적한 거주지를 찾기 위해 교외지역인 후암동에 일인 상류층이 많이 모여 살았는데 당시 이 지역 거주민들은 교수, 은행원 등 좋은 일자리 직업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
여기서 교수라는 직업에 주목할 필요성이 있는데 교수들은 외국 유학파들로 일찍이 외국생활에 적응된 사람들이라 일본식 거주형태보다는 서구식 주거형태인 문화주택에 거주하는 사례가 많았다고 한다. 또한 일인들이 좋아하는 거주지역 형태는 구릉지고 햇볕이 많이 드는 곳을 선호했다고 한다. 그래서 후암동지역에 많은 문화주택이 아직까지도 현존하고 있다.
이것을 기초로 보면 문화주택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건축물 형태가 아니며, 이 주택은 주로 평지보다는 약간의 산비탈면에 건축되었다. 그리고 이 주택에 살기 위해서는 대도시 지역에 거주했던 경험이 있거나, 외국에 거주했던 사람들이 주로 이 주택을 구입하고 살고 있었다면 보면 되는데, 이런 관점에서 공주의 왕도심을 살펴보자.
공주에는 문화주택 흔적인 건축물이 반죽동에 흔적이 하나 남아 있다. (사진 1)
이 건축물은 문화주택의 고유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산비탈진 곳에 지어져 있다. 인근 지역민에게 이런 주택에 공주에 많이 포진되었는지를 확인한 결과 이런 집은 공주에서 흔히 볼 수 없었던 건축물이라는 의견을 받았다.
이 주택을 기점으로 유사한 위도에 있는 일본식 건축물은 현재 풀꽃문학관(사진 2)이 있고, 예술가의 정원(사진 3)이라는 건축물이 있다.
3가지 건축물에 공통적인 특징은 당시 부유한 상류층은 일인들이 선호했던 지형에 거주했다는 것이다. 서울 후암동의 남산자락과 같이 공주는 봉황산 자락에 비탈진면 모여 살았을 것으로 추축 된다.
이렇다 보니 상권이 이 건축물 중심으로 형성되었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흔적은 공주 옛 읍사무소(사진 4) 금융조합 사무실 등이 있는 것을 봐서 이 일대가 혼마찌(명동/번화가)가 형성되었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다.
공주는 예부터 충남의 교통요충지였고 충남의 행정중심지로 조선시대부터 성장했던 지역이었다. 하지만 경부철도의 대전건설을 계기로 충남도청이 1930년대에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많은 지역민(한인/일인)등이 결속하여 반대운동을 펼쳤지만 도청은 대전으로 이전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자세한 내용(디지털공주문화대전: 충청남도도청이전반대운동)
공주는 도청의 이전으로 행정중심에서 학교설립으로 인한 교육도시로 성장했다.
문화주택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도시를 살펴보면, 문화주택은 교수나 대도시에 거주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 중심으로 거주했던 형태인데 공주에는 이런 문화주택의 흔적이 없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고학력자가 거주했거나, 아주 부유했던 사람이 거주했거나 혹은 공주에 뿌리내리기 위해 외부에서 온 행정(일반행정/교육행정)을 한 사람들이 발령받아 왔을 때 이곳에 거주하고 싶은 욕망이 과연 강했을까?
주거형태는 단순히 사람이 살았던 것만 해당되지 않는다. 당시 시대상을 예측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될 수 있다. 필자는 이번 글에서 주거형태에 따른 도시의 스토리가 어떻게 예측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물론 이런 예측은 100% 사실이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미뤄짐작하여 이 도시가 어떤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았었는지는 가늠할 수 있을 수 있다.
도시를 여행하면서 눈에 보이는 형태를 이해하며 도시를 상상해보는 것
이 또한 도시를 여행하는 재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도시는 살아있는 생명체인 것이다. 삶의 흔적이 있는 곳으로 그 삶속에서 순응하며 살았던 지역민의 삶을 이해해 보면 좀 더 지역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